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25강) 중재의 은사로 바울을 세운 숨은 공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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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25강) 중재의 은사로 바울을 세운 숨은 공로자
  • 승인 2009.06.10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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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심 후 바울의 사역을 도운 바나바





회심하고 나서 세례를 받은 후에 몸이 회복되자, 바울은 이내 다메섹에서 복음을 증거하기 시작했다(행 9:20). 그러나 유대인들의 반대에 부딪쳐 거기서 쫓겨나게 되자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행 9:26). 한때 예루살렘에서 성도들을 핍박했던 전력(前歷)으로 인해 그곳의 성도들로부터 따뜻한 환영을 받지 못하던 바울은 다메섹에서처럼 도망치듯 쫓겨나게 되었다.

이처럼 바울의 다메섹 전도와 예루살렘 전도는 매우 유사한 형태로 띤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한 마디로 결과적으로 볼 때 실패처럼 보인다. 그리고는 가이사랴을 거쳐 끝내는 고향인 다소로 돌아가게 되었다.

갈라디아서 1장 17-18절에 의하면, 바울은 회심 직후 “혈육과 의논 하지 아니한 채”(갈 1:6), 다메섹을 떠나 다메섹 남동쪽 지방인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그 후 삼년 뒤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보름 간 머물면서 베드로와 주의 형제 야고보를 만났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삼 년이 사도행전 9장 22절과 23절 사이에 발생했는지, 아니면 25절과 26절 사이에 발생했는지는 불분명하다. 어떤 이들은 23절의 “여러 날이 지나매”는 오랜 기간의 시간을 가리킨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바울이 다메섹으로 돌아갔을 때, 아레다(Aretas) 왕의 방백들이 그곳의 유력한 유대인들의 소요를 막기 위해서 바울의 체포를 명령했다고 말한다(고후 11:32). 또 다른 가능성은 바울의 야반(夜半) 도주는 그의 회심 직후 다메섹에서의 첫 체류 동안에, 즉 바리새인들이 바울의 이탈에 당황하고 분노했을 때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바울은 하나님과의 조용한 만남의 시간을 갖기 위해, 그리고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진정하도록 하기 위해 아라비아로 도망쳤던 것이다.

얼핏 보기에 바울 자신이 쓴 갈라디아서(1장)와 이곳에서의 누가의 기록이 모순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나, 사실 갈라디아서와 사도행전의 기록 목적이 다르므로, 우리는 두 책 사이의 차이를 모순으로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자신의 회심이 그리스도의 직접적 계시에 의한 것이고, 사도로서의 자신의 권위가 열두 사도로부터 부여된 것이 아님을 입증하고자 했다. 그러나 사도행전에서의 누가의 목적은 교회의 확장에 관심하는 것이었다. 어느 이론이 옳든지 간에, 바울의 회심(행 9:3-6)과 예루살렘으로의 여행(행 9:26) 사이에는 최소한 삼년간의 기간이 경과하였다.

사울이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증거할 때, 그곳의 그리스도인들은 한 때 자신들을 박해했던 사울과의 사귐을 원치 않았다. 그러자 바나바가 중재자로 나서서 사울과 예루살렘의 제자들 사이에 다리 역할을 하였다(행 9:26-28). 한 마디로, 그는 중재의 은사로 바울을 세운 숨은 공로자였다. 우리의 평판을 바꾸는 것은 어렵다. 새 신자들, 특히 평판이 나쁜 이들은 곁에 있어 격려하고 가르쳐주며 다시 신자들에게 그들을 소개해줄 수 있는 바나바와 같은 후원자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 우리는 새 신자들에게 바나바가 되어주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 다음에 연속적으로 소개되는 세 편의 기사, 즉 애니아의 치유, 다비다의 회생, 고넬료의 회심은 흔히 ‘베드로 행전’(the acts of Peter)으로 분류될 수 있을 것이다(행 9:32-10:48). 신학적으로 세 기사는 복음의 포괄적 성격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남자와 여자를 한 쌍으로 묶어 소개하는 문학적 기교는 누가가 잘 쓰는 방법이다. 사실 사도행전의 세 기사는 누가복음 15장의 기사들과 매우 유사함을 보게 된다. 즉 짤막한 두 편의 비유(잃은 양과 잃어버린 동전의 비유)와 훨씬 긴 비유(탕자의 비유)가 함께 소개되면서, 세 편의 비유 모두 잃어버린 자가 찾아질 때에 발견되는 천국에서의 기쁨을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누가복음의 세 편의 비유와 마찬가지로, 사도행전의 이 세 기사는 모든 사람에게 열려진 구원의 복음의 보편성을 보여주고 있다.


사도행전 1장 8절의 주의 명령에 따라 복음이 점차적으로 예루살렘을 넘어서서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로 퍼져나가는 즈음에, 다시 베드로가 등장한다. 이전에 베드로가 언급된 곳은 사마리아에서의 사역이었는데(행 8:25), 여기서 베드로는 팔레스타인 서부 지방에 흩어져있는 여러 기독교 공동체들을 돌아보는 목회사역을 하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베드로는 룻다에 내려가 팔 년된 중풍 병자 애니아를 고쳤고, 이로 인해 룻다와 사론 지방의 많은 사람이 기독교로 개종하게 되었다. 특별히 사론 지방은 반 이방인 지역이었는데, 이곳에 베드로가 내려간 것은 이방인 전도를 향한 진일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베드로는 욥바에 사는 과부 다비다의 병사(病死)로 인해 부름 받고 욥바에 내려가 그를 살려냄으로써, 다시금 그 지역의 많은 사람들을 주께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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