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세리장 삭개오의 구원 여리고 성의 세리장 삭개오 이야기(눅 19:1-10)와 그 앞에 기록된 소경 치유 사건(눅 18:35-43)을 이야기할 때 제기되는 질문 하나는 과연 주님이 여리고 성에 들어갈 때 소경을 만나 고쳤는지 아니면 삭개오를 만나고 난 후 여리고 성에서 나갈 때 그를 만났는지 하는 것이다. 마가와 마태복음에는 삭개오 사건은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부자 관원 사건과 연결되어 소경 치유사건은 등장하는데, 모두 여리고 성에서 나갈 때 주님이 소경을 만난 것으로 되어 있다(막 10:46; 마 20:29). 반면에 누가복음에서는 주님이 여리고 성에 들어가기 전 소경을 만난 것으로 나타난다(눅 18:35; 19:1).
이와 같은 문제는 복음서를 순수한 역사적 기록인 전기(biography)로 보기 때문에 야기되는 것이다. 물론 당연히 복음서는 주님이 이천여 년 전 팔레스타인을 배경으로 하여 가르치며 행하였던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기록된 책이다. 그러나 그 사실(史實)을 기록한 책은 한 권이 아니라 네 권이나 되며, 그 안의 내용이 동일한 순서와 내용이 아니라는 점, 즉 같은 사건이라도 다르게 기록되거나 사건의 순서가 앞뒤로 바뀌었다는 것은 어느 한 복음서가 맞고 다른 복음서는 틀리다고 말할 수 없도록 만든다.
그러면 이러한 관점에서 본문의 문제는 어떻게 해석될 수 있을까? 앞선 글에서 우리는 소경 치유 사건 전후로 두 명의 부자 이야기가 대조적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을 언급한 바 있다. 그리하여 눈 뜨기 전의 소경은 아직 재물에 집착한 나머지 영안(靈眼)이 어두운 부자 관원의 모습과 같고, 눈 뜬 후의 소경은 자신의 재물 전체를 기꺼이 포기하기로 결심함으로써 영안이 열린 삭개오의 모습과 같은 것이다.
앞서 우리는 누가복음의 부자 관원 이야기가 마가, 마태복음과 다른 점 중 하나로 주님이 부자 관원에게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눠준 후 자신을 따르라는 명령을 듣고 부자가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는 것을 지적한 바 있다(눅 18:2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