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예배 경건 회복하고 하나님의 영광 위해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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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예배 경건 회복하고 하나님의 영광 위해 살아라”
  • 이현주 기자
  • 승인 2009.12.30 1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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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산증인 방지일 목사에게 길을 묻다
우리는 항상 소중한 것을 잃고 난 후에야 그 중요함을 깨닫는다. 지난 2009년 한국 교회는 두 명의 어른을 떠나보내며 뒤늦은 후회를 해야 했다. 가르침에 순종하지 못했던 죄책감과 더 많은 말씀을 귀담아 들었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교차했다. 2010년 새해 아침, 본지는 한국 교회사의 산증인으로 지난 100년의 역사를 안고 살아온 영등포교회 원로 방지일 목사를 만났다. 1911년 평북 선천에서 태어나 3대째 신앙을 물려받아 1935년 평양 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하고 아버지의 뒤를 이어 중국 선교사로 1937년 파송을 받아 헌신한 방지일 목사는 21년 동안 중국에 복음을 전하고 6.25 한국전쟁의 흔적이 짙게 남아 있던 57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58년부터 79년까지 영등포교회 담임을 맡아 목회사역에 전념했으며 1971년 예장 통합 총회장을 역임했다. 평생을 읽어온 성경의 맛이 이제야 느껴진다는 방지일 목사를 통해 한국 교회가 나아갈 길을 물어 보았다.


6대째 이어지는 신앙의 역사 자랑스러워… 8.15해방의 순간 감격적

가정을 이뤄야 ‘삼위일체’ 깨달아 “생육하고 번성하라” 명령 따라야

우리의 부족함 시인한 아가서 매일 묵상 성경 읽을수록 맛이 새로워

새해에는 주 안에서 새로움을 입은 성도로 신선한 신앙의 삶 살길


- 한 세기를 살아오셨습니다.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은데요.

평양 장대현교회 전도사로 간 것이 22살입니다. 그 때 모든 제직들이 오십이 넘는 나이였어요. 그때 참 햇병아리였는데 나는 언제 마흔이 되나 했더니 벌써 이렇게 시간이 갔습니다. 내 평생이 언제 이렇게 지나갔는지 알 수가 없어요.


- 목사님께서는 어떻게 하나님을 만나셨나요.

우리 집안은 지금 내 아래로 6대까지 신앙을 이어가고 있는데 내가 3대째 신앙이었어요. 그때 방씨 일가 250명이 마을을 꾸리고 살았는데 우리 할아버지께서 예수교가 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고 먼저 찾아가 복음을 받아들이셨지요. 어려서 유아세례 받았고 조부 품에서 자라면서 신앙이 몸에 배어있었어요. 아침저녁이면 가정예배를 드렸고 새벽엔 할아버지 따라 기도하러 갔었지요. 하나님을 믿는 게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교회에 다닌다는 이유로 할아버지께서 박해를 받으셨고 증조부 제사를 모시지 않는다고 마을에서 쫓겨났지요. 간신히 집 하나 얻어 살면서 소작하며 고생했지만 그래도 신앙을 지킬 수 있었고 학교도 세웠으니 할아버지는 위대한 신앙가라고 할 수 있지요.


- 일본 식민 치하에서 성장하셨습니다. 그 때 당시 사람들에게 복음은 어떤 의미였나요.

일제시대 자유가 없을 때는 예수님을 믿는 것이 큰 위로와 힘이었지요. 어릴 때 나도 3.1운동을 했고 만세를 외쳤어요. 바로 옆에서 매 맞고 죽는 것도 목격했지요. 하지만 우리에게 죽고 사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예수 안에 있으면 우리는 독립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지요. 새벽기도에 빠지지 않았는데 기도제목은 항상 우리 민족에게 자유를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감옥에 갇힌 사람들을 도와달라고 했어요. 민족이 의지할 곳이 없으니 하나님만 바라보았습니다. 일본 경찰이 참 용의주도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3.1운동이 일어난 것을 보면 복음이 희망이었던 것이죠. 교회 안에서는 자유롭게 해방을 외칠 수 있었으니까요. 평생을 살면서 가장 감동적인 기억이라면 역시 해방이에요. 우리가 자유를 얻은 것이 가장 기쁜 일이었습니다.


