교회, 정말 문화재 등록에 관심이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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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정말 문화재 등록에 관심이 없는 걸까
  • 공종은 기자
  • 승인 2011.07.20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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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발 논리에 밀려 무너지는 기독교 유적

근대 문화재 373건 중 기독교 유적 50건 불과
노고단-왕시루봉 기독교 유적지 보존 시급

기독교 선교 초기 건축된 교회가 있다. 교회가 건축된 후 백 년이 지났다면 안전에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 이런 경우 건물을 허물고 새로 지어야 할까, 아니면 문화재로 등록하고 보존해야 할까.
 
‘백 년이 넘은 교회’. 좁고, 낡고, 초라한 건물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허물어야 되는 교회. 이 상황에 직면했을 때 대부분의 한국 교회가 내린 결론은 이랬다. ‘허물고 새로 짖자.’ 교인들을 수용해야 했다. 번듯하고 보기 좋은, 그리고 크고 웅장한 새 건물을 지어 교회의 성장을 보여주어야 했다.

# 보존보다는 허물고 새로 짓기
‘새 것’이 부흥과 성장, 발전을 의미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역사적 가치’에 대한 생각은 남겨두지 않았다. 거기에 더해 ‘개발 논리’에 밀려 낡은 건물은 당연히 헐어야 되는 것으로 인식했다. 그 결과 한국 교회는 백 년이 넘는 역사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문화재로 등록된 교회를 쉽게 찾아볼 수 없게 됐다.

“백 년이 훨씬 넘는 개신교 역사에서, 더구나 그 성장과 발전에 비추어 보아서 50건밖에 되지 않는 개신교 등록문화재는 수적인 측면에서도 초라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전 국사편찬위원장을 지낸 이만열 교수가 기독교 문화재와 관련해 던진 말이다. 국내 기독교 유적과 문화재에 대한 교회의 인식이 이 정도라는 데 대한 탄식이 묻어난다. 이 교수는 또한 “역사적으로 보존 가치가 있는 예배당만 하더라도 증가하는 교인들을 수용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혹은 전근대적이라는 이유로 허물어 버리고 새 건물로 대체하고 있다”면서 “서울에만도 상동교회나 새문안교회 같은 전통있는 예배당 건물이 보존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개축 혹은 신축됐고, 지금도 그런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이것은 역사의식이 희박하다는 데서 그 이유를 찾을 수밖에 없다”고 아쉬워했다.

# 노고단-왕시루봉의 선교사 유적지

지리산 왕시루봉과 노고단을 올라본 사람이라면 마치 폐허처럼 남아있는 몇몇 건물을 보았으리라. 아무 설명도 없이 방치되듯 남아 있는 건물들은 기독교 유적지. 노고단의 유적들은 일제 강점기 선교사들이 건설한 ‘지리산 여름 수양관’. 원래 소래와 원산에 있던 선교사 수양관에 이어 지은 ‘제3의 수양관’ 유적들이다. 왕시루봉 유적은 해방 후 노고단 유적이 훼파된 뒤 선교사들이 이를 계승해 만든 ‘제2의 지리산 수양관’의 흔적이다.

1941년 태평양전쟁 발발로 선교사들이 강제 출국 당할 당시 미국 남장로회 선교사 27명이 소유하고 있었던 건물은 모두 41동. 하지만 선교사들의 출국 이후 지리산 수양관들은 ‘적산(敵産)’ 처리됐고, 한국전쟁과 휴전을 거치면서 수양관 유적이 있던 노고단과 왕시루봉 일대는 서울대학교 소유로 바뀌게 됐다.

현재 지리산 기독교 유적지들은 보존이 위태로운 상태. 지난 2003년 3월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은 왕시루봉 수양관 건물이 ‘난치병 환자 치료 및 요양’이라는 사용 목적에 위배됐다는 감사원의 지적에 따라 “사용 허가 기간이 만료되는 2004년 2월 29일 이후 국유재산 유상 사용 수익 허가를 하지 않을 것”임을 통보했다. 여기에 더해 왕시루봉에 있는 12채의 건물 중 8채를 철거할 계획도 함께 밝혔다.

