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세대 물려줄 ‘영적 유산’, 기도와 예배 회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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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세대 물려줄 ‘영적 유산’, 기도와 예배 회복하라
  • 표성중 기자
  • 승인 2011.02.15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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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교회 희망의 불씨는 어디에 있는가 - 한복협 발표회

▲ 지난 11일 '주여, 기도와 예배의 부흥을 주시옵소서'라는 주제로 개최한 한국복음주의협의회 월례발표회에 발제자로 나선 목회자들이 한국 교회의 기도와 예배 회복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최근 유명 목회자의 성추행 파문, 대형 교회 목회자들의 권력 다툼과 파벌 싸움으로 벌어진 폭력 사태, 사기 행각으로 구속기소된 목회자 등 한국 교회는 연일 문제가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교회 개혁’을 부르짖는 단체들과 목회자들은 그동안 심각하게 곪았던 교회 문제들이 서서히 터지기 시작한 것이라며 올 한해 한국 교회 치부는 계속적으로 드러날 것이라는 등 우려의 목소리를 전하고 있다. 강남교회 전병금 목사는 “한국의 초대 교회는 한국 역사가 교회에 부여한 사회적 책임을 훌륭히 수행해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칭찬을 받아 한국의 정신사를 새롭게 바꾼 반면 지금의 한국 교회는 대사회적인 책임을 망각해 버리고 오직 교회 내적인 성장에만 치중해 사회적으로 외면을 당하고 있는 것”이라고 강하게 질타하기도 했다. 그리고 교회 성장에만 치우치다 보니 목회자의 윤리적 타락, 효율성과 결과 중심의 비즈니스화 된 목회, 지나친 외형적 성장의 집착, 물량주의, 개교회주의 등에 자연스럽게 빠지게 돼 이제는 더 이상 헤어 나오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쓴 소리를 내뱉었다. 그렇다면 한국 교회 희망은 과연 없는 것인가. 더 이상 외형적 성장이 아닌 내적 부흥을 갈망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내적 부흥은 진정한 참회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올 초 한국복음주의협의회(회장:김명혁 목사)가 ‘한국 교회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주제로 월례발표회를 갖고, 한국 교회의 죄를 고백하며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지난 11일에도 ‘주여, 기도와 예배의 부흥을 주시옵소서’라는 주제로 발표회를 가지며 한국 교회 희망은 기도와 예배의 회복 밖에 없음을 고백했다. 이에 한국 교회를 향한 발제자들의 진심어린 충고를 들어본다. <편집자 주>

# 성령이 역사하는 영적 예배 드리자 - 방지일 목사(영등포교회 원로)
▲ 방지일 목사(영등포교회 원로)
하나님을 만나는 일이 바로 예배다. 하나님과 얼굴을 대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시선이 직선상에 놓이는 것이다. 때문에 어떤 부분이든 여기에 인위적인 것이 끼워진다면 예배가 예배될 수 없다. 오직 영으로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영의 역사가 있어야 주님과의 시선이 직선을 이룰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 인간적인 요소가 파고들어올 수 있다. 인간의 지능이 개입되면 흥분, 인간 중심의 감정 일변도로 기울어 자기만족의 흥을 예배로 오인하게 된다. 자신은 예배를 드리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을 만나지도 못하고 인간의 흥겨운 만족에 그치는 것으로 끝나고 만다.

하나님을 만나는 곳에서는 대화가 있다. 이 대화가 곧 기도다. 하나님께서 나를 찾으신다. 아브라함을 부르시듯 나를 찾으신다. “예, 여기 있습니다. 말씀하옵소서 듣겠나이다”라는 대화가 여기에 있게 된다.

대화의 장이기 때문에 나의 삶을 보고드린다. 받은 은혜를 감사한다. 기도는 죄 찾는 현미경이니 기도를 통해 나의 부족함이 드러난다. 잘못했다고 회개한다. 뉘우치고 고친다. 그리고 회개의 열매가 맺어진다.

독생자의 구속함이 대화를 덮어주신다. 사죄의 기쁨, 더 나아가 당당한 자녀의 지위에서 누리는 행복이다. 옛 지성소를 논한다면 대제사장만이 출입할 수 있는 위엄한 곳인데 이제 나는 무상으로 출입할 수 있는 당당한 권세를 받은 것이다. 무시로 하나님 앞에 출입하게 됐으니 실로 엄청나고 감격스런 지위다.