- 요즘 성도들의 기도생활이나 한국 교회를 바라보면서 아쉬움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

과거에는 탄압이 심해서 하나님 앞에서 울부짖고 기도하며 희망을 찾았는데 요즘은 너무 태평하고 편안하니까 헤이해지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한번도 편하게 믿어본 적이 없었지요. 일제시대도 그러했고, 중국 선교사로 나갔을 때도 그렇고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고마운 일이었는지 몰라요. 그런데 너무 편안하니까, 믿음에 박해가 없으니까 게을러지지요.

- 교회를 보면서 `이건 좀 고쳤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하시는 부분이 있으시다면.

세계적으로 인구가 줄어드는 것이 제일 아쉬운 부분이에요. 교회도 성도들이 줄어든다고 한탄하는데 성도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낳지 않으니까 자연스레 성도도 감소되지 않겠습니까. 인구가 적으면 나라 구실을 못합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이 축복인데 그 축복을 안 받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것입니다. 남녀가 가정을 이뤄야 삼위일체를 경험할 수 있어요. 가정이 없이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가 없습니다. 교회는 가정의 중요성, 출산의 중요성을 항상 강조해야 합니다.


- 가정을 이뤄야 삼위일체를 경험할 수 있다고 하셨는데 조금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삼위일체는 성부 성자 성령이지요. 부부가 한 몸이 되는 것은 나를 없애는 일입니다. 가정을 이뤄야 한 몸의 의미를 알 수 있어요. 사람이 한 몸이 되려면 자신의 제로, 즉 0의 상태가 되어야 합니다. 나를 없앤다는 것은 예수를 본받지 않고서는 어렵죠. 다음은 자녀가 있어야 예수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자식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주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죠. 예수님의 사랑도 조건 없이 모든 것을 주신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가 없이는 나를 전부 비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전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 가정 없이는 삼위일체 체험을 못하는 것이죠.


- 올해는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60년이 되는 해입니다. 목사님께서 기억하시는 전쟁의 모습은 어떠했나요?

전쟁이 일어났을 때 중국에 있어서 그 상황을 경험하지 못했지만 1957년 한국으로 돌아와 보니 서울이 황량한 모습이었지요. 언제 제 모습을 찾나 걱정했는데 빠른 속도로 전쟁의 상처를 복구하고 지금은 아주 잘 살게 되었어요. 그런데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은혜를 받은 것을 모르면 안 된다는 말이죠. 우리는 늘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은혜를 받으면서도 불평하고 감사할 일이 있어도 불평을 합니다. 감사하는 교회와 성도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이에요.


- 이북이 고향이신데 통일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37년 떠나서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고향입니다. 평양엔 교회가 참 많았고, 기도하는 사람, 믿는 사람이 많았는데 지금은 교회를 찾아볼 수 없다니 마음이 아플 뿐이지요. 통일을 물었는데 통일은 지금 너무 한가한 말이 아닐까요. 이북에게는 통일이 문제가 아니라 굶어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가 심각합니다. 누구에게는 죽고 사는 문제인데 누가 먹느냐 군량미로 가느냐를 논할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누가 먹든 상관 말고 우리가 남는 쌀을 보내줘야지요.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습니다. 주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이제는 북한도 달라져서 약을 보내면 “남측 어느 교회가 보냈다” 이렇게 다 이야기를 해준다고 하는데 우유도 보내고 폐결핵 약도 보내고 필요하다고 하면 보내주는 것이 옳습니다. 북한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도울 수 있다면 적극적으로 도와야 합니다.


- 개인적인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목사님의 하루 일과가 궁금합니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나이니 계획을 세우지 않습니다. 그냥 하루하루를 살아가는데 그래도 강단에서 부르면 설교에 나섭니다.

가장 행복한 시간은 성경을 읽는 시간이에요. 중국에서 돌아와 시작한 성경공부가 벌써 50년이 넘었어요. 아직도 매주 20명 정도가 모여 성경을 한 장씩 읽습니다. 성경의 맛보다 좋은 게 어디 있겠습니까. 성경의 맛을 다 알았다, 하나님의 사랑을 다 알았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에요. 아, 한 구절 읽을 때마다 성경의 맛이 다른데 … 내 죽을 때까지 그 맛을 다 알고 죽으려는지 모르겠어요.


- 목사님께서 평생 가장 사모하시는 말씀은 어느 구절인가요?

