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복음서(33) 구원으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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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복음서(33) 구원으로의 초대
  • 승인 2005.10.12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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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설교인 ‘파송 설교’(10장)가 끝난 후 세 번째 설교인 ‘천국 비유 설교’가 나오는 13장까지는 8~9장에서 그랬듯이 주님의 사역이 기록되어 있다. 11장에서는 세례 요한의 주님의 신분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하여 그에 대한 주님의 증언이 소개되어 있고(11:1~15), 이어서 예수님의 사역에 대한 중간 결산의 내용이 소개된다(11:16~19). 그리고 이제껏 주님의 사역의 주 활동 무대였던 갈릴리 도시들(고라신, 벳새다, 가버나움)에 대한 책망이 언급된다(11:20~24). 이후 부정적으로 그려진 중간 결산의 마지막은 오히려 아버지께 드리는 기쁨의 감사기도와 아울러 모든 사람을 쉬도록 부르는 초청으로 매듭짓고 있다(11:25~30).


주님이 행하신 열 가지 기적을 보고도(8~9장), 그리고 산에서 행한 지혜로운 말씀을 듣고도(5~7장), 주님 세대의 유대인들은 주님을 인정하지 않는다. 금식하는 세례 요한은 귀신 들렸다고 말하고,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는 주님은 방탕하다고 비판한다. 그리하여 주님은 가장 많은 능력을 행한 갈릴리 도시들에 대하여 심판을 선언하는 것이다. 주님이 가장 많이 권능을 베풀었다면 진즉 돌이켜 회개해야 마땅할 터인데, 오히려 더욱 교만하여 배척한 것은 참으로 배은망덕이라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현상에 대하여 주님은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아버지께 감사하고 있다(11:25). 여기서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은 서기관들과 당시 유대교(회당) 지도자들을 가리키며, 반면 어린 아이들이란 마태 교회의 회중들로서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을 가리킨다.


즉 그들은 세상적 기준에서 볼 때 ‘소자들’(10:42), 가난한 사람들과 억눌린 사람들이다(8~9장 - 문둥병자, 노예, 여자, 중풍병자 등등). 이처럼 약자와 소외된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이 세상의 원리와는 달리 움직이는 천국의 원리를 보여준다(참고, 고전 1:19~28). 이것은 또한 성경이 종종 언급하는 ‘운명의 역전(逆轉)’이라는 주제와도 연결된다. 다시 말하면 “권세 있는 자를 내리치시고 비천한 자를 높이시며, 부자를 공수(空手)로 보내시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는” 하나님의 역사(役事)와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눅 1:51~53).


이러한 맥락에서 주님은 세상 멍에에 얽매어 있는 모든 사람들을 안식과 쉼으로 초대한다(11:28~30). 멍에는 전통적으로 모세의 율법을 가리키는 말로서 그 멍에를 지는 이들은 참으로 힘들고 곤고하다(마 23:4). 그렇다면 “나의 멍에”란 산상설교에 나타난 그 율법에 대한 주님의 해석을 가리키는 것이다(5:17, 7:12; 22:37~40). 주님의 멍에는 쉬워서 메기가 쉽고, 따라서 자신이 짐을 나른다기보다는 주님이 그 짐을 대신 져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의 멍에를 메는 이들은 마음에 쉼을 얻게 되는데, 이는 곧 그들이 받을 구원을 가리키는 것이다. 즉 주님의 바른 율법 해석에 근거한 삶을 살 때 이 땅에서 마음에 평안을 누림과 함께 마침내 구원에 이르게 될 것을 약속하는 것이다.


/교수·천안대 기독신학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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