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복음서(87) 세례 요한의 기적적 잉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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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복음서(87) 세례 요한의 기적적 잉태
  • 승인 2006.06.01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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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진교수<백석대 기독신학대학원>



주전 6세기 이래로 천사는 유대 종교에서 하나님과 세상을 연결시켜 주는 중개자(intermediate)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천사가 수행하는 역할 중 하나는 하나님으로부터 사람에게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었다(출 3:2; 삿 13:3). 특별히 가브리엘 천사가 오른 편에 나타났다는 것은 호의와 보호를 의미하는 것인데, 거기서 그는 제사장 사가랴에게 그 아내 엘리사벳의 잉태를 예언한다(눅 1:13).


자녀가 없는 것은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수치로 여겨졌다. 왜냐하면 구원의 때까지 생명을 이어가게 하는 사람들의 연쇄 사슬이 끊어짐으로써 그들의 자녀 안에서 그 몫을 차지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구약에 등장하는 무자(無子)의 예로서는 아브라함과 사라, 그리고 리브가(창 25:21), 라헬(창 29:31), 한나(삼상 1:1-20)의 경우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요한’이란 이름은 히브리어 요하난(Johanan - 영어의 John이란 이름이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즉 “하나님은 자비로우셨다”에서 유래되었다. 이는 요한의 잉태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였음을 상기시겨 주는 것이다. 유대인들에게 이름은 그 사람이 태어난 환경 혹은 그의 미래나 운명을 묘사하기 위해 붙여지는데, 이런 관습을 파로노마시아(paronomasia)라 부른다.


그리하여 유대인들을 주 대상으로 하는 마태복음에서는 ‘예수’란 이름에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는 설명이 뒤따르는 것이다(마 1:21). 그러나 이방인들이 주 대상이었던 누가복음에서는 유대적 방식인 이런 관습이 소개되고 있지 않다(눅 1:31).


요한이 주(主) ‘앞에서’ 큰 자가 된다는 것(눅 1:15)은 그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종임을 기억나게 한다.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않는다는 것은 삼손의 어머니에게(삿 13:4-14), 나실인의 서약을 한 사람들에게(민 6:3), 그리고 레갑 자손들에게(렘 35:1-11) 부과된 규칙 중 하나였다.


이러한 규례는 유목민의 삶의 이상을 유지하기 위한 시도일 수 있고, 또한 하나님께 온전히 자신을 헌신하기 위해 일상적인 삶의 기쁨으로부터 격리된 하나님의 사람의 조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참고, 눅 7:33). 그러나 이러한 금욕주의를 안정된 마을이나 동네를 떠나 살았던 요한의 장래의 삶의 모습과 반드시 연결시킬 필요는 없을 것이다(눅 1:80). 왜냐하면 쿰란 공동체의 사람들은, 비록 유대 광야에서 격리된 삶을 살았지만, 예식 때 행하는 식사에 포도주를 함께 마셨기 때문이다.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었다”는 표현(눅 1:15, 참고 삿 13:5)은 그가 ‘출생할 때부터’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출생하기 전부터 이미’를 뜻하는 것으로 풀이함이 옳다. 이것은 세례 요한의 예언자적 삶이 하나님의 목적과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나타내는 생생한 표현인 것이다.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눅 1:15, 41, 67, 4:1) 혹은 “성령이 충만하여”(행 4:31)는 누가-행전에서 자주 등장하는 표현으로써, 하나님이 그들을 소유하심으로써 그들이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과 행위를 전달하는 도구가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사도 바울은 포도주에 취하는 것과 성령의 충만을 대조하여 명령하였던 것이다(엡 5:18). 이처럼 모태로부터 성령이 충만했던 요한은 주님의 선구자로서의 사명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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