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적 돌봄사역’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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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적 돌봄사역’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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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0.09.08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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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수 목사<서울 광은교회>

한국 교회는 지나온 세월만큼이나 힘든 사회적 역경을 경험하면서 성장해 왔다. 지나온 시대를 뒤돌아보면 그 시대마다 맞는 목회를 하여 왔다.

1950년대에는 민족의 상처 속에서 위로의 목회를 해야 했으며, 1960년대에는 가난 극복이 목회의 최대 관심사였기 때문에 삼박자 설교(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고, 강건해지는 목회)를 해야 했고 1970년대에는 독재에 항거한 목회 속에서 성령론의 목회가 공존한 시대의 목회를 해야 했다.

그리고 1980년대에는 성경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나머지 성경공부(베델 성서, 크로스 웨이, 네비게이트, 수많은 소그룹 목회)의 목회를 했으며, 1990년대에는 열린 목회와 찬양이 강조된 목회의 바람이 불어 왔다.

그렇다면 21세기에는 어떤 목회를 해야 할 것인가? 핵 가족이 되면서 개인의 소중성이 강조된 나머지 이혼과 자살, 우울증, 실업률, 독거노인 문제 등으로 인해서 우리 사회는 너무나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이제는 한국 교회가 목회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그 전환하는 이유 중 하나가 한국 초기 목회현장에 좋은 문화와 전통이 사라져 가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새벽기도회와 심방과 구역모임이다. 그러므로 한국 교회는 시대적인 과제를 안고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독립화된 사역을 위한 목회적인 돌봄 사역이 필요하다.

# 목회적 돌봄 사역이란 무엇인가?
목회적 돌봄 사역이란 한 마디로 신앙과 기도만으로 성도를 돌보던 것을 철저히 개인화하여 목회자가 성도들을 돕는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돌봄의 사역은 목회자들이 성도들의 아픔을 듣고 대안이나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의 문제를 들어주면서 돌보는 목회 상담적 돌봄 사역이다.

목회자의 사역은 크게 3가지다. 설교, 상담, 행정이다. 이 세 가지는 모두 소중하다. 목회자는 설교 이후에 성도들을 만나면 모두 상담자로서 그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한다. 그 중에서도 상담은 목회자의 필수 사항이다.

필자가 소장으로 사역하는 서울가족상담센타(www. seoulfc.org)에서 많은 목회자들에 상담사역을 강의하면서 필수적으로 강조하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목회의 상담사역을 강조한다. 그 중에 쉬운 예를 든다면 성폭력, 가정폭력 상담은 목회적인 차원에서 누구나 할 수가 있지만 사회적인 문제로 인해서 지금은 준비된 목회자(자격증 소지자)만 할 수가 있다.

지난해 어느 모 교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교회에서 열심을 다해 봉사하고 헌신하던 성도가 가정 내의 문제로 자살을 했다. 그때 교회는 성도가 자살을 택할 만큼 위태로운 상태였음을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뒤늦게 목회자와 성도들은 한 성도의 자살 사건으로 인해서 하나 같이 “진작에 알았더라면…”하고 후회를 했지만 그야말로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격이었다. 이러한 문제들이 목회의 현장에는 비일 비제하다. 교회에서 충성하며 헌신적인 봉사를 하는 사람들이 어느 날 자신의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이제 목회자들은 외향적인 돌봄보다도 성도들의 내면적인 문제까지 모두 돌아보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 교회 안에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
어느 교회든지 자살, 이혼, 우울증, 병원에 입원하고 있는 환자들, 불치의 병으로 시한부 생을 사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슬픔에 잠긴 사람들, 독거노인들, 장애인들, 직장을 잃고 위기에 빠진 사람들, 고독한 사람들, 무력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 집안에만 갇혀 살아가는 사람들, 알코올 중독자들, 교회에 새롭게 나온 사람들, 영적인 위기에 빠져 있는 사람들, 장기 결석자들, 인터넷 중독에 빠진 사람들, 영적 무기력증에 빠진 사람들, 임종을 기다리고 있는 환자들, 선교사의 자녀들 등등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한국 교회는 새신자들에게만 돌봄을 하고 있다. 대부분 기존 신자들을 향해서는 단회적인 심방으로 돌봄을 대신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목회자들이 돌봄 사역을 공부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매년 년초에 교회들은 새로 임명을 받은 직분자들을 위해서 제직 세미나를 한다. 그러나 매년 하다가 보니까 평생 집사인 분들이나, 항존직으로 봉사하는 분은 직분에 대해서 무감각해져 버렸다. 평신도들에게 소명을 발견하게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제 한국 교회는 평신도들이 자신에게 맡겨준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힘들고 어려운 성도들을 돌보는 돌봄의 목양적인 사역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교회는 직분자들을 통해서 돌봄의 사명을 주어야 한다. 그 중에 서로 어렵고, 낙심하고, 좌절하고 힘들어하는 성도들을 돌보는 사역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목회적 돌봄을 주는 사역으로 목회의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 하나님은 돌봄의 하나님이다
예수님의 돌봄의 사역은 분명하다. 소외된 사람, 병든 사람, 새 신자, 중풍병자, 어려운 일을 만난 사람, 장기적인 환자, 알코올 중독자, 이혼한 사람, 사별한 사람, 직장에서 실직한 사람들을 모두 돌보아 주셨다.
이뿐 아니라 사도 바울도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행 20:35). 이렇게 예수님의 영향을 받아서 사도 바울도 목양적인 돌봄의 사역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 이유는 성도들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딤후 3:17)하기 위해서였다.

성도들이 건강한 삶으로 살도록 언제나 푸른 초장 잔잔한 물가로 인도해야 할 책임이 목회자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 교회는 믿다가 낙심한 사람들, 실족한 사람들, 장기 결석자들, 이혼자들, 영적 불량자들을 소외시 한 체 돌봄을 새 신자에게 만 역점을 두고 있는 실정이다.
새 신자는 중요하고, 믿다가 잃어버린 양들에게는 관심을 집중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목회 상담적인 돌봄 사역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리 주님은 목회자들을 향해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 …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 …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마 25:35-45).

옥중에 있을 때, 병들었을 때, 낙심하고 절망하고 있을 때, 나그네 되었을 때, 벗었을 때, 끊임없이 돌아보았느냐는 말씀 속에 주님의 선명한 돌봄의 기준을 볼 수가 있다.

# 영혼의 돌봄자가 되어야 한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께서 양 무리들을 돌보신 것처럼 목회자들은 성도들을 잘 돌보는 목회자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돌봄자가 해야 할 준수 사항이 있다.

첫째는 성도들을 돌보면서 들은 비밀을 지켜주는 것이고(keep confidentiality), 둘째는 그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 주는 것이며(listen well), 셋째는 언제나 같이 있어(be there) 주어야 한다. 이때 목회자들은 어렵고 힘든 가운데 있는 성도들에게 하지 말아야 할 말과 해야 할 말이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이제 한국 교회는 돌봄 사역으로의 목회 패러다임(Paradigm Shift)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는 돌봄 사역(Care Ministry)의 필요성을 깨닫고 교육을 해야 한다. 목회자들은 교회 안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더 가까이 가서 같이 있어(be there) 줌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증거 하는 목회사역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일을 위해서 신학교에서도 목회적인 돌봄사역을 교육함으로서 목회의 현장으로 나갈 때에 목회가 풍성해 질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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