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어머니의 기도와 밀전병이 저희들의 힘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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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어머니의 기도와 밀전병이 저희들의 힘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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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0.12.30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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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경희 작가의 ‘밀전병’

조용하던 마을이 갑자기 명절 분위기로 부산스러웠다. 집집마다 부침개 냄새가 진동하고, 어느 집에선가 울려오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음악 소리보다 더 경쾌하게 들렸다. 객지에서 자식들이 타고 온 자가용으로 온 마을이 주차장처럼 변했어도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았다.

그러나 황 노인만은 심란한 얼굴로 먼산바라기를 하고 있다. 그는 간간히 땅이 꺼질 듯 한숨을 내쉬었다. 밀전병 거리를 만들던 할머니는 황 노인의 한숨 소리를 들을 때마다 가슴을 졸였다. 그리고는 스산한 눈빛으로 벽에 붙은 사진을 올려다보았다. 올봄에 초등학생이 된 손녀가 복사꽃처럼 환하게 웃고 있었다. 할머니는 손녀의 볼에 두 손을 얹고 기도했다.

“하나님. 저 예쁜 손녀 얼굴 꼭 좀 보게 해 주세요. 제발.”
“에잇, 재수 없게. 또 궁상떨고 앉아 있네.”

평소에 할머니가 교회 다니는 걸 못마땅해 하던 황 노인은 얼굴을 찡그리며 밖으로 나갔다.
텃밭에 쌓인 눈이 햇살에 반사되어 은빛 모래를 뿌려놓은 것처럼 반짝거렸다.
그 때 마침, 최 영감 집 앞으로 검은 세단이 미끄러지듯 들어섰다. 차가 멈추자 모피로 온몸을 감싼 며느리와 두 손자가 내렸다. 곧 이어 풍채가 좋은 아들이 뒤뚱거리며 자동차 문을 닫았다.

“아이쿠, 내 강아지 왔구먼. 어서들 오너라.”

최 영감이 과장된 몸짓으로 손자 녀석을 안았다. 황 노인은 안 보는 척 딴청을 떨었지만 부러운 마음만은 숨길 수 없었다. 멍하니 서서 손자의 손을 잡고 들어가는 최 영감을 바라보았다. 최 영감이 안으로 들어가다 말고 서서 황 노인을 향해 실실 웃었다.

“약 올리나. 저 영감탱이가!”

황 노인은 혼자 구시렁거리며 안으로 들어왔다. 밀전병 속을 다 만들고, 만두를 빚던 할머니가 뭔 소린가 싶어 황 노인을 쳐다봤다.

“집어 치워. 누가 먹는다고 만두야 만두가?”
“그래도 명절인데…….”
“명절은 무슨 놈의 명절, 개미 새끼 하나 얼씬하지 않는데……. 내, 참. 동네 창피해서 살 수가 있나.”
황 노인은 봇물 터지듯 그간 아들에게 쌓인 불만을 터트렸다.

“없는 돈에 대학까지 가르쳤더니 고작 한다는 게 가난한 출판쟁이라구? 저 최 영감 아들은 고등학교만 나왔어도 세단 차만 몰고 다니더구먼.”
“아범인들 마음이 편하겠어요? 요즘 그 뭐라카드라. 맞다. 책방들이 다 문을 닫아 아범 출판사도 문 닫을 지경이라잖아요.”
“그렇다고 명절에 코빼기도 안 보여? 후레자식 같으니라고!”

황 노인은 애꿎은 할머니에게 화를 낸 뒤, 다시 문을 박차고 나갔다. 집안에 찬바람이 일렁였다. 손에 밀가루를 묻힌 채, 주방과 거실을 오가던 할머니는 전화기를 잡았다. 하지만 이내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실은 며칠 전 아들에게 전화가 왔었다.
“어머니, 죄송해요. 주 거래처인 대형 서점이 문을 닫을 것 같아서…….”
아들은 말을 잇지 못했다. 젖은 아들의 목소리를 듣자 할머니도 울컥 했다.
“힘들어도 명절엔 내려오너라.”
“어머니, 아버지께 잘 말씀 드려 주세요. 아무래도…….”

황 노인은 대문 앞에 앉아 남의 집 자식들이 끌고 온 자가용을 살폈다. 자가용만으로도 그들의 삶을 가늠할 수 있었다. 유통업을 한다는 아랫집 허 씨네 막내는 소형 트럭을 타고 왔고, 읍에서 레스토랑을 한다는 김 서방네 큰 아들은 그랜저를 타고 왔다. 황 노인은 지난 여름 밤에 도둑처럼 잠깐 다녀 간 아들의 낡은 자가용이 떠오르자 고개를 저었다.

