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서(108) 암몬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이스라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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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서(108) 암몬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이스라엘
  • 승인 2009.07.01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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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국과의 외교정책




사무엘하 10장 5절에서 다윗은 조문사절들을 여리고(Jericho)에 머물게 하고, 수염이 다시 자랄 때까지 기다리고 명령을 내린다. 여리고는 이스라엘과 암몬 사이를 연결하는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다윗 시대의 여리고의 등장은 성서의 내용과 불일치를 야기시킨다. 여리고는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할 때 점령하고, 파괴한 도시였다. 이 도시가 다시 건축된 것은 아합 시대였다(왕상 16:34).

6절에서는 외교적인 분쟁이 발생하자 암몬은 용병으로 아람 사람(벧르홉과 소바 사람 포함) 이만명과 마아가 왕의 군대 천 명, 돕(Tob)의 사람 이만 명 등 모두 41,000명의 군인을 고용하였다. 이처럼 암몬 사람들이 무장하고, 전쟁을 준비한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다윗은 요압과 그의 용사를 파견한다. 톱(Tob)은 에드레와 보스라(Bosra)사이에 위치한 오늘날 에트-타지베라고 추정한다.


 
8절에 의하면 암몬 군대의 진영에 대한 설명이다. 암몬 군대는 성문 밖으로 나와 성문 어귀에 진을 치고 있었고, 나머지 용병들은 따로 들에 진치고 있었다. 8절의 성문은 아마도 암몬의 수도인 라바(Rabbath Ammon)의 성문을 의미한다.

9-10절의 요압의 전략은 특수대를 선발하여 요압이 지휘하여 아람 사람을 대적하여 싸우고 나머지 군인들은 아비새가 지휘하여 암몬을 대적하도록 부대의 역할을 나누었다. 이렇게 부대를 나눌 때 요압의 위치는 아람 군대와 암몬 군대 사이에 위치하는 매우 위험한 위치였다. 따라서 요압과 아비새는 아람 군대가 강하면 아비새가 요압을 돕고, 암몬 군대가 강하면 요압이 아비새를 돕는 것으로 서로 역할을 나누었다.

12절에서는 이 전쟁이 성전으로 진행되기를 원하는 것을 담고 있다. 따라서 담대할 뿐만 아니라 여호와께서 선하게 여기시는 대로 행동하기로 결정하였다.


13절에서는 요압과 그의 군대가 진격하자 아람 사람들이 퇴각하였다. 아람 사람들이 도망하는 것을 본 암몬 군인 역시 도망하여 성 안으로 들어갔다.


14절에서는 요압과 아비새가 전쟁에서 승리 한 후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였다.

15-16절에서는 아람 군대가 다시 진영을 정비하고 소박(Shobach)의 지휘 아래 헬람(Helam)에 도착하였다. 이 소식이 다윗에게 전해지자 다윗이 군대를 모으로 요단을 건너 헬람으로 진격하자 아람 군대가 이스라엘 군대에게 선제공격을 가하였다. 18절에 전쟁의 결과가 기록되어 있는데 병거 700대와 마병 40000명이 죽고 군사령관인 소박 역시 전사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어떤 학자들은 헬람에 대하여 요단 동쪽에 있는 도시로 갈릴리 호수에서 동쪽으로 52 km떨어진 알마(Alma)와 동일시하기도 한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승리는 주변국가들의 외교정책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따라서 19절에서는 벧르홉과 소바, 마아가, 그리고 돕(Tob)이 자신들의 패배를 인정하고 다시는 암몬을 돕지 않고 이스라엘과 화친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사무엘하 11장은 다윗과 밧세바의 만남과 이를 통한 다윗의 간통의 범죄와 밧세바 사이에서의 솔로몬 출생의 계기가 되었다. 11장은 다윗의 간음과 살인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이 사건은 사무엘하 10장부터 시작된 다윗과 암몬과의 전쟁 가운데서 일어난 일이다. 전쟁은 이 사건에서 다윗이 간음하게 될 밧세바의 남편인 우리아가 집에 없는 상황을 만들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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