지역 시민단체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노고단에 남아 있는 옛 강당 건물의 잔해를 철거하라는 거센 요구를 쏟아냈고, 두 곳의 지리산 수양관 유적은 모두 철거 위기에 처한 상태다. 이에 대한 한국 교회의 대책은 지난 2004년 2월, ‘지리산기독교유적지보존위원회’를 조직하고 노고단과 왕시루봉 수양관 유적지 보존과 복구를 위한 대책을 모색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어, 한국 교회 전체적인 관심과 지원이 시급한 실정.

문화재청 천득염 위원(전남대 건축학부 교수)은 “지리산 선교사 휴양관은 동서양의 건축적 특성과 근대기 선교사들의 생활상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역사-종교-문화-건축적 가치를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부속 건물 역시 왕시루봉 마을을 이루는 구성 요소로서 독특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건물이 지니는 건축적 가치로서 뿐 아니라 장소적 의미 또한 크기 때문에 그 권역을 적절히 설정해 문화재로 지정해 보존하기를 기대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이만열 교수도 “선교사들의 수양관 유적은 길지 않은 한국 기독교 역사가 남긴 문화유산으로 각계의 힘을 모아 문화재로 보존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 교회 유적지 ‘등록문화재’ 추진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정부가 근대 문화유산 보존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것. ‘문화재 등록 제도’ 도입이 가장 큰 성과다. 국보와 보물 등 국가가 문화재를 지정하는 ‘지정문화재’와 현재 문화재로 지정돼 있지 않았지만 문화재로 보존하기 위해 등록하는 ‘등록문화재’로 나뉘어진다.

교회가 문화재 혜택을 볼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은 ‘등록문화재’로 등록해 두는 것. 보존 가치가 있는 기독교 문화 유적은 대부분 근대 문화재로 등록돼 있다. 현재 등록된 근대 문화재는 373건. 하지만 기독교 유적은 27건에 불과한 상황. 시도 유형 문화재와 기도 기념물, 도시 문화재 자료까지 합쳐도 50건에 머문다.

△정동 이화여고 심슨기념관 △대구 동산병원 구관 △철원 감리교회 △여수 애양교회 등 27건. 시도 유형 문화재는 △오웬기념각(광주) △서울성공회성당 △영화초등학교 본관동(인천) 등 11건. 시도 기념물은 △홍천 한서 남궁억 묘역 △아담스기념관(수원) △구세군 본관 등 6건. 시도 문화재 자료는 △영천 자천교회(경북) △강화 온수리성공회(인천) △두동교회 구 본당(전북 익산, ㄱ자 형 교회 등 7건 등이 그것이다.

기독교 유적지에 대한 보존과 문화재 등록의 필요성에 대한 여론이 확산되자 각 교단들이 빠르게 대응하고 나섰다. 기독교대한감리회와 예장 통합총회가 대표적. 감리교의 경우 현재 정동 벧엘예배당과 정동 이화여고 심슨기념관, 배재학당 동관, 제암리 3.1운동 순국 유적 등 10건을 감리교 문화유산으로 문화재청에 등록했다.

각 교회들도 문화재 등록에 뒤늦게 뛰어들었다. 지난 1931년 건립된 이후 충청지역의 선교에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던 공주제일교회. 이 교회의 경우 지난달 20일 문화재로 등록됐다. “한국전쟁 당시 상당 부분 파손됐지만 남아 있는 벽체와 굴뚝 등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보수하는 등 교회건축사적으로 가치를 인정받아 문화재로 등록하게 됐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렇다고 쉽게 문화재로 등록된 것은 아니었다. 가장 큰 결정은 교회 신축을 포기한 것. 낡은 교회의 문화재적 가치를 더 높게 여겼다. 여기에 더해 교인들이 40여 년 전부터 관련 자료들을 수집했고, 그 결과 종탑과 붓으로 쓴 당회 회의록 감리교 선교사들이 쓴 영문 소식지 등 소중한 자료들을 발굴할 수 있었다. 이와 함께 공주제일교회 역사박물관과 영명학교를 잇는 기독교 성지순례 코스 조성 계획도 함께 수립했고, 문화관광부는 이 사업을 높이 평가해 20억 원의 사업비도 지원하는 성과를 얻었다.

