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서(111) 스스로 자신의 죄에 대한 선고를 내린 다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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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서(111) 스스로 자신의 죄에 대한 선고를 내린 다윗
  • 승인 2009.07.22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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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을 책망한 나단선지자




사무엘하 12장 1-4절에서는 양과 소가 많은 부자가 자신에게 행인이 찾아오자 그를 대접하기 위하여 가난한 사람의 양을 빼앗아 잡는 불의한 일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나단의 의도는 다윗이 밧세바를 빼앗기 위하여 우리야를 죽게 한 것이 얼마나 불의한 일이었는가를 보여준다.

나단의 의도는 다윗 스스로 자신의 범죄함에 대하여 판결을 내리도록 유도하고 있다. 나단의 이야기 속에서 가난한 자는 우리아에 해당하고, 양은 밧세바이며, 부자는 다윗이다. 그러나 여행자는 아무에게도 해당하는 자가 없다. 나단은 가난한 자와 부자의 대비를 통하여 청중의 감정에 호소하고 있다.

5절에서는 나단의 설명을 들은 다윗은 정의감에 불타 나단에게 그 부자는 마땅히 죽을 자라고 말한다. 이러한 말을 하는 다윗의 모습에서 다윗은 나단의 말이 자신의 일을 두고 빗대어 한 말 인줄 알지 못하였다. 이러한 다윗의 판단은 고대 이스라엘의 법 규정을 넘어서는 판결이다. 왜냐하면 고대 이스라엘에서 도둑질로 사형에 처하는 벌을 받지는 않기 때문이다.

6절에서는 부자가 가난한 자에게 양을 네 배로 갚아주라고 말한다. 다윗 스스로 자신의 범죄에 대하여 판결을 내린다. 이러한 모습은 왕은 고대사회에서 재판장의 기능을 하기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다윗의 네 배 배상은 출애굽기 22:1절에 근거한 것이다. 즉 “사람이 소나 양을 도둑질하여 잡거나 팔면 그는 소 한 마리에 소 다섯 마리로 갚고 양 한 마리에 양 네 마리로 갚을지니라.” 이것은 다윗은 부자의 행위를 도둑질과 같은 것으로 이해하였음을 알 수 있다. 다윗은 자신의 해법대로 자신의 네 아들을 잃게 된다.

즉, 밧세바를 얻기 위하여 우리야의 목숨을 앗았기 때문에 그 대신으로 네 아들을 잃었다(삼하 12:19, 삼하 13:28-29, 18:14-15, 왕상 2:24-25). 즉, 밧세바와의 불륜에서 얻은 아들(삼하 12:19)과 암논(삼하 13:28-29), 압살롬(삼하 18:14-15), 그리고 아도니야(왕상 2:24-25)이다.

7절에서 나단은 분노하며 대답하는 다윗에게 “당신이 그 사람이다”(아타 하-이쉬 שׁאה החא )라고 말한다. 나단은 다윗 스스로 자신의 죄에 대한 선고를 내리게 하였다. 이어서 7b-12절까지 나단은 다윗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한다. 따라서 나단은 “여호와께서 이와같이 이르시기를”이라는 사자공식(messenger formula, 使者樣式)을 통하여 말을 선포하고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여호와께서는 다윗에게 은혜를 베풀었지만 다윗은 배은망덕하게 두 가지 죄를 지었으니 두 가지 벌을 받을 것임을 말한다.

첫째는 우리아를 죽게 한 죄에 대해서는 다윗의 집에서 나온 칼이 그 죽일 대상을 찾을 것이다. 즉, 다윗 집안에 피비린내 나는 일이 있을 것임을 예견하였다. 둘째, 다윗의 간음에 대해서는 다윗의 아내를 빼앗아 네 이웃에게 주며, 그들이 다윗의 아내와 백주에 동침할 것이라고 예언한다. 즉, 다윗의 집에 임하는 재앙에 대하여 선언한다. 다윗의 죄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긴 것이다(9절). 9-10절에 기록된 다윗의 죄는 업신여기는 것이다. 히브리어 동사 바자(הגב)는 ‘경멸하다’(despise), ‘함부로 다루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사람이든 하나님의 말씀이든 경멸하거나 혹은 함부로 다룰 때 이 단어를 사용한다.

7b-8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사울의 집과 사울의 아내들을 다윗에게 넘겨주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기록은 사무엘하 12:7-8절에만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만일 그것이 부족하였을 것 같으면 내가 네게 이것 저것을 더 주었으리라”는 표현을 통하여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주신 것이 부족함이 없었음을 알 수 있다.

9절에서 여호와께서 나단을 통하여 다윗이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악을 행하였음을 질책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암몬 자손과 전쟁 중이던 우리야를 칼로 죽이고 그 아내를 빼았았다고 말하고 있다.

10절은 그 죄악에 대한 대가로 다윗의 집에서 칼이 영원히 떠나지 않을 것을 예언한다. 즉, 암논(삼하 13:28-29), 압살롬(삼하 18:14-15), 그리고 아도니야(왕상 2:24-25) 등 다윗의 아들들이 서로를 죽이는 일이 있을 것을 예언한다.

11절에서는 마치 욥기 31:9-10절처럼 백주 대낮에 동침이 있을 것임을 말하고 있다. 즉, 사무엘하 16:22절에서는 압살롬이 다윗의 후궁들과 더불어 동침하는 일이 일어난다. 이것은 사무엘하 20:3절에서 다윗이 후궁들과 관계를 맺지 않는데 이것은 압살롬이 이들과 관계를 맺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11절은 다윗의 가문 내에서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게 됨을 예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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