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도’는 ‘복의 선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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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도’는 ‘복의 선언’으로
  • 승인 2002.03.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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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 목회자들의 대부분이 “복의 선언”을 “축도” 라는 말로 대체하여 사용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이 복의 선언은 안수 받은 목회자가 성자 예수님의 은혜와, 성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님의 교통하심의 복을 회중에게 함께 하기를 선언하는 목회행위인 것이다.
이러한 “복의 선언”은 구약에는 대제사장(민6:24-26)과 신약에는 사도(고후13:13)등의 기름부음 받아 특별히 임직 된 주님의 사람에 의해 시행하게 되었고 그것은 곧 안수 받은 목사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되었다. 이러한 “복의 선언”이 “축도”라는 말로 변형이 된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 하나는 한국 교회의 초기에는 안수 받은 목회자가 적어 목사가 아닌 비안수 목회자는 “복의 선언” 직무(권)가 없으므로 “복을 기원하는 기도”를 “축도”라는 이름으로 변형하여 회중에게 “복을 빌고 원한다”는 기원(祈願)적인 뜻을 담은 표현형태로 사용한 것이 “축도”라는 관용어가 되어진 것이다.

다른 하나는 “복의 선언”이라는 말에 대한 신학적인 이해를 바르게 하지 못하여 일종의 기도의 한 유형으로 이해하였기 때문에 복을 비는 뜻을 담은 말로 대체한 것일 뿐 아니라 또 다른 한편으로 젊은 목사가 나이 많은 노인 성도에게 “있을지어다”라든지 “원하노라”는 선언적 표현이 윤리적인 어감(語感)이 부자연스럽다고 하여 기원적인 표현형식으로 바꾸어 사용하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복의 선언은 목사의 고유적 직능이기 때문에 “있을을지어다”라는 선언적인 표현은 윤리적 관점에서 볼 것이 아니라 종교적 관점에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복의 선언”은 기도의 유형이 아니므로 “축도”라는 말로 바꿀 수가 없다.
“축도”(祝禱)의 단순한 뜻으로는 “빌고 빈다”의 뜻이니 하나님께 기도하는(복을 비는) 형식은 모두 “축도”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 예배를 마감하는 즈음에 목사가 손을 들어 회중에게 복이 있기를 선언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상으로 하는 기도가 아니라 목사에게 부여 된 복의 위임을 행사하는 것이니 기도와는 다른 성격을 가지므로 축도는 아닌 것이다. 성경에는 복을 선언하는 두 가지의 형식이 있다.

하나는 구약의 대제사장적인 복의 소원을 선언하는 형태가 있고(미6:24-26) 다른 하나는 신약의 사도적인 복을 선언하는 형식이(고후13:13) 있는데 현대 교회의 복의 선언의 근거를 삼는 것은 후자이다. 이러한 예시적 근거는 모두 기도체가 아니고 선언체인 것이므로 기원적인 체로 구성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이 “복의 선언”은 두 가지의 신학적인 기능이 있다. 그 하나는 예배를 마감하면서 안수되어 세움 받은 목사가 회중에게 삼위 하나님의 은혜의 복과, 사랑의 복과, 교통(교제)함의 복이 있기를, 복의 임재(강복)를 실제화 되기를 선언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회중이 예배에서 나타난 태도로 하나님의 뜻을 수행키 위하여 세상으로 나아가게 됨을 확인하고 결단을 다짐시키며 소임을 부여하는 선언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므로 “복의 선언”은 소중한 목회적 기능이며 목사의 직무이고 예배의 중요한 요소인 것이다.
그러므로 복의 선언은 하나님으로부터 발생하는 복의 임재를 목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를 대상으로”(엡 6 : 24, 고전 16 : 22)선언하는 것에 이의가 있을 수 없다. 목사가 “손을 들고”(눅 24 : 50이 근거)‘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온 회중과) 함께 있을지어다’(고후13:13)의 사도적 표준형을 오늘의 전형(典型)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복의 덕목(은혜, 사랑, 교통) 앞에 삼위 하나님의 속성적 기능을 해설적으로 수식할 필요는 없다. 은혜의 예수님, 사랑의 하나님, 교통하시는 성령님, 이 이상의 어떤 수식어도 그 언어속에 다 함유(含有)하고 있을 뿐 아니라, 선언적인 어체에 분해적이거나 꾸밈이 요구되지 않음을 유념해야 한다.“축도”는 “복의 선언”(pronouncement Benediction)이란 용어로 갱신해야 하고 그 표현양식은 기도체가 아닌 “선언체” 소원(Request)형태나 선언(pronouncement)형태로 해야 한다.

김석한(기독신학 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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