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30강) 열방 구원은 사람의 선택이 아닌 하나님의 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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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30강) 열방 구원은 사람의 선택이 아닌 하나님의 의지
  • 승인 2009.07.16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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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교회에 보고하는 베드로




고넬료와 그의 가정의 회심이 중요한 것은 그의 회심이 예루살렘 교회에 의해 공식적으로 인정되었다는 점이다. 사실 사도행전 11장의 대부분은 10장에서 발생한 사건들을 약간 수정해서 요약한 것이다.

11장에서 중요한 것은 상황을 설명하고 있는 시작부분이다. 베드로가 고넬료의 회심 소식을 예루살렘에 돌아와 전했을 때, 유대인 신자들은 베드로가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했다는 것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따라서 베드로는 정작 더 중요하게 보이는, 이방인들에게 세례를 베푼 행동에 대해서가 아니라, 무할례자인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한 행동에 대해서 해명할 것을 요구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사건의 전모(全貌)를 들은 후에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찬양하였다(행 11:18). 여기서 예루살렘의 그리스도인들의 반응은 우리가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갈등이 있을 때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준다. 우리는 동료 그리스도인들의 행위를 판단하기 전에, 먼저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

성령님은 그들을 통해서 중요한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시기 때문이다.


이방인의 교회로의 영입문제는, 15장에서 보듯이, 아직 완전하게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최소한 베드로의 회심은 고넬료의 회심만큼 완전한 것이었다. 즉 베드로는 이제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원과 관련해서 하나님께 결코 어떤 차별이나 구별이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깨달았던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이방인은 유대인이 아닌 모든 사람을 가리킨다.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때때로 ‘할례자’라고 불렸다(행 11:2). 대부분의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율법을 주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에게만 구원을 허락했다고 생각하였다(출 19, 20장). 예루살렘에 거하는 한 무리는 만일 이방인들이 모든 유대 율법과 전승을 지키기만 한다면, 이방인들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믿었다(행 15:1).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둘 다 잘못되었다. 하나님은 유대인들을 선택하고 그들에게 율법을 가르쳐서, 그들이 모든 백성에게 나아가 구원의 메시지를 전파할 것을 기대하였기 때문이다(말 1:1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의 이방민족 중에서 내 이름이 크게 될 것이라. 각처에서 내 이름을 위하여 분항하며 깨끗한 제물을 드리리니, 이는 내 이름이 이방 민족 중에서 크게 될 것임이니라.” (참고, 창 12:3, 시 22:27; 사 42:4, 49:6, 56:3-7, 60:1-3; 렘 16:19-22, 슥 2:11; 롬 15:9-12).

이처럼 하나님은 온 백성을 구원할 것을 성경을 통해서 약속하셨다. 이 약속은 아브라함과의 일반적인 언약으로 시작했고(창 12:3; 18:18), 말라기 언약에서 보다 구체화되었다(말 1:11). 예수님도 자신과 자신의 메시지가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임을 분명히 하였다. 주님은 사마리아에서 설교했고(요 4:1-42), 헬라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거라사 지방에도 전도하였다(막 5:1-20). 심지어 로마인들과 접촉하였다(눅 7:1-10). 따라서 주님의 제자들인 사도들은 그들이 같은 일을 하도록 부름 받았다는 것으로 인하여 놀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사도들의 대표자인 베드로는 이방인들이 세례를 받고(행 10:47)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 그리스도인들과 친밀한 교제를 갖도록 초대하는 것을 부인할 수가 없었다.

이같은 결과를 볼 때 인간들의 선택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복음의 문은 이방인들에게로 열려지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온 백성을 구원하신다는 이 약속은 유대인들, 심지어 유대 그리스도인들조차도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도 어려운 것이었다.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예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성취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이해를 하였으나, 다른 구약의 가르침은 간과하였다. 종종 우리는 싫어하는 가르침은 무시하면서 자신의 마음에 흡족하거나 자신의 주장을 지지하는 하나님의 말씀의 일부만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절대적인 진리로 받아들여야지, 자기 마음대로 선별하고 분리하여 받아들여서는 안 될 것이다.

그 증거를 우리는 17, 18절에서 발견한다. 이방인의 문제를 놓고 베드로와 대립각을 세웠던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했다는 소식을 듣자, 잠잠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지성적인 질문과 신학적인 논의가 하나님이 이방인들에게 성령님을 주었다는 보고로 말미암아 중지되고 말았던 것이다. 사실 이것은 초대교회의 분수령이었다. 초대교인들은 이제 비록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선택한 자들을 용납해야만 했다. 그러나 이것은 1세기 내내 일부 유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문제거리로 남아있었다(참고, 행 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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