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도냐 높이냐
상태바
태도냐 높이냐
  • 운영자
  • 승인 2010.09.08 17: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철재 목사<기독교한국성서하나님의교회>

산악인의 미덕은 태도(Attitude)를 높이(Altitude)보다 귀중히 여기는 것이다.
오은선은 여성 최초로 에베레스트산 14좌 등정을 달성한 기념비적 사람이다. 문제는 오은선의 카첸중가 등정 사진 속 지형이 실제 정상에 없는 것이라고 대한산악연맹이 판정한 것이다.
진실이 무엇이든 확실한 것은 오은선의 등정 태도에 객관성의 부족한 이유가 있는것은 아닐까 하는 점이다. 더 큰 문제는 태도(Attitude)보다 높이(Altitude)를 중시하는 상업주의가 산악계에 만연되어있다는 것이다.

미국기자 마이클 코더스의 책 “에베레스트의 진실”에 의하면 에베레스트의 베이스캠프에는 텐트 500채에 1,000여명이 북적이며 음식과 술, 매춘과 마약까지 거래된다고 한다.
2억 원을 내면 등정대행사가 팀 구성, 장비 운반까지 완벽하게 준비해준다. 이렇게 해마다 500여명이 에베레스트에 오른다.

코더스는 등반이 상행위로 전락했고 에베레스트는 “인간성의 무덤”이 됐다고 개탄한다.
오은선의 도전 정신이 인류사의 자산으로 남기 위해서, 그리고 산악계의 발전을 위해서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태도보다 높이를 중시하는 성과주의, 상업주의의 질병은 치유되어야 할 것이다.

청문회 정국의 소용돌이가, 그동안 한국사회가 경제성장이라는 최면에 걸려 상실했던 삶의 태도와 사회적 정의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된 것 같아 그나마 다행이다.

임명직 공직자든 선출직 공직자든 그가 오른 사회적 성취의 높이보다는 그가 어떻게 그 곳에 설 수 있었는지의 삶의 태도가 더 중요한 판단기준이 되어야 할 것이다.

꿩 잡는 것이 매라는 식의 성과주의가 사회적 분열의 첫 단추가 되고 있다. 관행이니깐, 능력이 있으니깐, 얼마간의 도덕적 흠결쯤은 덮어주자는 식이 보편화 된다면 청문회는 해서 무엇하며 사회정의를 논할 필요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공직자의 도덕성은 공직자의 능력보다 우선시되는 과제여야 한다.
조선조 시대 참봉 홍기섭의 집에 도둑이 들었다.

그런데 아무리 둘러봐도 훔쳐 갈만한 물건이라곤 헌 솥단지 하나뿐이었다.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것은 이를 두고 한 말이구나. 벼슬하는 양반이 어쩌면 이렇게 가진 것이 없을까?” 기가 막힌 도둑은 오히려 가지고 있던 돈 꾸러미를 솥에 넣고 돌아갔다.

이튿날 조반을 지으려고 솥뚜껑을 열던 여종은 돈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여종은 돈을 들고 주인에게 달려갔다. “주인님, 이것은 아마 하늘이 내리신 물건인 듯합니다. 이 돈으로 양식과 땔감을 장만하면 당장 궁색함은 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종의 말을 듣고 난 홍기섭은 엄하게 꾸짖었다. “시끄럽다. 어찌 하늘이 내린 물건이겠느냐, 누가 나를 동정해서 갖다놓은 물건이니 주인을 찾아 돌려주어야겠다.” 그러고 나서 홍기섭은 “돈 주인은 와서 찾아가라.”고 대문에 방을 써 붙였다.

도둑은 뒷일이 궁금해서 살피려왔다가 괴이한 방을 보고 여종을 불러 은밀히 물어보았다. 자초지종을 듣고 난 도둑은 홍기섭 앞으로 나아가 무릎을 꿇었다.

“제가 어젯밤 물건을 훔치려고 참봉 댁에 들어왔다가 너무도 가난해 보여 솥에다 돈을 두고 나왔습니다. 오늘 와서 이처럼 어른의 거울 같은 양심을 보니 저 자신이 무척 부끄럽습니다. 앞으로는 새 사람이 되겠습니다.” 홍기섭은 좋은 말로 훈계하여 도둑을 돌려보냈다. 이 홍기섭의 손녀가 후에 헌종의 비가 되니 그가 곧 명헌왕후시다(김영아, 한국의 탈무드).

공정사회 건설이 단순한 나눔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정직이 없이는 신뢰도 성실도 성취도 무의미하다. 아니, 거짓이요 범죄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