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없는 교회는 장애 교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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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없는 교회는 장애 교회입니다”
  • 공종은 기자
  • 승인 2011.04.12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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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장애인 앞에 떳떳한가?

장애인 섬김 통해 ‘기독교 공공성’ 부활시켜야
지적장애인도 일정 연령 되면 세례 베풀어야

‘절뚝발이와 불구자와 소경과 벙어리’. 과연 성경에 등장하는 용어일까. 이렇게 순화되지 않은 용어가 성경에 등장한다고는 생각하기 힘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엄연한 현실. 성경 마태복음 15장 30절에 등장하는 말씀이다.

가슴 아프게도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장애인들에 대한 표현. 그 정도가 심하다 못해 ‘과격’할 정도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은 이 표현들이 ‘다리 저는 사람과 장애인과 맹인과 말 못하는 사람’으로 수정돼 번역됐다는 것. 하지만 이것도 불과 몇 년 전 일이다. 최근 들어 대부분의 교회들이 사용하고 있는 ‘개역 개정판’ 성경에서부터 이렇게 수정돼 실렸다. 하지만 아직 ‘개역 한글판’ 성경을 사용하는 교단에서는 이마저도 허락되지 않는다. 개역 한글판에서는 아직도 절뚝발이와 불구자와 소경과 벙어리가 등장한다.

# 한국 교회, 장애 인식의 현주소

예장 통합총회 장애인신학준비위원장 채은하 교수(한일장신대), “이런 용어는 장애인에 대한 한국 교회 교인들의 인식을 그대로 반영한다”며 따끔하게 꼬집는다. 또한 “지금 한국 사회는 장애인에 대한 인식과 복지정책이 혁명적이라 표현할 만큼 과거와 다르게 바뀌어가고 있는데, 교회의 장애인 선교 내지는 신학에 대한 인식은 이와는 대조적으로 너무 미미하고 작게 움직이고 있다”는 지적도 서슴지 않았다.

17일 ‘장애인주일’을 앞둔 한국 교회, 과연 장애인 앞에 떳떳할 수 있을까. 휠체어가 본당에 들어가지 못하는 구조를 가진 교회들이 허다하고, 장애인들을 위한 엘리베이터는 고사하고 경사로 하나 변변히 갖추지 못한 것이 교회들의 현실. 여기에 더해 ‘장애인주일’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성도들과 목회자들의 수도 상당하다.

지난 2007년 당시 교회 안에 장애인 부서를 둔 교회는 37개 교회에 불과했다. 1981년 소망교회에 소망부가 설립된 것을 시점으로, 25년 정도가 지나서도 이 정도 숫자에 머물러 있는 수준. 한 해에 수백 개의 교회가 새로 개척되는 현실과 비교하면 극히 미미한 수준일 뿐이다.

교회가 품지 못하면 이들만이 모이는 공간이 만들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 그렇게 해서 생겨난 것이 농아인교회와 청각장애인교회 등으로 불리는 장애인교회. 서울지역에 20여 개의 농아교회가 있고, 132개의 청각장애인교회가 전국에 흩어져 있다.

이범성 교수(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는 예장통합총회 사회봉사부가 지난 6일 개최한 ‘장애인신학 정립을 위한 포럼’에서 “다른 나라에서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장애인교회와 비장애인교회가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장애인들을 불편해하고 장애인과 장애아동들을 배려하지 않는 교회와 주일하교 교육시스템을 가지고 장애인들을 교회 밖으로 몰아내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고 지적하고, “장애인 없는 교회는 장애 교회”라고 비판했다.

장애인 공과공부 교재 또한 지난 2002년에서야 만들어졌다는 것이 이런 현실을 극명하게 반영한다. “예장 통합총회의 경우 교회학교 장애인 부서 담당 교역자들의 요구를 중심으로 공과공부 교재를 편찬하는 일을 준비했고, 그 결과 2002년 국내 최초로 교단에서 발행하는 장애인 공과공부 교재가 햇빛을 보게 됐다”며 이계윤 목사(나사렛대학교 겸임 교수)는 설명했다.

