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유적답사기-광양읍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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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유적답사기-광양읍교회
  • 승인 2002.03.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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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게만 느껴지던 광양시가 근래 개통 된 서해안고속도로를 이용하니 반나절의 답사길이 되었다.
오늘 찾은 광양읍교회의 역사를 돌아보면 교회를 개척하고 복음을 전한 신앙선조들의 발자취를 살펴볼 수가 있다. 먼저 목포와 광주선교의 개척자인 배유지목사(Eugene Bell )와 순천시 선교의 개척자인 변요한(J.F.Preston) 선교사 그리고 광양읍 교회를 처음 세운 고라복(R.T.Coit)선교사의 사역의 흔적을 읽을 수가 있다.

배유지 목사가 목포선교를 1898년부터 시작을 하였으며 1903년부터 미국 플로리다 출신의 변요한 선교사가 가담을 하게 된다.그리고 변요한 선교사는 광주에 와서 배유지 목사가 세운 숭일학교의 초대교장으로 일하면서 배유지목사와 같이 순천지역에 전도를 같이 다녔다. 두 분들은 순천지역이 인근 섬지역에 복음전파의 도약지점으로 보고 1910년에 순천선교부를 설치하고 1913년부터는 변요한과 고라복선교사 가족이 광주에서 순천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이런 과정에서 광양읍교회는 1908년 9월15일 광양읍의 읍내리 11번지에 있는 목조건물을 매입하여 고라복선교사가 창립예배를 드림으로 시작한 교회이다.
고라복 선교사는 1907년 한국에 와서 광주선교부와 순천선교부에서 주로 일을 하셨고 두 아들이 이질로 사망을 하였지만 보성과 장흥지방에 많은 교회를 세우고 1932년에 아내와 미국으로 다시 귀국을 한 분이다. 현재 광양읍교회는 목성리에 성전을 건축하여 이주를 하였지만 원래의 개척당시의 교회자리인 읍내리에 1938년 3월에 고라복선교사 기념예배당(사진)으로 건축한 교회당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앞으로 역사기념관으로 만들기 위하여 김재민 장로가 중심이 되어 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광양읍교회의 역사를 보면 한국교회 역사에서 가려진 중요한 한 분이 있다.바로 유진벨 목사에 의하여 전도를 받아 조사(현재 전도사)가 되어 배유지 목사의 선교사역을 늘 돕던 조상학목사이다.
조상학목사는 나중에 평양신학교 23회로 졸업을 하고 1923년부터 광양읍교회의 초대 목사로 일을 하신 분이다. 조상학목사는 배유지 목사의 신앙정신을 이어 받은 분이며, 서예와 학문이 깊은 분으로 6.25전쟁중에는 여수의 덕양교회에서 목회를 하셨다.
당시에 여수와 순천지역에서는 공산당에 의하여 기독교인들이 순교를 많이 당하였는데, 1950년 9월28일 유명한 여수 애양원의 손양원목사가 과수원에서 총탄에 순교를 당하던 같은 날,조상학목사는 인근의 미평공동묘지에서 공산당원들의 도끼에 너무나 잔인하게 순교를 당하셨다.

조상학목사는 1877년 전남승주에서 태어나셨고 순교당시에 73세로 손양원목사보다 25년 년배였다. 조목사의 유자녀로는 초등학교 교장으로 퇴임을 한 조보라 교장이 계시지만 부친의 순교가 하나님이 아시는 일이라며 그 공을 세상에 드러내지 않고 계신 분이다. 이제 한국교회는 조상학목사의 순교신앙을 발굴하여 후손에게 계승하는 작업을 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을 한다.
찾아가기:전남 광양시 광양읍 목성리 620-1 전화 061-761-2431

박은배(고양외고 교감·기독교유적답사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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