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사마리아인의 삶, 작은 정성에서 시작돼요”
상태바
“선한 사마리아인의 삶, 작은 정성에서 시작돼요”
  • 표성중 기자
  • 승인 2010.12.29 19: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신년르뽀 - 대구서현교회 ‘사랑의 도시락’ 나눔의 현장

갑자기 불어 닥친 매서운 한파 속에서 그 누구보다 더욱 움츠러 들 수밖에 없는 소외된 이웃들.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따뜻한 사랑이 담긴 도시락을 전달하며 새해를 힘차게 여는 선한 사마리아인들을 만나고 왔다.

대구서현교회(박순오 목사)가 매주 한번씩 펼치고 있는 ‘사랑의 도시락’ 나눔의 현장. 지난 수요일 새벽기도를 마친 성도들은 집으로 돌아가 따뜻한 이불 속에 몸을 맡기는 대신 교회 식당으로 향했다. 대구 지역에 살고 있는 독거노인과 소년소녀가장들에게 전달할 점심 도시락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식당으로 내려 간 성도들은 팔을 걷어부친 채 전날 미리 준비해놓은 야채들과 나물을 다듬고, 밑반찬으로 사용될 두부를 썰고, 쌀을 씻어 밥을 짓는 등 분주하게 움직였다.서서히 날이 밝아오면서 성도들의 손길은 점심시간에 맞춰 배달될 ‘사랑의 도시락’ 준비로 점점 더 바쁘게 움직였다.

삼삼오오 둘러앉아 두부와 전을 부치고, 커다란 주걱을 이리저리 휙휙 저어가며 미역국을 끓이고, 나물을 무치고, 담가놓은 김치를 포장하는 등 식당 안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가운데 고소한 냄새로 가득찼다.

10년째 도시락 반찬을 만들어왔다는 김은주 집사.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사랑을 이웃들에게 먼저 전달하고 싶어 봉사에 적극 나섰다.

“예수님은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잖아요. 그 사랑을 이런 작은 봉사로 표현할 수 없겠지만 힘닿는데까지 하고 싶어요. 엄마가 남을 돕는 모습을 보면서 그 누구보다 자식들이 제일 좋아하고, 격려해줬어요. 그러니까 더욱 힘을 내야죠.”

오전 10시쯤 됐을까. 점심 도시락을 이웃들에게 전달해 줄 봉사자들도 하나둘씩 식당으로 모여들었다. 때마침 밥과 국, 모든 반찬이 모두 만들어졌다. 봉사자들은 질서정연하게 3개로 나뉘어진 찬합 안에 준비된 도시락 재료들을 차례차례 담기 시작했다.

비록 소외된 이웃들에게 전달될 점심 한 끼의 식사였지만 봉사자들은 위로와 함께 반찬을 담았고, 소망과 함께 국을 담았다. 또한 사랑으로 밥을 담는 등 모든 정성을 다해 도시락을 포장했다. 이날 총 220개의 도시락이 만들어졌다.

이웃들을 향한 작은 정성이 모여 시작된 ‘사랑의 도시락’은 지난 1999년 5월부터 시작돼 올해로 11년째를 맞이했다.

“동사무소에서 독거노인과 소년소녀가장들을 도와줄 수 있겠냐며 교회에 요청을 했었는데, 그때부터 이 사역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매년 조금씩 늘어가더니 현재 200가정이 훨씬 넘었네요.”

‘사랑의 도시락’ 팀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성배 집사. 그는 매주 봉사자들의 참여를 독려하며 도시락 배달에 착오가 발생하지 않도록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작은 정성이지만 어려운 이웃 모두에게 골고루 도시락이 돌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도시락을 전달하면서 자신은 이제 괜찮다며 더 어려운 이웃들에게 도시락을 전해주라며 추천해주는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사실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들도 도시락을 마다할 상황은 아니죠. 하지만 자신보다 더 힘든 이들을 향한 사랑과 배려를 보여주시는 그 모습에서 감동과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위로와 소망, 사랑을 가득 담아 정성껏 포장한 도시락은 열한개 팀으로 나눠진 배달팀의 정성이 더해져 도움의 손길이 절실한 이웃들에게 전달된다. 차량으로 도시락을 배달하는 봉사 4년차의 박영식 김일수 집사 일행을 따라 나섰다.

“저는 화요일에 도시락 재료들을 준비하기 위한 장보기 봉사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자영업을 하기 때문에 직장인들보다는 조금이라도 시간을 더 낼 수 있기 때문에 기꺼이 동참하게 됐죠.”