# 지적장애인들을 위한 세례

또 하나 주목할 것이 ‘지적장애인(발달장애인)의 세례를 위한 지침’.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이들 또한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우리와 똑같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세례를 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과연 세례를 주는 교단이, 이런 지침을 마련한 교단들이 있을까.

장애인에 대한 세례와 구원에 대한 총회 차원의 지침 마련은 시급히 서둘러야 할 과제. 예장 통합총회도 2005년 개최된 ‘제90회 총회’에서야 마련했고, 총회가 발간한 예식서에 수록했다. 늦었지만 그나마 다른 교단에 비해서는 빠른 편이다.

지침서에서는 정신지체인(발달장애인)을 언어 표현이 가능한 사람, 신체적 표현이 가능한 사람, 모든 표현이 불가능한 사람, 즉 의사소통이 가능한 장애인과 지적능력이 낮아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사람으로 구분해 세례예식을 제시했다.

그렇다면 세례와 구원의 관계는 어떻게 정립했을까. 통합측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근거를 채택, “일정 연령이 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신지체(발달장애)인에게 세례를 베풀지 않는 것은 또 다른 차별”이라고 지적했다.

장애인의 구원에 있어서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에게 할례를 주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았던 이스라엘의 전통은 정신지체에게 세례를 주어 하나님의 권속으로 삼아야 할 근거가 된다는 것이 그 이유다.

또한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정신지체인에게 은밀하게 역사하고 계심을 믿어야 하고, 하나님은 모든 백성이 하나님에게 돌아와야 함을 원하고 계시며, 공관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을 믿는 중개인을 통한 장애인 치유의 기적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전제로 한 것이며, 이는 정신지체인들을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사역을 간접적으로 증언하고 있음을 제시한다는 이유에서다.

장애에 대한 ‘패러다임의 전환’도 시급한 문제. 20세기 들어 장애를 바라보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이루어지면서 장애의 원인은 개인이 아니라 사회에게 있다는 주장이 지배하게 됐다고 이계윤 목사는 설명하는데, “장애의 모델도 재활모델에서 사회적 모델로 변화하며, 장애인에 대한 용어도 부정적인 것에서 긍정적으로 바뀌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사회 통합과 정상화의 이념이 주류를 이루게 됐다”고 강조했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 또한 시설이 아니라 지역사회 안에서 함께 살아가야 할 존재로서 장애인을 바라봐야 하며, 장애를 정의하는 관점도 손상이나 불능이 아니라, 사회활동과 참여라는 관점에서 새롭게 정의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런 상황의 변화가 장애인을 능동적인 주체자로 만들어 본래의 위치를 회복하는 계기를 만들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우리나라의 장애인은 전체 인구의 3.09%. 숫자로 환산할 경우 1백47만2천여 명으로 추정된다. 이 중에서 약 89.4%가 산업화 진전에 따른 질병과 사고 등에 의한 후천적 장애인. 하지만 장애인 복음화율 5%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는 것이 17일 장애인주일을 맞는 한국 교회의 현실이다.

이계윤 목사는 “교회는 장애인 복지선교를 실천에 옮김으로써 교회의 본질을 회복해야 한다”고 지적하는데, “한국 교회는 그동안 장애인을 교회의 구성원으로 인정하지 못했던 것을 회개하고, 장애인과 함께 하는 하나님 나라의 맛을 보게 하는 교회가 돼야 한다”며 장애인들에 대한 교회의 애정과 관심을 촉구한다.
또한 이를 위해서는 예배당에의 접근에서부터 예배와 교육, 친교와 봉사, 선교 등 교회의 다양한 사역에도 장애인들이 차별 없이 참여하고, 활동함에 있어 불편함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한다.

누구나 장애에 노출된, 그리고 장애의 가능성을 안고 사는 시대의 한국 교회. ‘장애인이 한 명도 없는 교회’가 내가 출석하는 교회는 아닌지 돌아보자. 이범성 교수는 “장애인이 한 명도 없는 교회는 장애인들만 모이는 장애인교회를 세우게 만들어 교회가 장애인의 사회적 소외를 가속화하고 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게 만든다”고 힐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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