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29강) 이방인을 용납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상태바
사도행전(29강) 이방인을 용납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 승인 2009.07.09 14: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방인에게 임한 두번째 오순절




사도 베드로가 고넬료의 초대를 받아 가이사랴의 그의 집에 들어가자 고넬료는 그의 환상을 설명했고, 이에 응하여 베드로는 이방인들을 상대로 처음으로 설교를 하게 되었다. 이 설교는 초대교회의 근본적이고도 본질적인 케리그마를 담고 있는 것으로, 이방인들을 위해서 약간 수정되어 전달되었다.



베드로의 설교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서론(행 10:34-36), 케리그마(37-41절), 결론(42-43절). 베드로가 이제 이방인들을 포용하는 새로운 관점을 지니게 되었다는 것이 그의 설교의 서두에서 밝혀지고 있다(34절). 베드로 설교의 핵심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않는 하나님’과 ‘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이다.

이 두 구절은 복음의 포용적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어지는 설교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의 사역의 성격을 일종의 선행(benefaction, 선한 일을 행하심)으로 소개하고 있는데, 이는 고대 세계의 후원제도(patronage)에 익숙한 이방인 청중에게 매우 적절한 표현이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아마도 고넬료의 집에 모인 청중들은 틀림없이 고넬료의 후원을 받아 누리는 혜택을 입었을 것으로 보인다. 베드로의 이 설교는 고넬료와 같이 회당에 출입함으로써 어느 정도 구약성경에 대한 이해를 갖고 있고, 또한 기독교 복음의 내용을 전해 들었을 ‘경건한 이방인’(God-Fearer)들에게 적절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루스드라와 더베에서 순전하게 이방인들을 상대로 해서 설교한 바울의 설교와는 성격상 및 내용상 차이가 있음을 우리는 발견한다(행 14:15-17; 17:22-31).

아마도 1세기 당시 기독교 복음전파의 가장 큰 장애물은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갈등이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초대교인들은 유대인들이었으며, 그들에게는 이방인들과의 접촉 및 교제를 생각하는 것조차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베드로에게 복음을 로마인인 고넬료에게 전하라고 명령했고, 이에 베드로는 자신의 배경과 개인적인 감정에도 불구하고 말씀에 순종하였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모든 사람을 위한 것임을 분명히 밝히셨다. 따라서 우리는 어떠한 장애물, 이를테면 언어, 문화, 편견, 지리적 위치, 경제 혹은 학력 등이 복음을 전파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할 것이다.

베드로의 설교가 끝날 즈음에 참으로 놀라운 일이 발생하였다. 그것은 고넬료 사건의 절정으로써, 베드로가 설교하는 도중에 두 번째 오순절이 발생한 것이었다. 즉 성령이 가이사랴의 이방인들에게,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에게 임한 것과 똑같이 임했던 것이다. 첫 번째 오순절처럼, 이방인들이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을 높이는 것을 들었을 때, 이러한 성령의 은사는 ‘할례 받은 신자들’(행 10:45)에게 확실한 증거가 되었다.

이방인의 오순절은 하나님이 베푸시는 구원의 축복이 유대인만이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허락된다는 것에 대한 분명한 증거이었다. 이렇게 되자 베드로는 이제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성령을 받은 이방인들에게 세례를 베풀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이전에 에티오피아 내시가 세례 받을 때에 어떤 장애가 없었듯이(행 8:36), 그리고 후에 바울이 감옥에서 복음 전하는 것에 어떤 방해가 없었듯이(행 28:331), 이제 이방인의 부정(不淨)은 더 이상 이방인들을 하나님의 나라로 영입(迎入)하는데 있어서 장애가 될 수 없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아직 좀 더 진지한 토론을 필요로 하였고, 따라서 15장에서 예루살렘 공회가 열리게 되었던 것이다.


사실 초대교회의 유대인 신자들은 애초에 복음이 유대인들과 또한 이방인들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성령이 이방인들에게도 강림함을 통해서 그들은 이 진리를 비로소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사실 고넬료와 베드로는 매우 달랐다. 고넬료는 부유한 이방인이자 군인이었다.

반면에 베드로는 설교자로 변신한 유대인 어부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은 그들 모두를 포함하였다. 그날 고넬료의 집에서, 유대 기독교 지도자와 이방 기독교 개종자가 각각 다른 사람의 삶 가운데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였을 때, 기독교 역사의 새로운 장이 열리게 되었다.

고넬료는 구원의 길을 알기 위해서 베드로와 그의 복음이 필요했다. 베드로는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계획 안에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 고넬료와 그의 구원경험을 필요로 했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감에 있어서 서로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존재들이다. 먼저 믿음을 가졌고, 도움을 준 베드로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러나 이방인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을 이해하기 위해서, 베드로는 이방인 장교 고넬료의 존재를 필요로 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 부름 받은 존재들로서 자기의 몫을 감당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