그 때였다. 앞집 담장 너머에서 들려오는 범상치 않은 소리에 귀가 솔깃했다.
“아버님. 저 큰 봉 밑에 골프장이 들어선다는 말 들으셨지요. 역시 저는 재수가 좋다니까요. 어떻게 내가 사 놓은 땅마다 모두 대박이 나는 거죠? 이제 아버님 힘든 농삿일 하지 마셔요. 거름 값도 안 나오는 농사는 지어 뭣해요. 그냥 슬슬 마실이나 다니시면서 즐겁게 사셔요.”
‘청정지역으로 유명한 우리 동네에 골프장이 들어서다니.’

황 노인은 가슴이 둥당 거렸다. 단지 최 영감이 부럽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왠지 마을이 송두리째 도회지 사람들에게 빼앗길 것만 같았다.
‘아직까지 물 끓이지 않고 그냥 받아먹고 살았는데, 이젠 그것도 끝이겠구먼……. 소도 풀밭에 풀어 놓을 수도 없을 테고……. 외지 사람들이 버글대면 동네 사람들이 서로 장사 해 먹느라 아귀다툼일 테고.’

어쩌면 황 노인 자신은 마을을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아니, 자네 얼굴이 왜, 땡감 씹은 표정인가? 여태 아들이 안 왔는감?”
대문을 열고 과일 박스며 선물 쌌던 포장지를 버리러 나오던 최 영감이 황 노인의 비위를 건드렸다.
“남의 아들이 오건 말건 무슨 상관인가? 골프장 생기면 이문 챙길 생각만으로도 머리가 복잡할 턴데.”
“도둑괭이처럼 남의 말 다 엿듣고 있었구먼? 왜 배 아퍼?”
“이 놈의 영감탱이가! 돈 좀 있다고 간이 배 밖으로 나왔나?”

두 노인이 늙은 수탉 싸우듯 씩씩대며 몸싸움을 벌였다. 황 노인과 최 영감은 단 한 번도 이 동네를 떠난 적이 없는 토박이자 오랜 지기였다. 하지만 황 노인과 최 영감은 물과 기름처럼 늘 앙숙이었다. 특히 동갑내기인 아들 때문에 벌이는 심리전은 극에 달했다.
“이 놈아, 내 아들 대학 떨어져 빌빌 거릴 때, 그렇게 날 비웃더니 꼴좋다. 대학 나오면 뭐 하노. 명절에 고향에도 못 내려올 처지면서.”
“이 놈이 터진 입이라고 지 멋대로 씨부렁거리네. 그깟 땅 부자 하나도 안 부럽다. 벼락치기로 부자 된 놈 치고 제대로 사는 꼴 못 봤으니까.”

황 노인이 최 영감을 노려보며 악다구니를 해댔다. 그 때 최 영감의 아들이 불쑥 대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는 황 노인과 눈이 마주치자 마지못해 인사를 했다.
“아이쿠, 아직도 아버님들은 싸울 힘이 있으신가 봅니다. 허허. 그나저나 민규는 왔나요?”
최 영감의 아들이 너스레를 떨며 물었다.
“우리 아들. 네 꼴 보기 싫어 안 왔다. 왜?”

황 노인은 속에도 없는 말을 한 마디 툭, 던져 놓고는 대문 안으로 들어왔다.
안으로 들어서자 할머니가 여전히 벽을 바라보며 기도 중이었다. 황 노인은 학사모를 쓴 아들의 졸업 사진을 보자 갑자기 속에서 불이 났다.

“궁상 그만 떨고 저 놈의 사진이나 모조리 치워 버려!”
황 노인은 할머니를 향해 냅다 소리쳤다. 기도를 마친 할머니가 아이 달래듯 황 노인을 향해 말했다.
“너무 그러지 마슈. 영감. 그래도 아범이 만든 책이 그 뭐라카드라.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 만든 책인가 뭐 그런 책으로 뽑혔다잖아요.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구요. 반드시 주님이 우리 아들은 크게 쓰실 거예요.”
“하나님의 아들 좋아 하시네. 할망구가 명절에 제사도 안 지내고 하니까 조상님이 노해서 집안이 망조가 드는 것 아니냐구?”

황 노인은 할머니가 집안 제사를 모두 치워 버린 것이 늘 불만이었다.
특히 명절에 남들은 제사 음식 만드느라 분주한 걸 보면 부럽다 못해 화가 치밀었다. 거기다 어려서부터 제 어미 따라 예배당에 다니던 아들도 제사를 거부해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그 아들놈이 명절조차도 쇠러 오지 않다니.