교회를 비롯한 기독교 유적지들이 문화재로 등록되면 어떤 혜택이 주어질까. 먼저 소유자와 관리단체가 등록문화재를 관리하는데 필요한 경비와 보호, 수리 또는 기록의 작성을 위해 필요한 경비를 전부 또는 일부에 대해 국가의 보조금이 지급된다. 여기에 더해 등록된 토지와 건물에 대해 재산세, 상속세, 양도소득세 등 비과세 또는 감면의 혜택이 주어진다. 재산세는 50% 범위 안에서 감면되며, 상속세 징수가 유예된다. 그리고 1세대 1주택 특례에 의한 양도소득세가 감면된다.

이만열 교수는 그동안 한국 교회가 백 년이 넘은 소중한 문화유산을 갖고 있었으면서도 문화재로 보존하지 못한 가장 큰 원인을 ‘기독교인들의 역사의식 부족’이라고 꼽았다. “이들 유적을 문화재로 보존하려는 열성을 기울이지 않았고 그런 노력을 게을리 하게 만든 가장 큰 원인은 역사의식 부재”라며 개발 논리와 교회 성장에서 돌이켜 이제라도 역사의식을 갖고 문화유적 보존에 관심을 기울일 것을 당부하는데, 복음의 빚을 갚고, 후손들에게 소중한 복음의 유산을 물려주는 측면에서라도 시급한 대응과 전 교회적 관심이 필요하다.

천득염 문화재 위원도 “새로운 것만을 아름다운 존재로 생각하고, 오래된 것만을 문화유산이라고 생각하는 오류를 범하지 말고, 근대적 가치를 찾아 근대문화유산을 잘 보존하는 것도 우리의 책무”라는 말로 한국 교회의 역사의식을 다시 환기시킨다.

# 문화재 등록 기준(문화재보호법 시행령 42조)

● 지정 문화재가 아닌 건조물 또는 시설물 중 건설 후 50년 이상 경과한 것
● 우리나라 근대사에 기념이 되거나 상징적 가치가 있는 것
● 지역의 역사 문화적 배경이 되고 있으며, 그 가치가 일반에게 널리 알려진 것
● 한 시애의 조형의 모범이 되는 것
● 건설기술이나 기능이 뛰어나고, 의장 및 재료 등이 희소해 학술적, 예술적 가치가 큰 것
● 전통 건조물로서 당시의 건축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 또한 긴급한
   보호가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 기독교 관련 문화유산

■ 등록 문화재(373건 중 27건)
정동 이화여고 심슨기념관 / 이화여대 파이퍼홀 / 대구 동산병원 구관 / 철원 감리교회 / 여수 애양교회 / 여수 애양병원 / 강경 북옥감리교회 / 목포 정명여자중학교 구 선교사 사택 / 배화여고 생활관 / 목포 양동교회 / 여수 장천교회 / 순천 매산중학교 매산관 / 구 순천선교부 외국인어린이학교 / 순천 구 선교사 코잇 가옥 / 순천 구 선교사 프레스톤 가옥 / 순천 구 남장로교회 조지 왓츠 기념관 / 서대문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 선교교육원 / 광주 구 수피아여학교 수피아홀 / 광주 구 수피아여학교 커티스 메모리얼홀 / 공주 중학동 구 선교사 가옥 / 봉화 척곡교회 / 울진 행곡교회 / 울진 용장교회 / 영덕 송천예배당 / 구 군위성결교회 / 목포중앙교회(구 동본 원사 목포 별원) / 광주 구 수피아여학교 윈스브로우홀

■ 시도 유형 문화재(44건 중 11건)
오웬기념각(광주) / 대구제일교회 / 계성학교 아담스관 / 계성학교 맥퍼슨관 / 계성학교 앤더슨관 / 서울성공회성당 / 승동교회(서울) / 인천기독교사회복지관 / 인천 내동성공회성당 / 영화초등학교 본관동(인천) / 청주성공회성당

■ 시도 기념물(73건 중 6건)
홍천 한서 남궁억 묘역 / 아담스기념관(수원) / 우일선 선교사 사택(광주) / 구 배재학당 동관 / 구세군 본관 / 이상재 선생 생가지(충남)

■ 시도 문화재 자료(36건 중 7건)
영천 자천교회(경북) / 오정동 천교사 촌(대전) / 강화 서도중앙교회(인천) / 강화 온수리성공회(인천) / 순천 구 선교사 코잇 가옥 / 금산교회(전북 김제. ㄱ자 교회) / 두동교회 구 본당(전북 익산. ㄱ자 형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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