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처소서 '눈물의 합심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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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처소서 '눈물의 합심기도'
  • 승인 2002.07.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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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1일, 우리 일행은 평양 시내에 있는 20여 군데의 가정예배 처소 중에 대동 가정예배처소로 인도받았다. 내가 1999년도에 평양을 1차 방문했을 때 간 곳은 순안 가정예배처소였는데 이번에는 대동 가정예배처소에 갔다.

오늘은 일하는 날이지만 남조선의 동북아시아선교회 이사들이 가정예배 처소를 한번 보고 싶다고 요청해 일부러 우리를 위하여 가정예배 처소를 공개해 준 것이다. 고층 아파트들이 많이 들어서 대동구역의 한 아파트 앞에 이르자 서너 명의 교인이 문앞에 나와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제가 대동 가정예배 처소의 책임자입니다." 50대 중반의 한 남자가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반갑게 악수를 하고 그의 뒤를 따라 아파트 계단을 따라 2층에 있는 그의 집으로 들어갔다. 여덟 명의 교인들이 우리 일행을 반가이 맞이해 주었다.

그날 일부러 우리나라에서 가져온 성경을 갖고 가지 않았다. 조선 그리스도연맹 중앙위원회에서 발간한 성경과 찬송이 가정예배처소마다 이미 배정되어 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말투로 인쇄된 성경과 찬송을 가지고 함께 성경을 읽고 찬송을 불러야 친근해 질 수 있다는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가정예배 처소에서의 예배를 위해 미리 우리 일행들 중에서 예배 사회는 장상래목사가 맡고 기도는 박정호목사, 설교는 양병희목사, 축도는 고현봉목사, 합심기도 인도는 백승억목사가 하도록 역할분담을 했으며, 우리 일행이 준비해 간 선물을 전달하고 인사하기로 했던 것이다.

예배는 우리가 주관하였으나 그들이 준비한 특별찬양을 하게 하므로 남북이 공동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 것이다. 역시 그들은 노래 잘 하는 사람들로 준비하였다.
함께 참석했던 리성숙전도사(북측)가 필자의 손을 잡아 일으키며 자리에서 일어나 특송을 하고 있는 가정예배처소의 여집사와 함께 찬양을 부르라고 권했다.
남북의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되어야 통일이 된다는 의미였다. 필자는 대동 가정예배처소에 속한 교인과 함께 찬송을 불렀다. “하늘 가는 밝은 길이 내 앞에 있으니 슬픈 일을 많이 보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모두는 서로 손에 손을 맞잡고 남북통일을 위해 합심기도를 드렸다.

예배가 끝난 후에 3년 전에는 볼 수 없었던 젊은 교인 세 분에게 물어보았다. 모두 여덟 명의 교인이 모인 중에서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분은 89년도부터 예수님을 믿기 시작했다고 하고, 40대로 보이는 젊은 여성 동무는 98년도라고 말하였고, 60세쯤 보이는 한 남자분은 3개월쯤 됐다고 말했다. 옆에서 있던 오서기장의 말이다. 봉수교회와 칠골교회 교인들은 더 이상 늘어나지 않지만 가정예배처소는 날로 교인 수가 늘어나고 있다.

3년 전에는 모두가 1만 명 정도였으나 지금은 1만2천 명 정도로 많이 늘었다. 가정예배 처소가 부흥이 되는 것은 우선 이웃에 사는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자연스럽게 전도가 되고 또 매주일 10시에 예배를 드린 후에 음식을 나눠 먹으며 교제를 하기 때문에 좋다는 것이다. 리성숙전도사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목사님, 여기 있는 이 비디오 TV셋트는 남조선의 NCC에서 보내주신 것으로 한경직목사님의 성경공부 비디오 등 여러 목사님의 비디오 테이프를 가정예배 처소에서 성경을 배우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이 정말이고 가정예배 처소교회에 새신자가 늘어나고 있다면 북한의 교회는 소망이 있다. 하지만 그들 모두는 김일성 주체사상이 곧 신앙이요 교리인만큼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자로 믿는 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문이다.
그런데 그 가정예배처소에 백발이 성성한 여장로 한 분이 계셨다. 오서기장이 그 분을 소개하기를 한국의 초대 교회의 강○○목사의 딸이라고 소개하면서 김구선생과 함께 한 사람들이 던진 폭탄에 맞아 순교했다며 고현봉목사 더러 강 아무개목사를 아시냐고 물으니 고현봉목사보다 15년 이상 어른이신데 기억이 잘 난다고 말했다.

가정예배처소를 나와 광복의 거리를 달렸다. 도로의 폭이 100m이고 직선으로 6km가 되는 광복거리 좌우편에는 최신형 고급 아파트가 많이 세워져 있었다. 오서기장은 자랑하기를 “이 길이 남포항까지 연결되었습니다. 평양에서 40km입니다." “네. 3년 전 제가 왔을 때는 도로공사가 한창이었는데 이제 완공되었으니 다행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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