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68강) 사역자들의 나쁜 소문에 신중해야 하는 이유
상태바
사도행전(68강) 사역자들의 나쁜 소문에 신중해야 하는 이유
  • 운영자
  • 승인 2010.05.14 13: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시아 유대인들의 비방과 공격

예루살렘에서 바울이 성전에 들어가 결례를 행한 것은 유대인들에게는 유대인이 되고자 했던 그의 평소 소신의 결과였다(행 21:24~26). 이런 맥락에서 그는 제자 디모데에게 할례를 받게 하였다(행 16:3). 그러나 바울은 율법을 순종함에 있어서 기독교 원리를 희생시키지 않기 위해 매우 세심한 노력을 아울러 기울였다. 이런 이유로 바울은 또한 디도에게는 할례를 베풀지 않았던 것이다(갈 2:3).
유대 율법에 대해서는 두 가지가 견해가 있었다. 바울은 하나를 배척하고 다른 하나를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첫째, 바울은 율법을 지키는 자들에게 구약 율법이 구원을 준다는 견해를 배척하였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운 행위에 의해서 자유롭게 주어진 것으로써, 믿음을 통해서 구원을 받는 것이다.

율법은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한 것 외에는 구원을 위해서 다른 의미를 갖지 않는다. 이러한 율법의 용도를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는 ‘몽학선생’ 혹은 ‘초등교사’라고 불렀다(갈 3:24). 그러나 사실 이 단어는 주로 학령(學齡) 전 아동을 돌보는 보모(保姆, child minder)와 같은 의미로서, ‘교육’의 기능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둘째, 바울은 구약 율법이 예수 그리스도의 도래에 관해서 우리를 준비시키고 가르친다는 견해를 수용하였다. 그리스도는 율법을 성취하셨고 우리의 죄짐을 풀어주셨다. 그러나 율법은 여전히 우리에게 많은 소중한 원리를 가르쳐주고 있으며, 감사하는 삶을 위한 지침을 제시한다. 바울은 구원 받기 위해서 율법을 준수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율법을 지키고 있었다(롬 3:21~31; 7:4~6; 13:9, 10).

성전에서의 결례에는 한 주간의 시간이 필요하였다(행 21:27). 제단에서 머리를 밀고 각각 속죄제와 번제를 드리며, 제사장에게 결례의 완성을 알리는 일련의 과정에 이레가 소요되었기 때문이다. 그 이레가 끝난 후 바울이 성전에 있는 것을 보고, 또 전에 에베소 사람 이방인 드로비모가 바울과 함께 있는 것을 보았던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은 바울이 드로비모를 성전 안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성전을 더럽혔다고 주장하며 바울을 잡아 죽이려 하였다(행 21:28~30).

물론 바울은 드로비모를 이방인 금지구역에 데리고 들어간 적이 없었다. 만일 그랬다면 유대인들은 바울보다 오히려 드로비모 자신을 공격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시아 유대인들은 바울이 “각처에서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곳을 훼방하도록 모든 사람을 가르쳤다.”고 주장하면서 무리를 선동했는데, 이런 혐의는 스데반에 대한 고발 내용과 유사한 것이었다(행 7:13).

그들의 이런 주장은 역으로 아시아에서의 바울의 사역이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고 하겠다. 그리하여 그들이 세운 전략은 바울에 대한 평가를 나쁘게 하여 그의 사역을 약화시키고자 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역자에 대해서 나쁜 소문을 들을 때 우리는 주의해야 할 것이다.

결국 이들 아시아 유대인들은 바울이 에베소에서 참아냈던 것과 유사한 폭동을 일으켰다. 그리하여 바울은 성전에서 끌려 나갔고, 성전 문은 불길한 징조처럼 닫히게 되었으며, 다시는 바울을 위해서 열리지 않았다(행 21:30).

이 소란으로 인해 로마 천부장이 개입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바울은 목숨을 건지게 되었다. 바울은 이제 아가보의 예언처럼 체포되어 결박당했고(행 21:11), 바울의 신분을 알고자 했던 천부장의 노력은 군중의 소란으로 인해 무산되고 말았다.

그 대신 성난 군중은 더욱 난폭해져서 바울을 없애라고 외쳤고, 그런 함성 가운데 바울은 로마 군병들에 의해 들려나가게 되었다. 이 함성은 사실 예수님의 죽음을 요구했던 유대인들의 바로 그 함성이었다.
예수님은 변증 설교 한 번 없이 죽음을 맞이하셨지만, 바울은 군중에게 연설할 것을 요청했다.
천부장은 바울이 헬라어를 구사하는 것을 보고 매우 놀랐다. 왜냐하면 그는 바울이 한 때 반란을 일으켰던 애굽인 반도(叛徒)인 줄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헬라어로 말함으로써, 바울은 자신이 학문과 교양이 있는 사람이요, 거리에서 폭동을 일으키는 흔한 반도가 아님을 보여주었다. 헬라어는 천부장의 관심을 사로잡았으며, 그로 하여금 바울을 보호하고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끔 해주었다.

이제 바울은 로마 천부장에게 자신이 길리기아의 수도인 대도시 다소 출신의 유대인임을 밝히고 나서, 유대인 군중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서 히브리 방언으로 연설하기 시작하였다(행 21:40). 
                                                                                       김경진 교수<백석대 신약학>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