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보훈의 달 르포 - ‘강화 DMZ평화기도회’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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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보훈의 달 르포 - ‘강화 DMZ평화기도회’를 가다
  • 이덕형 기자
  • 승인 2011.06.16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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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2.3km 앞의 북녘땅, 그곳에 ‘통일의 기도’울려 퍼지길

6월 25일이 다가온다. 땅을 나누고, 사람을 나누고, 생각이 나뉘어진 날. 우리는 그 날의 연장선상에서 살고 있다. 그 날카로운 아픔이 너무나도 깊어서인지 우리는 더 이상 분단을 의식하지 않고 느끼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교회마저도 피할 수 없었던 분단의 아픔. 그 아픔과 상처를 되돌아보고 감싸줄 자리가 지난 11일 사랑의교회에서 있었다. ‘강화 DMZ 평화기도회’. 이날 교회 성도를 포함한 새터민, 실향민들은 북한 교회 회복과 평화 통일을 위해 함께 모여 강화도로 향했다.

# 두 강이 모여 하나 되는 곳

제비연(燕), 꼬리미(尾)자를 써서 연미정(燕尾亭). 제비 꼬리처럼 둘로 나뉘어진 한강과 임진강이 모이는 지점, 이 곳은 풍광이 아름다워 예전부터 강화 8경에 손꼽힌다.

일행이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연미정’이었다. 그곳 풍광이 아닌, 다다를 수 없는 땅, 북한을 보기 위해서였다. 눈 앞에는 섬, 유도가 보였다. 흐릿하게나마 보이는 북녘에 두고 온 추억들이 하나둘씩 되살아 났기 때문일까. 함께 동행한 실향민과 새터민들의 눈가에 벌써 눈물이 고이고 있었다.

작은 섬 유도에는 학과 뱀이 유난히 많다고 한다. 학이 뱀 알을 쪼아 먹고 뱀이 학 새끼를 삼키는 생태구조가 그 원인이라고 한다. 분쟁의 상처로 사람의 발길이 끊긴 곳에 동물들마저도 서로를 잡아먹으며 굴러가는걸 보니 왠지 작은 섬 유도의 운명이 얄궂기만 하다.

아름드리 나무 연두색 잎사귀 사이로 찬송가 한 구절이 북쪽을 향해 퍼져갔다. 찬송가 79장. ‘주 하나님 지은신 모든 세계’. 유도를 넘어 인접한 황해북도 임하면, 흥교면을 지나 개성을 통해 북한 곳곳을 향해 퍼져 나갔다. 찬양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북한은 영원히 찬양하리”로 바뀌어 갔다.

뒤이어 연미정에서는 북한 땅이 주님 안에서 축복 받는 믿음의 역사, 복음화의 길을 열어달라는 통성 기도가 20여분 간 지속됐다. 땀과 눈물로 가득 찬 사람들. 뜨거움이 있었다. 기도를 마치고 연미정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의 표정은 올라갈 때와는 사뭇 달랐다. 오르기 전에는 세상일의 피로가 얼굴 곳곳에 묻어나곤 했는데 지금의 모습은 조금씩 뜨거운 화색이 도는듯하다. 기도의 힘인가. ‘변화는 작은 데서 시작된다’는 말과 누구나 들어봄직한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는 속담이 떠올랐다.

1965년 국내에 처음 발을 디딘 토마스 선교사는 한국 선교의 열정에 사로잡혀 백령도에서 한양으로 발길을 향하던 중 강풍을 만나 강화도 근처에서 배가 좌초됐다. 그때 마침 근처에 있던 박 씨 성의 노인이 그를 구했다. 이후 박 씨 노인의 가문은 80명의 목사와 장로를 배출한 믿음의 가문이 됐다. 뜻밖에 강화 DMZ 평화 기도회에서 후손 중 한 분인 박원재 목사를 만날 수 있었다. 박 목사의 노력으로 대형버스가 한 번도 통과하지 못했던 검문소 길을 지나갈 수 있었다. 박 목사는 “이 도로는 여지껏 외부 민간인이 대형버스로 통행한 적이 한 번도 없는 통제된 곳”이라며 “이번이 처음인 걸 보니 강화 DMZ 평화기도회에 주님께서 함께하심이 분명하다”는 말과 함께 미소를 지어보였다.

