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서-사사기(11) 납달리와 단의 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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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서-사사기(11) 납달리와 단의 정복
  • 승인 2006.05.25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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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진교수<연세대 연합신대 구약학>



사사기 1:35-36절은 납달리 지파와 단 지파가 원주민을 쫓아내지 못한 지역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납달리 지파의 영토 가운데서는 벧세메스와 벧아낫 두 곳의 원주민을 쫓아내지 못하였다. 벧세메스(Beth shemesh; ‘태양신의 집’이라는 뜻)라는 지명은 구약성서에 크게 네 곳 등장한다.


첫째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쉐펠라(낮은 구릉지대라는 히브리어)에 위치한 곳이고, 여호수아 19:22절에는 잇사갈 지파의 도시 가운데서도 벧세메스가 존재한다. 셋째로 예레미야에는 이집트에도 벧세메스라는 지명이 있었음을 기록하고 있다(렘 43:13).

그리고 마지막으로 납달리 지파의 벧세메스이다. 이처럼 성경에 벧세메스라는 이름이 많이 존재하는 것은 가나안 시대에 태양신을 섬기는 곳에 이러한 지명을 붙였으며, 이를 통하여 이스라엘 전역에서 태양신 숭배가 만연되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납달리 지파의 벧세메스는 갈릴리 북쪽에 위치한 키르베트 텔 에르-루베이시(Khirbet Tell er-Ruweisi)라고 생각한다. 벧아낫은 이집트의 투트모세 3세, 세티 1, 람세스 2세 그리고 제논 파피루스(Zenon Papyri) 등에 그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매우 중요한 도시였다. 성경에서는 오직 사사기 1:35절에만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사사기 1:35절에 의하면 납달리 지파는 갈릴리 호수를 중심으로 중요한 벧세메스와 벧아낫을 점령하지 못하고 그 주민들을 쫓아내지 못하였다. 따라서 납달리 사람들이 가나안 주민과 이 두 도시의 원주민들과 함께 살고 있었는데 이 두 지역의 원주민들이 납달리 사람들을 위한 부역(corvee)을 감당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단 자손들이 산지로 쫓겨났음을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34절의 기록은 여호수아 19:47절의 단 지파가 갈릴리 호수 북쪽의 레셈으로 옮겨간 것을 암시하고 있다. 왜냐하면 19:40-46절의 단 지파의 기업은 주로 지중해 동쪽 오늘날 텔 아비브 근처의 지역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 단 지파는 여호수아 19:40-46절처럼 지중해 연안의 좋은 곳을 기업으로 분배 받았으나 사사기 1:34절처럼 가나안의 아모리 족속들의 저항이 거세 정착에 어려움이 있었으나 헤레스 산, 아얄론과 사알빔에 거주하게 되었고(삿 1:37) 마침내 여호수아 19:40-46절과 같은 땅을 기업으로 얻었다.


그러나 단 지파는 지속적으로 가나안 사람들의 시달림 속에서 기업으로 받은 땅에 거주할 수 없게 되었고, 단 지파는 거주할 땅을 찾다가(삿 18:1) 마침내 갈릴리 호수 북쪽의 레셈을 점령하고 단이라고 이름을 고치고 그곳에 거주하게 되었다(수 19:47).


헤레스 산(Mt Heres)은 아얄론 근처의 산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그 정확한 위치를 알려지지 않았다. 많은 학자들은 투트모세 3세의 기로겡 등장하는 도시목록 가운데 77번의 ‘하르’를 헤레스로 생각한다. 아얄론은 벧 호른 바로 아래 블레셋과의 경계에 있는 지역으로 해안지역에서 유다 중앙산악지대로 이동하는 중요한 길목이다.

에브라임 지파와 경계에 있으며, 이 지역은 단 지파에게 위임되었다(수 19:42). 또한 이 도시는 레위 사람 가운데 고핫 자손에게 할당된 레위지파의 도시로도 언급되어 있다(수 21:24). 솔로몬은 아얄론을 자신의 두 번째 행정구역으로 삼는다.


사알빔은 단 지파에게 할당된 도시이며, 솔로몬 때 제2행정구역의 사알본과 같은 지역으로 추정한다. 많은 학자들은 아얄론 북서쪽 4.8km에 위치하고 있는 셀레비로 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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