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73) 종말론과 청지기 비유
상태바
누가복음(73) 종말론과 청지기 비유
  • 승인 2007.10.10 17: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청지기의 근본 정신은 관리인이다.






▲ 김경진교수 백석대 신학과
재물에 관한 교훈 다음에 이어지는 두 개의 비유(눅 12:35-48)는 내용은 다르지만 배경과 의도가 유사한 까닭에 누가는 이 두 비유를 묶어서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배경은 주로 시골 농장을 무대로 한 주인과 종의 관계이고, 의도는 주인의 예기치 않은 방문에 대비하여 깨어 있으라는 권면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누가복음은 일반적으로 ‘연기된 종말론’을 가르친다고 알려졌는데(참고 눅 9:23; 19:10), 여기서 말하고 있는 것은 임박한 종말론처럼 보이기에 그와 거리감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다른 종말론 가르침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종말의 연기를 제시하되 아울러 급작스런 종말 개념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된다.




특별히 개인적 종말의 경우는, 설령 역사적 우주적 종말이 연기되었다 하더라도, 얼마든지 어느 때고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눅 12:40, 46). 이런 맥락에서 신약성경이 가르치는 종말에 관한 교훈은 요한계시록과 데살로니가전서(4:13-5:11)와 함께 공관복음서에 기록된 ‘소계시록’(막 13장, 마 24-25장, 눅 21장)에 소개되어 있는데, 그 한결같은 강조점은 종말에 대한 상세한 시간표가 아니라 ‘깨어 있으라’는 가르침에 있음이 드러난다(참고, 행 1:7,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지혜롭고 신실한 청지기 비유’(눅 12:42-48)로 알려진 이야기는 누가복음에 등장하는 세 개의 청지기 비유 중 첫 번째로 등장한다. 사실 ‘청지기’(oikonomos)란 단어조차 오직 누가복음에서만 사용되는 특별한 용어이다. 이 비유의 병행기사인 마태복음(마 24:45-51)에서는 청지기가 아니라 그냥 종(doulos)이라고만 기록되어 있다. 아울러 누가복음에만 등장하는 두 번째 청지기 비유인 ‘불의한 청지기 비유’(눅 16:1-13)에서는 좀 더 직접적으로 청지기직의 태도 및 기능과 역할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세 번째 청지기 비유로는 마태복음의 ‘달란트 비유’(25:14-30)와 병행이 되는 ‘열 므나의 비유’(눅 19:11-27)가 등장하는데, 비록 청지기라는 용어 자체는 사용되고 있지 않지만, 그 종들에게 맡겨진 역할과 책임을 고려할 때 청지기 비유로 불리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누가가 말하는 청지기 개념은 분명 사도 바울이나 베드로가 말하고 있는 청지기 개념과는 차이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누가는 당대 사회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는, 세속적 의미의 보편적 청지기 직분을 설명하고 있는데 반해, 바울이나 베드로는 이러한 세속적 개념을 기독교 신앙에 도입하여 영적 의미로 치환하여 은사와 직분의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딛 1:7),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 4:10)




오늘날 한국교회에서는 청지기(steward)란 용어를 대개는 장로, 집사, 권사 등의 교회 직분자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제한시켜 버리는 경향이 있는데, 신약성경이 말하는 청지기 직분은 특별히 택함 받은 구별된 사람들만의 역할이 아니라, 주 예수님을 믿는 모든 성도들에게 적용되는 보편적 개념이다.




앞으로 보다 상세하게 설명하겠지만, 청지기 직분의 기본 의미는 주인으로부터 위탁받은 주인의 소유를 잘 관리하는 관리인(manager)의 사명인 것이다. 좋은 관리자에게는 큰 복이 기다리나, 악한 관리인에게는 엄한 심판이 기다릴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