# 종교만큼 단단한 이념

검문소를 통과하며 밖을 보니 정강이 절반 밖에 안 되는 돌 담 너머로 장독대와 자두나무가 고개를 내밀었다. 늘어진 전깃줄 너머 논을 한가로이 거니는 백로는 천천히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초여름 후텁지근함 사이로 바다 내음을 담은 살랑이는 바람이 강화도를 덮을 때 쯤 이상일 집사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지금 보이는 남쪽 땅과 북쪽 땅을 구분하는 방법으로 ‘비닐하우스’를 들었다. 북한에는 비닐하우스를 거의 세우지 않는데 그 이유에 대한 설명이 흥미롭다. 세울 수 있어도 안 세운다는 것이다. 물론 군수물품에 해당하는 염화비닐의 수급 문제에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지만 근본 원인은 다른데 있다. 북한에 비닐 하우스를 세우면 그만큼 일을 해야 하는 시간이 늘어난다. 4계절 내내 일을 해야 되는 것이다. 노동과 배급에 있어 평등을 중요시 하는 북한에서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 비닐하우스가 있는 농장 주민들이 일을 더 하는 것에 수긍하지 않을뿐더러 그로 인해 배급을 더 받는 것을 다른 농장에서 수긍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장비 대신 삽을 사용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노동의 의미와 가치를 하락시키는 모든 것은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게 요점이다.

군의 첨단화와 생활에 있어 발전은 추구하지만 체제의 근간이 되는 노동에 있어서 만큼은 고집을 꺽지 않는다고 한다. 순간 이념이 갖는 힘이 종교만큼이나 강하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공산주의에서 종교를 마약이라 치부하며 배격하는 원인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거대한 벽, 보이는 철조망 만이 아니었다.

# 북한 땅과는 불과 2.3km

경운기 한 대가 간신히 통과하는 길을 따라 큰 길이 만나는 지점. 그 길의 끝자락에 강화평화전망대가 있었다. 1층 통일염원소에는 나무 모양의 구조물 끝에 통일의 염원을 담은 초록색 메모지가 나뭇잎과 가지를 이루며 주렁 주렁 메달려 있었다. 고사리 손으로 꾹 꾹 눌러쓴 “하나님 꼭 통일 되게 해주세요”라는 메모가 눈에 들어왔다. 일본어로 적힌 글, 영어로 적힌 글을 볼 때 다양한 국적의 사람과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이 다녀갔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실향민에게 그 곳은 고향에서 가장 가까운 장소, 불어오는 바람에 조금이라도 고향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분단은 누군가에게는 잠시 역사를 되돌아보는 기회가 될지도 모르지만 또 다른 이의 가슴에는 텅빈 허망함으로 멍울이 지는 아픔이 아닐까?

그들에게는 슬픔과 아픔도 사치이리라.

이렇게 6.25는 민족과 이념만 나눈 것이 아니라 남과 북의 기독교마저 나눈 것이다. 그 허망함을 채우고 아픔과 슬픔을 어루만지는 것이 오늘날 한국 기독교의 사명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사람들의 표정을 통해 느껴졌다.

# 강화 교회의 어머니 ‘교산교회’

올해 4월로 강화교산교회는 118년 됐다. 강화 교회의 어머니라 불리는 이 교회는 1893년 석조교회의 모습으로 건립됐다. 옆에는 현재 새롭게 현대식 건축물이 들어섰지만 왠지 원래 교회의 고풍스러운 무게감은 따를 수 없는 듯 보였다. 118년 된 강화교산교회 본당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나무냄새, 햇빛 사이로 떠다니는 작은 먼지들, 목재 마루는 조금씩 어긋나 튀어 나온 곳도 있었고 천장에는 형광등 몇 개가 달려 있었다. 초기 건립 당시 모습과는 사뭇 다르겠지만 80년대 어린 시절 교회 수련회에서 볼 수 있었던 정겨운 예배당을 떠올랐다.

본당에서 한국오픈도어 관계자를 만날 수 있었다. 나무 바닥에 앉아 그를 통해 북에서 신앙을 지킨 새터민들의 실상을 조금이나마 들을 수 있었다. 평양성화신학교를 다니다 분단으로 고향에 머물게 된 한 새터민은 가족도 모르게 신앙을 유지했다고 한다. 북에서 철저히 비밀로 신앙을 유지하다 중국 국경을 넘은 뒤 “주여”하며 우는 모습에 딸은 그제야 아버지가 기독교인임을 알았다고 한다. 다른 여성 성도 한 명은 주일학교까지만 다니다 교회가 없어졌다고 한다. 이후 그는 기억을 더듬어 주기도문과 기도로 매일저녁 꿇어앉아 예배를 드렸다고 한다. 어린 자녀들은 어머니가 자기 전에 항상 무릎을 꿇고 잠시 조용히 있다 잠드는 모습에 그냥 하루를 정리하는 어머니의 습관으로만 생각해왔다고 한다. 그는 “이들의 신앙은 본 받을 만한 하나의 표상이고 그들의 신앙은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진심”이라고 말했다. 주일학교 몇 년의 신앙이 성장한 어른까지 이어지는 역사. 무엇이 그들의 신앙을 지키게 하는가? 그들은 왜 신앙을 버리지 않았을까? 하는 질문에 그는 말한다. “그게 신앙”이라고.

