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동산과 선지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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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동산과 선지생도
  • 승인 2002.06.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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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계에서 흔히 쓰는 말 중에 ‘신학교’를 ‘선지동산’ 또는 ‘선지학교’라고 하고 신학생(도)을 ‘선지생도’ 또는 ‘선지학생’이라고 지칭하는 사례가 있는데, 이는 신학교 또는 목회자(교역자) 양성학교(양성기관)라고 하고 선지생도(선지학도)는 ‘신학생(도)’ 또는 ‘목회자(교역자)후보생’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물론 성경에 선지학교라는 말이 그대로 명시된 바가 없고 다만 <엘리사> 시대에 벧엘과 여리고에 ‘선지생도’들에 관한 기록으로 보아(왕하2:3, 7,15, 4:1, 38, 5:22, 6;1), 선지자를 양성하는 수련기능이 있었던 것을(왕하 6:1; 선지생도의 처소 존재) 관념적으로 인용하여 오늘날 ‘신학교’를 ‘선지동산’(선지학교)이라 하고, 신학생(도)을 선지생도(학생)라 지칭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그렇게 지칭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어느 한 가지 역사적 산물이 오늘에 계승되어 전통화되는 과정은 그 내용(사상)적인 면과 형식(제도)적인 면이 항존성(恒存性)을 띠고 현재 뿌리내려 있어야 하는 것인데 성경에서 원용(援用)하여 선지동산이나 선지생도를 오늘에 제도적 원형 명칭 그대로 전용(轉用) 지칭하는 것은 재고돼야 한다.

구약의 ‘선지자’는 당시 신정(神政)국가의 영적 장래를 위해서 세웠던 직분으로서 그 뜻과 명칭에 있어서 ‘하나님의 대언자’(나비; 창 20:7) 또는 ‘선견(先見)자’(로에; 삼상 9:9, 코제; 미 3:7)로 기술되어 있는데 그 주된 직무는 하나님으로부터 환상과 계시와 실제적 말씀을 받아 가감이나 해석함이 없이 백성들에게 ‘교훈’하거나 ‘예언’하는 ‘계시 전달 자’(하나님의 대언자)의 직무가 있었던 것이며(신 18:18) 따라서 이런 선지자를 소명자거나 소명된 자에 의해 양육된 선지자를 통해서 구약선민을 지도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에 비해 오늘의 신학교나 신학생은 선지자의 직무적 기능에 있어서 예수님의 3직인 ‘선지자직’(왕상 19:16, 신 18:15, 행 3:22, 눅 13:33), ‘제사장직’(출 29:29, 히 5:1-10), ‘왕직’(삼하 1:14, 왕상 19:16, 사 9:6-7, 시 2:6, 마 28:18, 엡 1:21-22) 등이 사도직으로 이어 오늘의 ‘목사’의 직분과 직능에(엡 4:10) 포괄적 기능과 사상적 또는 관념적으로는 연계성을 띠고 있으나 제도적으로는 구약시대의 선지자직은 그 명칭과 직분이 소멸되었고 다만 신약교회의 특성에 맞는 제도로 변형됐다.

그러므로 당시의 선지생도 양성제도를 오늘의 하나님의 시대적 경륜을 좇아 양육하는 신약교회의 제도적 지위가 다른 대상인 ‘신학교’와 ‘신학생’에게 구약적인 명칭을 일치되게 적용하여 지칭하는 일은 올바른 것이 될 수 없다.
따라서 구약직분의 기원적인 관점에서 본 창설직인 ‘선지자’직의 전형(典型)은 구약에 한정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선지자직은 오늘의 교회에 항존(恒存)하지 않고 교회의 최고 지도자인 목사직을 세워 복음전도, 말씀강론, 신앙지도, 신령적 보호와 위로의 직무가 존속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선지자의 직분이 없으니 양성할 필요가 없고 야성과정이 없으니 선지동산(학교)이 존재하지 않으며 고전적인 선지생도가 존재하지 않아 선지자는 배출되지 않는 것이 신약교회 시대이다.

그런고로 신약교회의 최고 교육기관은 신학교이다. 이 신학교를 선지자시대의 관점과 관념으로 ‘선지동산’, ‘선지생도’로 호칭하는 것은 계시에 근거한 교회규범을 중심하여 살아가는 이 시대의 호칭으로 합당하지 않다. 그러므로 ‘선지학교’는 신학교로 ‘선지생도’는 신학생으로 지칭하는 것이 하나님의 시대경륜에 부합하는 것이 될 것이다.

김석한(기독신학 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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