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조국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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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조국이여!
  • 승인 2002.07.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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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짝짝 짝 짝짝. 오∼ 필승 코리아∼”
유월 한달 동안 대한민국을 연호하는 함성이 천지를 진동시켰다. 그리고 삼천리 반도 구석구석엔 태극기의 물결로 출렁였다. 해방 이후 우리가 이토록 감격스럽게 우리의 국호인 대한민국을 목이 터져라 외쳐 보았던가?

태극기를 옷섶에 숨기고 다녀야만 했던 기미년 3월, 그 통한의 세월이 언제였던가 싶다. 승용차 앞뒤에서 펄럭이는 태극기,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옷, 두건, 치마, 심지어 태극 무늬 페이스페인팅까지 해가며 한국인임을 자랑하고 있다. 16강은 고사하고 “1승만이라도”라는 바램을 가지고 있던 국민들에게, 태극전사들은 16강, 8강, 4강 진출이라는 엄청난 선물을 안겨 주었다.
이 지면에서 굳이, 월드컵 상위 진출로 인해 우리나라에 돌아오는 엄청난 경제적 생산 유발 효과나 국가 브랜드 이미지를 언급하고 싶지는 않다. 그것보다는 우리가 그동안 잊고 지내던 우리의 정체성에 대해서 피력하고 싶다.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한국인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다”는 보통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다는 사실을. 한달 동안 우리 모두는 애국자였다. 태극전사들의 투혼, 뜨거운 응원, 그리고 4천 7백만 국민의 성원은 우리 조국 코리아의 위상을 전 세계에 드높이 알렸다.
출입국 신고가 까다롭기로 유명한 영국 공항에선 요즘 “코리아”라고 하면 통과시킨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외국에서 태어난 이민 2세대들은 자국민도 아니고 그렇다고 한국인도 아니어서 정체성에 혼돈을 가져오기 쉽다.

그런데 6월 이후 캐나다의 이민 2세대들은 귀걸이, 목걸이, 브로치에도 태극 마크를 장식하고 코리아를 자랑하고 다닌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400g이 조금 넘는 축구공 하나로 대한민국의 위상이 이토록 달라질 수 있다는 것에 놀라울 뿐이다.
우리나라의 경기가 진행되는 날 경기장마다 애국가가 장내에 울려 퍼지기 전에 대형 태극기가 등장하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이 태극기는 가로 60m, 세로 40m, 무게 1.5t으로 애국가가 울려 퍼지기 15초 전에 위에서 아래로 물결처럼 흘러 내렸다. 그 태극 물결 앞에서 우리는 또 한번 감격했다.

외국에선 이 장면을 보고 매직(magic)이라는 표현을 쓰기까지 했다. 우리는 휘날리는 태극기 앞에서 또 한번 한 핏줄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제 축제는 끝이 났다. 함성도 멎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의 가슴 속에, 그리고 귓전에선 “대∼한민국! 오∼ 필승 코리아∼”의 외침이 계속해서 환청처럼 들려오고 또 그렇게 느끼고 있다.
그동안 우리는, 우리 속에 내재된 무한한 에너지를 사장시키고 살아왔다. 그것은 이 나라의 지도 계층의 사람들이 사회의 구심점을 만들어 주지 못한데 책임이 있다. 서로 반목하고 갈등하고 이합집산들처럼 변덕스럽게 편가르기에 급급한 모습으로는 국민의 무한한 에너지를 끌어낼 수가 없다.

이제는 평상심으로 돌아가 본연의 자세를 찾아야 할때다. 우리 축구팀의 성장을 보며 지도자의 지도력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개인의 기량보다는 팀플레이를 중요시하고 오랜 전통으로 내려오던 선·후배간의 벽을 깨고 서로 하나되게 했던 ‘거스 히딩크’의 거시적인 안목이 바로 그것이다.
원칙을 일관성 있게 추진하는 투지와, 부자 관계와 같은 친화력과 신뢰감도 돋보였다. 기초 체력 다지기와 풍부한 자금과 임기 보장, 또 실력대로의 선수 선발 등 우리는 그에게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이제 아시아의 승리라고까지 치하하는 축구로 우리가 하나되었던 무한한 에너지를 사회 통합과 경제 발전으로 승화시키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러면 월드컵을 통해 교회는 무엇을 깨닫게 되는가. 교회는 예수님의 구원 사역을 확장시켜 가는 목표 아래 하나로 뭉친 사랑의 공동체이다. 그런데 이 기초가 무너져 버린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근간(根幹)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세속화에 더 관심을 쏟고 있다.
월드컵으로 인해 해외에 파송된 선교사들까지 덕을 보고 있다는 보고도 들려 온다. 교회는 때로 선교를 위해서라면 과감한 투자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개 교회 주의에서 탈피하는 것은 아직까지 미완의 숙제이다.

월드컵 기간동안 우리의 부모 세대가 목숨 걸고 지켰던 조국을 우리의 후손들도 기꺼이 지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느낄 수 있었고 애국심을 지속시키는 것이 민주주의를 사수하는 지름길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므로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정부는 국민들에게 대북 인식을 바로 알리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금 월드컵이 성공적으로 열리고 있는 것은 ‘6. 15 남북 정상회담’의 결과라고 자평한 청와대 고위 관계자의 안이한 안보 의식에 우리 국민 모두는 분노하고 있다. 잔치 집에 찬물을 끼얹은 북한의 천인공노할 6. 29 서해교전 선제 공격 행동에 대해 정부는 어떻게 변명할 것인가?

모든 것이 끝이 아니라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하나되어 다시 일어서자. 4천 7백만 우리의 함성이 빨리 끓고 재빨리 식는 냄비 근성이 되어서는 안된다. 월드컵 4강 진출은, 자신감을 갖되 교만하거나 자만심에 빠지지 말라는 교훈을 남겼다.
한국 월드컵의 놀라움과 기쁨과 흥분과 환희, 그리고 북한의 만행으로 비통함과 분노를 함께 안겨 주었던 2002년 유월이 역사 속으로 그렇게 사라져 갔다.

박대훈목사(서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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