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24강) 감정보다는 말씀에 복종한 참 헌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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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24강) 감정보다는 말씀에 복종한 참 헌신자
  • 승인 2009.06.03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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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된 주의 제자 아나니아




하나님은 바울을 회심하게 하시면서 그만을 위한 특별한 길을 예비하고 계셨다. 그것은 바울을 위해서 영적으로 육적으로 꼭 필요한 한 사람을 미리 준비시키는 것이었다. 다메섹에 거주하는 주의 제자 아나니아가 바로 그 사람이었다(행 9:10-19). 아나니아는 최근의 개종자 같지는 않고, 이미 그 이전에 개종한 그리스도인으로 생각된다.

어떻게 다메섹에 복음이 들어갔는지는 확실하게 알 수가 없지만, 아마도 오순절에 예루살렘을 방문했던 사람들 중 회심하게 된 사람들이 돌아와 그곳에 복음을 전했을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혹은 다메섹이 상업의 요로(要路)였으므로 여행 다니던 상인들에 의해 복음이 전달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아나니아는 환상 중에 그리스도로부터 눈이 멀게 될게 된 사울을 도와주라는 명령을 받게 되었다. 누가에 의해 극적으로 묘사되어 있는 이 바울의 회심 기사는, 후에 바울 자신이 밝히고 있는 회심 기사와 비교해 보면 좋을 것이다(참고, 행 22:12-16). 여기서의 초점은 아나니아가 하나님의 명령에 부응해서 인간적인 감정을 억제한 채, 자신의 원수와도 같았던 사울을 기꺼이 형제로서 영접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사실 하나님이 사울의 회심에 대하여 아나니아에게 말했을 때 처음에 아나니아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사울이 그리스도인들을 죽기까지 핍박하였기 때문이다. 비록 이처럼 이해할 만한 감정이 있기는 했지만, 아나니아는 하나님께 순종하고 사울을 도왔다. 우리는 우리의 감정대로 행하여 하나님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 비록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어려운 사람을 만나게 하고 또 힘든 장소로 인도할지라도, 기꺼이 순종하고 따라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아나니아에게 바울이 장차 이방인을 위한 사역으로 인해 얼마나 고난을 받을지를 예언하셨다(행 9:16).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은 커다란 축복만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종종 커다란 고난도 가져다준다. 바울은 그 믿음으로 인해 고난당할 것이었다(참고, 고후 11:23-27).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을 받은 이 사명은, 장차 그가 받을 고난과 분리된 것이 아니었다. 사실상 사도행전 전체를 통해서 바울의 사역은 배척과 핍박의 연속이었다(행 13:46-47; 20:19-21; 22:25-28). 이러한 바울의 사역을 볼 때, 하나님은 우리를 안락으로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헌신으로 부르심을 알게 된다. 그분은 우리를 고난과 역경으로부터 건져준다고 약속하신 것이 아니라, 고난과 역경 가운데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신다.

아나니아가 사울을 발견했을 때, 그에게 “형제 사울아”라고 인사했다(행 9:17). 사울이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해서 예루살렘으로 끌어가려고 다메섹에 왔기 때문에, 사실 아나니아는 사울과의 만남을 두려워했다(행 9:2). 그러나 성령에 순종해서, 아나니아는 따뜻하게 사울을 맞이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나타내 보이는 것은 항상 쉽지 않다.

특별히 우리가 그들을 두려워하거나 그들의 동기에 의심이 갈 때는 더욱 그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 사람의 마음을 전하면서, “서로 사랑하라”는 주님의 명령(요 13:34)과 아나니아의 모범을 본받아야 할 것이다.

시력을 회복하고 다메섹의 그리스도인들과 약간의 시간을 보낸 후 즉시(세례 받은 후 즉시) 사울은 회당으로 가서 유대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했다. 어떤 그리스도인은 새 신자에게 그들의 믿음이 견고하게 선 후에 전도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도록 권면한다.

사울은 세계 선교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홀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서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행 9:19 “며칠 있을 새”란 문구는 누가가 짧은 기간을 말하기 위해 상투적으로 사용하는 표현인데, 바울은 잠깐 동안 다메섹에 있다가 아라비아로 갔을 것으로 보인다(갈 1:17). 그러나 전도하기 위해 기다리지 않았다.

비록 준비되지 않은 채 사역에 뛰어들어서도 안 되지만, 우리에게 일어난 일을 남에게 전하기 위해 마냥 기다릴 수도 없는 것이다. 한편, 회당에서 설교하는 것은 이후 사울에게 규칙적인 습관이 되었다(행 13:5; 14:1; 17:1-2, 10; 18:4, 19; 19:8).


사울의 설교를 듣는 사람들은 다 놀랐다고 누가는 전한다(행 9:21). 사울은 뛰어난 학자이기 때문에 그의 논증은 논리적으로 강력했다.

그러나 그를 보다 설득력 있게 만든 것은 박해자에서 전도자로 바꾸어진 바울의 변화된 삶이었다. 사람들은 바울이 가르치는 것이 사실임을 알았다. 왜냐하면 그의 삶을 통해서 그 증거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동서고금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해당되는 교훈으로서, 성경이 가르치는 것을 알고 믿음을 변호하는 방법을 아는 것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우리의 말은 변화된 삶으로 입증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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