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과 결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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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과 결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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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1.06.27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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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제 목사(평촌평성교회)

어느 날 여집사님이 찾아왔다. 아무래도 딸이 주일에 결혼식을 하게 될 것 같은데 어쩌면 좋으냐는 것이다. 딸은 신앙생활을 하지 않으며 그러다 보니 신랑 될 사람도 비 기독교인이어서 나름 주일을 피하려고 노력해 보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한다. 신랑측 집안의 부모와 가까운 친지들이 거의 주일 외에는 시간을 낼 수가 없는 직종에 있어, 아무리 설득해도 아무 소용이 없고 오히려 집안 분위기만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집사님에게 근심에 근심을 더 한 것은 아마도 교회 분위기인 것 같다. 우리 교회는 필자의 전임자가 주일 성수를 대단히 엄하게 가르쳤다고 한다. 그로 인해 성도들 중에는 주일을 범하는 것은 지옥 갈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며, 누구든 그것을 범하면 구원을 받지 못할 것 같은 분위기마저 있었다. 그러니 이 일이 얼마나 고민이었겠는가? 이 일은 집사님 집안은 물론, 양가 사이에서도 심각한 충돌거리였다.

집사님이 이 문제로 필자를 찾아왔을 때, 필자 또한 잠시 난감했다. 사정은 이해되는데 교회 속에 있는 이런 분위기를 감안할 때 자칫 나의 한 마디가 큰 혼란을 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혹 사정을 감안하여 주일 결혼을 허용(?)하면 교우들은 그것을 어떤 신호로 받아들일까? ‘이제는 그래도 된다’는 사인으로 받을까? 잠시 난감한 마음이었다. 그렇다고 ‘이렇게 어려운(?)’ 문제로 근심하며 찾아온 성도에게 “기도해 봅시다” 라고 하고 싶지는 않았다. 물론 그렇게 반응해야 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목사에게는 성도가 고민하는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며 대답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짧은 시간 깊이 고민한 끝에 필자는 단순한 대답을 하지 않기로 했다. 경험상 단순한 대답은 당장은 명료하지만 그러나 그렇게 하면 ‘바로 그 순간의 답’만 알 뿐 ‘답에 이르는 사고(思考)’를 배우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길게 말했다.

“집사님! 이 문제의 핵심은 주일에 하는 결혼식이 아닙니다. 혹시 지금 가장 힘겨워하는 것이 집사로서 자녀를 주일에 결혼하게 하는 것이라면, 즉 결혼식이 주일에만 일어나지 않아도 이렇게 당황스럽지 않았을 것이라면, 그것이 오히려 더 큰 문제일 것입니다. 지금 여기서 가장 힘겨워해야 할 것은 집사님 가정으로서 자녀 결혼식을 주일에 하게 된 것이 아니라, 자녀를 오랜 동안 믿음으로 기르지 못했다는 것이어야 합니다. 만약 집사님이 이 점에 대해서는 그렇게 마음 아파하지 않으면서 결혼식을 주일날에 하게 된 것에 대해 힘들어한다면 그건 본말이 바뀐 것입니다”라고 하여 자신을 살피게 한 후 다시 말했다.

“지금의 사정은 거기서 나온 것입니다. 사정을 보아하니 이제 와서 따님의 결혼식에 주일을 피할 길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이것이 오랜 과정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따님이 오랜 동안 주님을 떠나 있고, 그 결과 불신자를 만나 결혼을 결정하게 된 것입니다. 이제 와서 주일 결혼식만은 안된다고 집사님이 드러눕는다 하더라도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지금 와서 무얼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것 때문에 파혼시키겠습니까? 그러면 얼마나 야만적일까요? 아니면 갑자기 두 사람을 믿게 하겠습니까?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떡하겠습니까?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주일을 피하려고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 보았을 것 아닙니까! 그러니 이젠 허락할 수밖에요! 하지만 집사님! 이런 대답을 들었다고 마음 편하게 여기면 안됩니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형편 때문에 빚어진 양보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리스도인들은 주일에 결혼식을 안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해하시고 이 양보가 마음을 편하게 하기보다 오히려 정말 마음 아파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고 더 간절하게 기도하는 계기가 되기 바랍니다!”라고.

이후 필자는, 엄격한 주일 성수 전통 속에서 ‘목사가 주일 결혼을 허용’한 것에, 혼란스러워 하는 신자들의 문제를 다루어야 했다. 그래서 이야기 했다. “나는 우리 교회가 성숙한 교회가 되기 원한다”고. “성숙한 교회는 안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알 뿐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에 있어서는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도 있을 수 있음을 이해하고, 그래서 부득이 주일 결혼이 발표되더라도 혼란스러워하지 않고 마음껏 축하해 주되 그러면서도 결코 그것을 ‘이제는 주일에 결혼식 해도 좋다’는 사인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교회! 그래서 주일엔 결혼식을 하지 않는 원칙이 지켜지는 교회! 그리고 이처럼 원칙의 문제와 개별 상황에 대한 이해가 원활하게 구별되는 교회, 그런 교회가 성숙한 교회!”라고.

사실 우리가 미성숙할수록, 부득이 양보를 ‘전면 허용’으로 받아들이기에 목사의 목회적 입장을 경직되게 한다. 교회마다 강함과 부드러움, 원칙과 불가피한 목회적 양보에 대한 이해가 원활하게 작동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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