이렇게 허락된 지위와 그 권세로 인한 나의 삶에 대한 감사와 감격으로 그리스도의 삶을 닮을 수 있음이니 이것에 예배의 극치라 할 것이다. 이런 예배를 드림으로 성삼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 곧 독생자를 보내주시고 십자가에서 대속하신 그 희생, 이것을 성령으로 받게 된다. 성삼위 하나님으로 인한 만족감을 만끽할 때 예배의 극치를 맛본다.

죄인의 괴수인 나의 모습이지만 대속의 기쁨을 누리며 감격해할 때 주님께서 보시며 내가 너를 위해 십자가상에 죽었음이 아깝지 않으시다 하시니 내 속죄의 기쁨과 만족을 또 내가 받고 감사하게 된다.

이 모든 사실이 예배라 할 것이다. 이는 영으로써만 되어진다. 인간의 그 어떤 것도 거기에 끼워서는 안된다. 오직 영으로만 되어지는 것이다. 인위가 완전히 배제되어 질 때 성령이 강하게 역사한다. 그러므로 성령의 역사를 방해해서는 안된다. 전적으로 그의 지배하에 있는 삶이 되어야 한다.

# 새벽기도의 불씨를 지펴야 - 이광훈 목사(할렐루야선교교회 원로)
▲ 이광훈 목사(할렐루야선교교회 원로)
4년 전 안식년으로 2개월 동안 미국 세인트루이스 아들 집에 가서 아들이 다니는 한사랑교회에 출석해 주일날 예배에서 말씀을 전했다. 여전도회의 한 집사가 회장과 의논해 여전도회 주최로 새벽기도부흥회를 인도해달라고 해서 그 다음 주일에 말씀을 전하고 새벽기도 선포를 했더니 45명 출석하는 교회에서 42명이 새벽기도회에 참여해 은혜를 받았다.

나를 비롯해 담임목사, 성도들 모두 놀랐다. 90% 이상의 성도들이 참석하리라고는 아무도 상상을 하지 못했을 때 하나님의 음성이 귓가에 들려왔다.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눅 12:49). 나는 새벽 기도의 불을 미국 이민교회에 지쳐 있는 성도들에게 전하라는 음성으로 듣고, 6개월 동안 26개 교회에서 새벽기도부흥회를 인도하고 귀국했다.

그리고 한국에 들어와서도 부산 지역 20여 교회를 돌며 새벽기도부흥회를 인도했다. 각 교회마다 낮과 저녁에 하는 부흥회를 인도한다 할지라도 성도의 70% 이상이 참석하기 어렵다고 했지만 새벽기도부흥회에는 70~95%까지 참여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다.

특히 ‘40일 작정 새벽기도’를 강조하다보니 몸에 배여 계속 새벽기도회에 참여하는 성도들의 기도 제목이 응답받는 사례가 많이 들려오고, 교회의 부흥 소식이 들려와서 너무 감사하다.

주님은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올 수가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시 57:8),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시 46:5)라는 말씀처럼 우리는 모두 새벽을 깨워 기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기독교는 새벽의 종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역사와 기적은 모두 새벽에 일어났다.

새벽에 홍해가 갈라졌다(출 14:24,27), 새벽에 여리고성이 무너졌다(수 6:12,15), 새벽에 만나가 전 사면에 내렸다(출 16:12하), 새벽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다(눅 2:8~14), 새벽에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눅 24:1), 새벽에 예수님이 기도하셨다(막 1:35).

주님은 기도하셨고, 기도의 본을 보여주셨고, 기도하라고 명령하셨고, 기도를 가르쳐주셨다. 무엇보다 새벽기도회의 중요성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다.

우리 앞에 우리가 할 수 없는 홍해가 막혀 있을 때 새벽을 깨워 기도하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홍해가 갈라지는 역사가 일어날 것이다. 우리의 삶 가운데 여리고성 같은 문제가 놓여 있어 아무런 힘도 쓸 수 없을 때 새벽기도로 여리고성의 문제가 해결되는 주님의 도우심이 약속대로 새벽에 있을 것이다.