이어진 강화교산교회에서 ‘모세의 마음으로’란 제목으로 유관지 목사(북한교회연구원 원장)의 설교가 있었다. 유 목사는 “가나안 땅을 눈 앞에 두고 요단강가에서 모세는 눈물의 기도를 드렸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듣지 않으셨다”며 “므리바의 물이 원인이기도 하지만 모세는 율법을 대표하는 인물이기 때문에 율법만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완성할 수 없음을 보여준 것”이라 말했다. 그는 “시기와 방법의 문제는 있겠지만 분명히 들어주실 것으로 믿는다”는 말과 함께 “그 땅을 위해 북한 안의 사람들이 마음껏 기도하는 그 날을 위해 북한에 복음의 메아리가 울리도록 기도하는 시간을 갖자”고 전했다. 또 “비록 과거에는 통일이 막연했지만 이제는 여기까지 왔다”며 “통일의 세대를 살게 될 다음 세대를 위해 기도를 갖자”는 말과 함께 기도와 축복하는 시간을 함께 가졌다. 설교를 끝으로 이어진 통성 기도 시간에는 북한을 향한 기도의 메아리와 눈물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강화교산교회에서 뜨거웠던 기도회를 마치고 강화성공회 성당을 향했다. 강화성공회 성당은 영국 선교사들이 한국에 와 세운 교회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한국식 목조건물로 지어졌다는 것이다. 이날 영국 선교사 죠앨 모리슨도 함께 했다. 그는 “선배 선교사들이 보통 타국에서 교회를 세울 때 영국식 석조 건물을 세우는데 여기 한국식 목조 교회를 바라보니 자랑스럽고 뿌듯하다”고 말했다. “한국의 정서와 문화가 녹아 있는 이 교회를 보면 이전 한국을 방문한 선교사들이 얼마나 간절히 한국을 사랑했고 그 복음화를 위해 노력했는지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교회 앞에서는 십자가가 새겨진 종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국식 동종을 1/5크기로 축소한 그 종이 울려 퍼졌을 때 강화주민들의 마음은 평안으로 가득찼으리라.

# ‘만나’의 역사

기도회에서 새터민 출신 A씨를 만날 수 있었다. 활기찬 모습. 꿈과 목표도 확실한 그에게 오늘 연미정과 통일전망대에서 느낌을 물었다. “짠한 느낌이 듭니다. 망원경에 보여지는 삶과 실제 삶은 다르니 그 느낌은 말 못하겠네요”. 그는 북쪽으로 눈길을 두기 힘들다고 말했다. A씨는 “북한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려오지만 여기서 북한을 위해 기도하고 예배하니 다른 한 편으론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했다.

지금 북한에 가장 필요한 것에 관해 A씨는 “만나의 역사”라 말한다. 그리고 지금의 북한의 현 상황을 이스라엘 출애굽과 광야 생활에 비유했다.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더 큰 민족으로 굳건히 세우기 위해 출애굽의 역사와 광야 고난의 시절을 주셨습니다”. 그 광야 시절에 이스라엘 민족이 살아남았던 이유는 사람의 도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길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강조했다.

A씨는 “이스라엘 민족이 40년 광야생활에서 살아남은 것은 온전히 주님의 역사하심 때문이고 따라서 지금 북한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 하나님의 역사하심, 하나님의 손길”이라고 말했다. “드넓은 광야에서 만나를 내려주신 하나님, 만나를 통해 살아남아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신 하나님, 지금 북한에 가장 필요한 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만난 그 신실하신 하나님입니다”.

물론 그는 사람의 도움과 원조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여러 고난을 겪는 북한 주민에게 광야 40년 동안 함께 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임하도록 남한과 북한의 기도와 예배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언약의 궤에는 만나가 들어 있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고난의 시기, 고난의 땅에서 이를 잊지 말고 떠올리라는 의미는 아니었을까? 그렇게 A씨는 북한 교회를 위해 예배드리고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조선의 역사를 고스란히 함축한 ‘눈물의 섬’ 강화. 지금은 바라다 보이는 북한을 지척에 두고도 닿을 수 없는 슬픔을 간직하고 있다. 그 북녁땅을 바라보며 일행이 할 수 있는 일은 기도밖에 없었다. 남과 북이 하나되는 날을 위해 간절한 기도로 하나님을 찾았다. 새터민들과 함께 북한을 바라보자니, 그들의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 했다. 벌써 분단 61년. 남과 북을 가로막은 철조망은 사라질 줄 모른다.

그러나 이날 기도회에 참석한 일행들의 마음에는 한가지 확신이 들었다. ‘통일’은 반드시 온다는 것.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한반도가 통일의 외침으로 가득찰 날을 위해 기도했다. 작고 미약한 기도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응답하실 것이란 믿음이 생겼다.

하루빨리 북한 동포들에게 ‘복음’의 기쁜 소식이 전해지길 바라며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발길을 돌렸다. 갈라진 ‘2.3km’를 기도의 띠로 이어가자는 다짐만 뜨겁게 메아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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