나는 아가서를 좋아해요. 전부 외울 정도에요. 그 중에서도 1장5절 말씀 ‘예루살렘 여자들아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게달의 장막 같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 이 구절은 솔로몬과 술람미 부부간의 사랑의 노래에요. 신부가 말하길 “나는 검어요. 나는 못났어요. 그런데 어떻게 대왕의 아내가 됩니까?” 이렇게 묻지요. 못난 것을 알면서도 솔로몬은 술람미를 위로해줍니다. 이 구절이 좋은 것은 우리가 주님 앞에 ‘난 부족해요, 난 죄인입니다’ 이렇게 말할 때 주님이 우리는 사랑하시고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느끼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죄인인 것을 깨달을 때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맛보면 그것이 신앙입니다. 죄인인줄 알고 주님의 마음을 받을 때 그것이 믿음의 맛이지요. 말씀을 건성으로 보지 않으면 아주 깊은 맛이 있어요. 나는 아가서를 매일 같이 외웁니다.


- 100세 장수 비결을 궁금해 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냥 막 살았는데 벌써 이렇게 됐어요. 식사는 구미가 당기면 먹고 입맛이 없으면 하루 안 먹어도 괜찮아요. 어떤 날은 한 술 먹고 한 끼 먹고 그렇게 보내지요. 어릴 때부터 몸이 허약해서 안 먹어본 약이 없는데 약으로는 병을 고치지 못했어요. 그런데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러 산에 가는데 일주일에 닷새씩 왔다 갔다 하니 신진대사가 잘 돼서 그런지 모든 병이 없어졌어요. 그저 하나님의 은혜로 이때까지 살아온 것 같습니다.


- 다시 사역할 시간이 목사님에게 주어진다면 어떤 일을 하고 싶으신지요?

경건한 예배를 회복하고 싶어요. 꽹가리 치고 북 치고 손뼉 치고 마치 응원하는 것처럼 드리는 예배는 은혜롭지 못합니다. 경건하게 드려야 해요. 다시 목회를 할 수 있다면 레위기만 외우게 하고 레위기만 가르칠 겁니다.

레위기는 ‘예배’입니다. 죄인이므로 내가 죽어야 한다. 내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은 내가 없어져야 한다는 가르침이 담겨 있습니다. 요즘 교회들은 젊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려면 어쩔 수 없다면서 응원단처럼 예배를 드리는데 이슬람을 보세요. 어려운 격식, 계명을 지키면서 세상과 타협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유럽 사람들, 편리함을 좋아하는 영국 사람들이 이슬람으로 개종한다고 해요. 불편함을 감수하고 경건함을 찾는 겁니다.

우리는 청년 부흥을 위해 예배를 변화시킨다고 하는데 예배는 하나님 앞에 맞추는 것입니다. 청년들에게 맞추는 것이 아니에요. 경건한 성도, 경건한 예배가 한국교회에 빨리 회복되어야 합니다.


- 2010년 새해 성도들에게 바라시는 점이 있다면 말씀해주시지요.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보면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새 것이 되었도다’라는 말씀처럼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우리는 새 사람입니다. 언제나 주 안에서는 새 것만 있지요. 믿는 사람들은 먹다 남은 음식처럼 영양가를 잃은 사람들이 되어선 안 됩니다. 비타민이 풍부한 신선한 성도들이 되어야 해요. 문제는 예수그리스도가 나타나기 전에 자신을 드러내려는 성도의 이기심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야 하는데 세상적 관심, 자신의 명예를 추구하는 모습이 안타깝습니다.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를 나타내면 안 되지요. ‘아무든지 날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버리고 나를 따라오라’는 말씀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새해, 새로움을 입은 교회와 성도로 신선한 신앙의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 방지일 목사는

1911년 평북 선천출생으로 29년 정오리교회를 개척했으며 33년 평양숭실대학 영문과를 졸업한 후 같은 해 장대현교회 전도사 시무를 시작했다. 다시 신학을 공부, 37년 평양장대현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안수를 받아 총회 파송 중국 산동성 선교사로 21년간 봉직했다. 1958년 영등포교회 담임으로 부임, 성서공회 재단이사와 신일학교 이사, 제56회 예장 통합 총회장을 지냈으며 총회 유지재단 이사장과 기독공보 사장에 이어 1979년 영등포교회 원로목사로 은퇴했다. 98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서훈받고 2004년에는 장신대에서 명예신학박사학위를 수여했다. 한국교회사의 산증인으로 100년의 삶을 살아온 방지일목사는 지금도 이른 새벽에 일어나 이메일을 통해 선교사들의 편지에 답장을 보내고 매주 월요일 성경공부를 인도하는 등 쉼없는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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