새벽에 만나가 내려오듯 우리의 삶 가운데 필요한 일용할 양식, 일용할 건강, 일용한 지혜, 일용한 능력, 일용할 물질이 새벽에 깨워 나와서 기도하는 성도들에게 주님의 약속대로 임할 것이다. 새벽에 어둠을 가르시고 빛으로 오신 예수님이 우리의 삶 가운데 생명의 빛으로, 진리의 빛으로, 믿음의 빛으로, 소망의 빛으로, 사랑의 빛으로, 새벽기도 하는 성도들에게 임하실 것이다.

새벽에 부활하신 주님께서 새벽기도 하는 성도들에게 풍성한 생명의 주님으로 만나주실 것이다. 한국 교회는 기도의 불을 새롭게 지펴야 한다. 내 자신이 5년 일찍 교회를 은퇴한 것도 한국 교회에 기도의 불을 다시 뜨겁게 지피기 위해서다. 한국 교회가 새벽에 기도했던 주님과 같이 새벽을 깨워 기도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새벽기도회의 부흥이 있을 때 한국 교회가 다시금 부흥하는 역사가 일어날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 주일 저녁예배를 회복하라 - 오정호 목사(대전새로남교회)
▲ 오정호 목사(대전새로남교회)
주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한다. 무엇보다 주일 저녁예배의 회복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주일 저녁예배는 우리에게 많은 유익을 준다.

첫째, 주일 저녁예배는 주님사랑 표현으로서의 예배다. 선교 초기 한국 교회 믿음의 선조들은 예배를 생명처럼 소중하게 생각했다. 온전한 주일성수에는 온전한 마음과 온전한 시간 그리고 주님과 성도들과의 온전한 연합을 포함한다. 주일 저녁예배는 오직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자신을 주님의 제단에 거룩한 제물로 올려드린다. 진정한 주님사랑만이 이웃과 자신의 직분에 대한 충성으로 열매 맺을 것이다.

둘째,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훈련으로서의 예배다. 성도의 세속화와 편리주의 추구는 맞물려 있다. 육체는 편안함을 갈망한다. 만약 육체가 원하는 대로 예배의 시간과 횟수, 방법을 정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예배라는 뜻 그대로 하나님께 엎드리는 것은 경배를 의미할 뿐 아니라 자기 부정을 말하기도 한다.

지금도 예배자를 찾고 계시는 주님 앞에 발견되는 예배자로 자신을 세우기 위해서 때로는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는 영적인 전투와 훈련이 필요하다. 특히 복음의 확산을 위해 문화적인 감각을 채용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시대의 정신과 문화적인 침투에 의해 예배를 내어주게 되면 교회와 성도는 본질을 탈취 당하게 될 것이다.

셋째, 신앙의 세대계승 현장으로서의 예배다. 주일 낮예배는 각 부서별로 나누어 드린다. 다음 세대는 전 세대의 영적인 삶을 보면서 배운다. 만약 주일 낮예배를 드림으로 성도의 예배의무가 종결됐다고 생각한다면 어떻게 다음 세대를 믿음의 견고한 세대로 세울 수 있겠는가. 주일 저녁예배는 세대 간의 장벽을 뛰어넘어 신앙의 세대계승을 이루는 가장 축복된 현장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부모의 예배드리는 모습을 보고 자라난 세대가 예배의 자리를 수호할 수 있다.

넷째, 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경험하는 현장으로서의 예배다. 개교회주의와 오염된 교단중심주의를 벗어날 수 있다. 주일 저녁예배는 이웃의 목회자를 초청해 예배드리는 강단교류를 통해 개교회주의와 교단중심주의의 악습을 무너뜨릴 수 있다. 또한 도시교회는 농촌, 어촌, 산촌의 형편을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위대한 믿음의 선진들의 신앙고백과 간증을 접하는 것은 물론 대형교회와 소형교회 사이의 가슴 따뜻한 교류를 통해 서로를 축복하며 격려하는 연합과 일치 상생을 경험하는 현장이 될 수 있다. 교회의 연합과 일치는 목회자가 되고나서의 문제가 아니라 유년기부터 훈련받아야 할 한국 교회 성도들의 영적 필수 과목이다.