박 집사의 차량에 몸을 싣고 좁고 좁은 골목을 다니며 독거노인들에게 도시락을 전달했다. 길 가에 차를 잠시 주차해 놓고 양손에 도시락 가방을 들고 “할머니, 할아버지, 도시락왔어요”라고 외치며 대문을 열었다.

나이가 들어 거동을 잘 못하는 노인들이기 때문에 직접 집 안까지 들어가서 도시락을 전달 한다. 그리고 배달하면서 빼놓지 않고 하는 것은 그 분들의 얼굴을 일일이 확인하는 것이다.

“나이 드신 분들이라 병원에 자주 입원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리고 돌아가시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때문에 어르신들의 건강상태를 챙기는 것도 당연한 저희의 몫이죠.”

기꺼이 그들의 아들딸 노릇까지 자처하고 나선 봉사자들은 서둘러 다른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감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아주 깊숙한 골목 안 파란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90세 이상으로 보이는 무척 왜소한 할머니가 살고 계신 집이었다. 방과 연결된 부엌문을 열었다. 무척이나 추운 날씨였음에도 보일러도 틀지 않고 계셨다. 부엌 안에 있는 양동이의 물도 이미 얼어붙어 있었다.

“할머니, 또 보일러 안틀었어요? 이러다가 얼어 죽을 수 있어요. 전기불도 안켰네. 다른 날은 몰라도 오늘 같은 날에는 제발 보일러도 틀고, 전기불도 켜고 있어요.”

냉골 바닥에 이부자리 한 장 깔아놓은 채로 앉아계시던 할머니는 잠깐 동안의 대화가 오고 가는 도중에도 전기 스위치에서 손을 떼지 못했다. 손님이 왔으니 전등불을 켜놓긴 했는데 전기세 걱정에 안절부절하시는 모습이었다.

정부에서 나오는 생활보조금만으로 생활하기 빠듯하기 때문에 영하로 내려간 날씨 속에서도 맘놓고 보이러를 제대로 켤 수 없는 것이다. 사실 대다수 독거노인들도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이 추운 겨울을 나야만 한다.

“할머니, 다음 주에 또 올테니까 그때까지 건강하셔야 합니다. 아셨죠? 근데 옆방에 계시는 할머니는 어디 가셨나 보네요. 도시락 놓고 가니까 대신 꼭 전달해 주세요.”

도시락을 전하고 나오는 뒤를 할머니가 대문 앞까지 따라나서며 정말 고맙다고, 추운데 너무 고생한다고, 조심히 가라는 말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그렇게 박 집사 일행과 27개의 점심 도시락을 독거노인들에게 전달했다. 도시락 배달을 마치고 교회로 다시 돌아온 시간은 12시 30분. 모든 봉사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며 점심식사를 하고, 각자의 일자리로 다시 돌아갔다. 일부 봉사자들은 부엌에서 지난 주에 배달했던 수거된 빈 도시락통을 씻으며 하루의 봉사를 마무리했다.

“지금도 동사무소와 사회복지사들로부터 많은 지원 요청을 받고 있어요. 하지만 모든 분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주지 못하는 것이 언제나 미안할 뿐입니다. 한정된 예산, 한정된 봉사 인원들이 늘 아쉽고, 부족할 수밖에 없죠.”

스스로 수고로움을 감내하면서도 오히려 더 많은 이들을 돕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하는 김성배 팀장과 봉사자들. 한두 번 봉사하는 것은 쉬울지 모른다. 그러나 매주, 그것도 1년 동안 봉사자로 참여하게 되면 도시락 배달 때문에라도 단 한번도 빠져서는 안된다.

그만큼 보통의 각오로는 이 일을 시작할 수 없다. 하지만 이날 봉사자들은 한결같이 내년에도 또 봉사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예수님이 사회의 약자와 병든 이들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듯, 자신들은 하나님께 받은 그 큰 사랑을 이렇게나마 전하고 싶었다고 고백하는 ‘사랑의 도시락’ 봉사자들. 이들과 같은 선한 사마리아인들이 있어 이번 겨울 추위는 금새 물러갈 것 같다.

올 2011년에는 ‘사랑의 도시락’ 봉사자들처럼 한국 교회 안에서 소외된 이웃들을 향해 펼쳐지고 있는 크고 작은 사랑의 실천이 나라 전체로 퍼져 나가기를 기대해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