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28강) 음식법 폐기를 통한 이방인 구원의 토대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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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28강) 음식법 폐기를 통한 이방인 구원의 토대 마련
  • 승인 2009.07.01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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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와 고넬료의 변화




고넬료처럼 기도에 힘쓰고 있던 베드로는 고넬료와 같이 환상을 보게 되었다. 그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한 그릇에 대한 환상이었는데, 그 안에는 유대인으로서 베드로가 기피해왔던 음식들이 담겨있었다. 이 때 주님이 베드로에게 잡아먹으라고 한 것은 그의 허기를 채우기 위한 것이었지만, 베드로는 이를 거절했다. 사실 유대인들의 이방인 선교에 있어서 걸림돌이 되었던 것이 바로 음식문제였다. 왜냐하면 그것이 유대인과 이방인의 교제를 방해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소개된 “땅에 있는 각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행 10:12) 등에는 레위기 11장에 의해서 분류된, 정결하고 부정한 짐승이 모두 포함되었다. 유대법에 의하면, 어떤 음식은 먹는 것이 금지되었다(참조, 레위기 11장, 신명기 14장; 막 7:2). 이런 음식법(코쉐르, kosher)은 유대인이 이방인과 함께 식사하는 것을 매우 어렵게 만들었다(참고, 행 11:3).

따라서 음식을 가려먹지 않는 이방인들은 종종 부정(不淨)하다고 간주되었다. 그런데 베드로에게 세 번씩이나 그 짐승을 잡아먹어도 괜찮다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서 하나님은 같은 명령을 반복하였다. 이러한 명령의 반복은 곧 이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임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따라서 베드로의 거절은 여전히 베드로가 이방인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견지하고 있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일 수 있다.

그러나 결국 베드로가 본 환상은 베드로가 이방인들을 하나님이 구원하지 않을 열등한 백성으로 간주하지 말아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유대인들의 견지에서 볼 때 이런 불결한 음식을 먹으라고 한 것은 구원과 삶의 기준으로서 이스라엘에게만 주어진 율법의 무효화 혹은 폐지를 뜻하는 것이며, 나아가서 복음으로 말미암아 부정하고 저주받은 자들로 간주되어온 이방인들과의 교제가 가능하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실 복음서에 의하면, 예수님은 그 사역 중 이미 음식의 정결법을 파기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마음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배에 들어가 뒤로 나감이니라 하심으로 모든 식물을 깨끗하다 하셨느니라.”(막 7:19; 참고 마 15:11, 딤전 4:3-5). 마가복음에만 기록된 예수님의 이 말씀이 특별히 로마의 이방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기록된 마가복음에서 갖는 의미는 특별하다. 결국 복음의 진리와 관련해서 이방인들에게 문제가 되고 있는 음식법을 비롯해서 모든 율법이 사실상 무효화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참고, 갈 3:23-26).

이 환상이 있기 전에 베드로는 이방인 백부장은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환상을 본 후, 베드로는 이방인의 집에 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에 관한 복음을 고넬료에게 증거하는 것이 자신의 책임임을 깨닫게 되었다. 성령님이 친히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은(행 10:19) 결국 베드로와 고넬료의 만남을 실제적으로 주관하신 분이 성령 하나님임을 밝혀주는 것이다.

이 말은 하나님이 고넬료를 통한 이방인의 교회로의 영입을 추진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사실 여기에 기록되어 있는 ‘소리’(행 10: 13, 15), ‘천사’(행 10:3, 7), ‘성령’(행 10:19)은 의미상 별 차이가 없다. 이런 환상이 있은 후, 바로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베드로의 집 앞에 이르렀고, 베드로는 그들을 자기 집에 머물게 하였다. 고넬료가 보낸 이방인들을 불러들여 유숙하게 함으로써, 사실 베드로는 이미 이방인들을 받아들이기 위한 첫 단계를 취한 것이었다(비교, 행 9:43). 왜냐하면 이방인들과의 이러한 친밀한 교제는 사실상 유대법에 어긋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튿날, 베드로는 성령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이들과 함께 가이사랴에 있는 고넬료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사실 이방인의 집에 들어감으로써 베드로는 법적으로 이미 부정하게 되었는데, 이를 알면서도 들어간 것은 하나님의 명령으로 인해서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장애물이 제거되었음을 보았기 때문이다(참고, 엡 2:11-22).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고넬료의 회심 사건은 그의 회심의 중매자 역할을 하였던 베드로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으며, 그 결과 유대인의 사도로서 이방인 선교를 인정하게끔 되었던 것이다. 베드로의 그런 변화는 장차 개최될(행 15장) 예루살렘에서의 사도회의에서 공식적으로 그리스도의 교회가 이방인들을 영입하게 되는 결정을 내림에 있어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처럼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우리 각자의 삶을 매우 구체적으로 인도하신다. 따라서 우리가 베드로와 고넬료처럼 습관적으로 하나님과 날마다 깊은 교제를 가질 때, 하나님은 그 교제를 통하여 하나님의 위대하신 계획을 우리를 통하여 성취해 나가시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주님과의 교제가 없으면 주님의 인도하심도 기대할 수 없다는 뜻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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