다섯째, 여호수아 세대를 세우고 축복하는 현장으로서의 예배다. 모세가 여호수아를 이끌어 주고 사역의 정도를 몸으로 보여준 것처럼 부교역자들도 배우고 익힌 것을 현장에서 예배인도자로 자신을 드려야 할 필요가 있다.

담임목사를 필두로 교회 중직자들과 모든 성도들이 부교역자의 사역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축복할 때, 부교역자 자신을 물론 온 교회가 영적인 풍성함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후배들이 뻗어 나갈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어깨를 내어 준다면 교역자들 사이의 추문은 미담으로 바뀔 것이다.

한국 교회가 주일 저녁예배 회복을 통해 영적인 성숙과 도덕적 주권의 회복 또한 경험하기를 소원해 본다. 일상의 우선순위가 뒤죽박죽으로 말미암아 빚어진 영적인 카오스의 시대가 종결되고, 국민들을 복음의 능력으로 견인하는 축복의 시대가 진정한 예배회복을 통해 도래하기를 기도한다.

# 기도와 말씀에 전무하는 삶 - 임석순 목사(한국중앙교회)
▲ 임석순 목사(한국중앙교회)
사람이 모이는 곳은 어디나 문제가 있을 수 밖에 없다. 교회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초대교회 역시 성령 충만한 가운데서도 문제는 여전히 있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성령 충만한 사람, 가정, 교회라 해도 문제는 있다. 이렇게 문제가 생길 때마다 그 문제의 근원과 해결책을 성경적 관점에서 찾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 성경적인 관점은 바로 교회가 지도자를 중심으로 기도와 말씀에만 전무하는 것이다.

어제나 오늘이나 그리고 미래에도 오직 교회는 두 날개, 즉 기도와 말씀을 붙잡고 있어야 세상이 두려워한다. 신앙의 핍박이 있을 때 초대 교회 지도자들이 대처했던 방법을 통해 우리는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는 것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초대교회도, 사도 바울도, 다니엘도 핍박을 받을 때 오직 기도와 말씀에 전무했다. 이렇게 문제가 있을 때 교회와 성도들이 전무할 것은 기도와 말씀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교회들은 기도와 말씀은 뒤로 하고 세상적인 관점으로 문제를 바라보고 세상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이렇게 교회가 세상과 구별되지 못하고 오히려 세상의 눈치를 보고 세상이 원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니 세상이 교회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무엇보다 지도자들이 말씀과 기도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사단의 계략에 속지 않아야 한다. 초대교회 당시 과부들의 구제 사역으로 인해 헬라파와 히브리파 성도 사이에 원망과 다툼이 생김으로 사도들이 말씀과 기도에 집중할 수 없었다.

오늘날도 사단의 그러한 방해는 계속되고 있다. 성도들이 무너지고 교회가 쇠퇴하는 것은 결국 사단이 우리의 관심을 말씀과 기도로부터 다른 곳으로 돌리게 하기 때문이다. 즉, 본질에서 벗어나게 하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우리의 삶에서 기도가 얼마나 소중한지, 기도가 없을 때 우리의 삶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시는 것이다.

우리는 기도와 말씀에 전무하기를 힘써야 한다. 그리고 그 방향에 서 있을 때, 그 때 그 곳에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 일어나게 된다. 즉, 성도 한 사람이 기도와 말씀으로 강하게 무장하고 있으면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또 한 사람이 세워지게 된다. 교회가 말씀 전하는 일과 기도하는 일에 전무하고 오직 그 일에만 집중하고 헌신할 때 성령의 역사가 교회를 통해 일어날 것이다.

핍박과 고통, 탐욕과 욕심을 통한 삶의 부패, 그리고 중요하지 않는 것에 집중함으로 정작 말씀과 기도를 우선순위에 두지 못하게 만드는 사단의 전략에 맞서서 승리했던 초대교회의 승리가 그것을 잘 말해준다. 우리 역시 승리자로 살 수 있다. 이 땅에 승리를 위해 주님께서 오셨고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이다. 주님이 이루신 십자가와 부활의 승리는 이 땅의 모든 것들에 대한 승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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