“이 놈 이제 내 자식 아니여. 하나님인지 예수인지 그 아들이나 실컷 하라구 해.”
황 노인은 애꿎은 예수에게로 모든 화살을 돌리고 있었다.
“그게 아니라, 아범이 빈손 들고 고향 오기 뭣해서 못 오는 거죠. 그 심정은 오죽하겠어요. 우리 그저 조용히 지냅시다. 명절 지나고 조용히 한번 다녀간다고 했어요. 당신한테 죄송하다고 전화도 왔었구요.”
“아이쿠, 못난 놈……. 못난 놈…….”
황 노인은 다글다글 혼자 속을 끓이다 안방에 들어 가 텔레비전을 틀었다. 어느 새 온 마을이 칠흑같이 어두워졌고, 간간히 개 짖는 소리만이 울릴 뿐이었다. 텔레비전에서는 고향을 찾는 사람들 이야기로 무성했다. 황 노인의 한숨 소리는 밤이 깊도록 계속 됐다. 어느 새 자정을 알리는 자명종 소리가 슬프도록 크게 들렸다.

할머니는 잠이 오지 않아 주방 겸 거실에 앉아 밀전병을 부치기 시작했다. 어려서부터 아들이 유난히 좋아하던 밀전병이다.
“어머니가 만든 밀전병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어요.”
입 안 가득 밀전병을 물고 환하게 웃던 아들의 모습이 떠오르자 목젖이 아팠다. 할머니는 어느 정도 밀전병을 부쳐 찬합에 넣은 뒤, 정리를 했다.

못내 서운해 손녀의 사진을 한 번 더 바라보고 있는데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할머니는 신발도 제대로 신지 않은 채 대문을 열었다. 어둠 속에서 검은 물체가 어른거렸다. 아들 내외와 손녀였다. 할머니는 꿈인가 싶어 눈을 비볐다.

“어머니, 걱정 많이 하셨지요?”

차에서 내린 아들이 어머니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곧이어 복사꽃을 닮은 손녀가 달려 와 품에 안겼다.
“할머니, 보고 싶었어요.”

품에 안긴 손녀에게서 딸기향내가 났다. 며느리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할머니는 너무 반가운 나머지 손녀의 손을 끌다시피 들어오며 외쳤다.

“영감, 왔어요. 왔어. 우리 토끼 같은 손녀딸이….”

텔레비전을 켜 놓은 채 깜빡 잠이 들었던 황 노인이 당황한 얼굴로 문을 열었다. 아들 내외와 손녀딸이 넙죽 엎드려 절을 올리자 황 노인의 굳었던 표정이 활짝 펴졌다.

“거래처에서 밀린 돈을 조금이나마 준다고 해서… 이제야 왔어요. 아버님, 내년에는 지금보다 좀 나아질 거예요. 죄송해요.”

아들의 얼굴에 옅으나마 희망이 묻어 있는 것 같았다. 황 노인은 자신도 모르게 앞집을 내다보았다.
‘최 영감, 이 놈아. 내 아들도 왔어.’
황 노인은 당장이라도 최 영감에게 달려 가 자랑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아범아, 여기 좋아하는 밀전병 부쳐 놓았다. 아무 것도 생각지 말고 이것 먹고 힘 내거라. 하나님은 절대 기도씨 하나도 소홀히 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만 명심하면 된다.”

아들은 늦은 밤이라는 것도 잊은 채 따끈따끈한 밀전병을 연신 입으로 가져갔다. 옆에 있던 손녀도 아빠를 따라 밀전병을 맛나게 먹었다.
“어머니, 사실은 저 사람이 어머니의 밀전병을 먹어야 힘이 날 것 같다고 해서 내려왔어요. 아직은 힘들어요. 그러나 어머니의 기도와 밀전병이 저희들의 힘이라는 걸 한 번도 잊은 적 없어요.”
며느리가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할머니는 말없이 며느리의 손을 잡아 주었다.





● 박경희 작가
2004년 월간문학 <사루비아> 단편소설로 등단
2006년 <여자나이 마흔으로 산다는 것은> 에세이 출간
2008년 <이대로 감사합니다> 기도시집 출간
2009년 <분홍벽돌집> 청소년 소설 출간
2006년 한국프로듀서연합회 제공 방송 라디오부문 작가상 수상
2007년 대표에세이 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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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인순 2011-01-12 10:38:49
박경희작가님의 소설 재미있게 읽었어요 명절에 있을법한 노인들의 외로움 생동감있어 재미있었어요 황노인과 최노인의 갈등이 재미를 더해줬어요. 명절에는 흔히 이런 소외가 생기곤하죠 결말의 해피도 흐믓했어요 노인들이 슬픈것은 싫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