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큐메니칼 운동이 또 다른 분열을 만들어선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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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큐메니칼 운동이 또 다른 분열을 만들어선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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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0.03.10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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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응규 교수<아신대 역사신학>

해방을 맞이한 한국 교회는 교파별로 개혁과 재건의 과제를 떠안고 표류하다가 1950년대에 들어서면서, 교단의 분열로 이어지게 되었다. 한국 교회의 최대 교파인 장로교는 1950년대에만 세 차례에 걸친 분열을 경험했고, 감리교도 세 차례의 분열과 통합의 과정을 거쳤다.

해방과 한국동란을 겪은 후에 한국 교회는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루면서도, 교단의 분열이 계속된 것은 신사참배문제를 비롯한 일제 잔재 청산의 실패와 신학 노선의 차이, 지역적 배경 및 특성과 인맥, 해외 교회 및 선교부와의 관계, 그리고 교권 다툼 등이 당시 시대적 분위기와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1959년의 한국 장로교회의 분열은 교권에 대한 집착을 제어할 수 있는 의지와 화합에 대한 열정이 있었다면 방지할 수도 있었던 사건이라고 본다.

물론 WCC의 신학적 입장에 대한 견해의 차이에서 갈등과 대립이 첨예화 되었지만, 분열의 배후에는 교단 지도자들의 기질과 신학적 성향의 차이, 회의를 원만하게 진행해 나가는 성숙한 자세의 결여와 결정 사항에 대한 번복, 그리고 일부 교계 지도자들의 지나친 신학적 사대주의와 재한 선교사들의 비중립적인 처사가 아니었다면, 분열할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양측에 만족할만한 것은 아니지만, WCC에 대한 중재안이나 경기노회의 총대 건을 둘러싼 대립을 종식시킬 조정안도 제시되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현실이 매우 안타깝다.

한국 교회는 초기부터 다양한 교파의 기독교 신앙을 수용하면서 신학적 특성과 신앙고백이 서로 다른 기독교회가 조직되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물론 이러한 이유 때문에 진정한 에큐메니칼운동의 필요성도 존재했지만,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숱한 역사적 장애물이 있었다는 사실도 유념했어야 할 것이다.

장로교회가 믿고 고백해야 하는 신학적 정체성과 신앙고백의 터를 견고하게 세우지 못한 상태에서 시도하는 섣부른 에큐메니칼운동은 또 다른 갈등을 불러 올 것이다. WCC의 신학적 경향을 비판하는 자들을 향해 근본주의적이고 분리주의적이라고 폄하하기 이전에, 에큐메니칼운동의 진정한 목적이 무엇이고, 성경적 신앙과 교회를 목마르게 갈망하는 한국 교회와 민족의 영적 필요를 채워줄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심각하게 자문해 보아야 할 것이다. 최근 WCC 총회 유치 이후, 교계 신문을 통해 수차례 지적되었듯이, 에큐메니칼운동에 있어서 주도적인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WCC와 NCCK는 혼합주의 내지는 종교다원주의적 신학 편향을 포기하고, 기독교 정통 신앙을 회복하여 진정한 교회연합운동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WCC 문제로 분열을 경험한 한국 장로교회의 양대 교단이 총회 결성 100주년을 맞이하는 2012년, 그리고 이듬해인 2013년에 부산에서 열리는 WCC 총회를 두고 어떤 해법으로 꼬일 대로 꼬인 갈등국면을 풀어갈지 초미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친구 사귀는 문제로 이혼까지 한 두 교단이 부흥의 무드에 들떠 한동안 재결합을 논의하더니, 그 어떤 설득이나 합의도 없이 그 친구를 다시 불러들였다.

그 만남의 장을 ‘기독교 올림픽’이라고 자화자찬하는 소리나, 그 축제의 잔치에 재를 뿌리겠다는 소문은 한국 장로교회의 ‘진정한 에큐메니칼’은 여전히 요원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오랜 만에 한국에 다시 찾아오는 애증(愛憎)의 벗 WCC를 어떻게 대할지, 그리고 그 친구가 남기고 갈 흔적(痕迹)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이제부터 큰 고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1959년 한국 장로교회의 분열과 같은 사건은 다시는 반복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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