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복음서 - 산상설교
상태바
사복음서 - 산상설교
  • 승인 2005.03.09 16: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마태복음의 ‘지복’(至福) 설교가 누가복음의 지복 설교와 다른 것은 누가복음의 네 개의 ‘화’(禍)를 네 개의 또 다른 ‘복’(福)으로 바꾼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유심히 그 네 개의 복을 관찰하면 마태복음에서는 누가복음에 나오는 네 개의 복의 내용도 다르게 바꾸어진 것을 발견하게 된다.

즉, 가난한 자를 심령이 가난한 자로(마 5:3), 주린 자를 의(義)에 주리고 목마른 자로 변화를 준 것이다(마 5:6). 그리고 핍박을 받는 것의 이유도 의 때문임을 밝히고 있다(마 5:10).


이런 변화는 누가복음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것들이다. 마태복음에서 발견되는 이러한 변화는 이제 가난과 주림 및 목마름의 의미를 재정의하도록 유도한다. 즉, 마태복음에서 가난, 주림 및 목마름은 더 이상 문자적 의미가 아니라 영적이고 윤리적인 의미로 바꾸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변화는 실제적으로 가난한 자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부요한 자들을 대상으로 한 것으로 보여지는 것이다.


이것은 역으로 누가복음에서의 가난의 의미가 문자적이고 실제적임을 시사하는 것이며, 동시에 누가복음이 부요한 자들보다는 가난한 자들을 우선적으로 배려하여 기록된 복음서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누가복음의 주 대상이 가난한 자라는 말은 아니다. 나중에 차차 살펴보겠지만, 누가복음은 가난한 자들을 배려하여 쓰여진 복음서이기는 하지만, 그 주 대상으로 나타나는 것은 부요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흔히 해방신학에서 말하는 것처럼 누가복음을 가난한 자들만의 전유물로 간주하는 것은 매우 왜곡된 해석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서두에서 가난과 주림에 대한 바른 해석은 그것이 복음서의 고유한 특징과 연결되면서 장차 전개될 마태복음과 누가복음 신학 이해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여기서 ‘복’(헬, makarioi)이란 ‘행복한 상태’를 가리켜 말한다. 즉, 어떤 요구의 충족이나 조건의 만족으로 인하여 그 결과로 발생하는 세속적 의미의 행복이 아니라, 하나님이 약속하신 구원이 실현되는 것을 체험하기 시작한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느껴지는 심오한 기쁨을 가리키는 것이다. 따라서 문맥에서 가난, 애통, 온유 등등은 복의 결과, 즉 천국, 위로, 땅 등등의 전제가 되는 조건이지만, 하나님의 나라를 내적으로 체험한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자 동시에, 그런 약속에 상응하여 살라고 하는 요구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복은 ‘약속’(promise)과 동시에 ‘요구’(demand)인 셈이다. 이러한 기본 공식은 사실 산상설교에서만이 아니라, 신약 성경 전체에 걸쳐서 반복되는 매우 중요한 교리이자 교훈이다. 즉, 우리가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그 자체로서 축복이자 동시에 요구인 것이다.


하나님의 일방적 호의인 은혜로써 구원을 받았으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이제는 그 신분에 합당하게 살아야 한다는 책임이 아울러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교수·천안대 기독신학대학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