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와 함께한 좌충우돌 성경 1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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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와 함께한 좌충우돌 성경 1독
  • 최창민
  • 승인 2009.12.07 14: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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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성 장로의 외손녀들과 행복한 성경 읽기
▲ 성경을 읽고 있는 황현성 장로(왼쪽부터)와 외손녀 윤혜정, 윤서현 자매.

“예수님은 어떻게 병을 고쳐요? 의사예요?” “하나님은 어디 살아요?”

외손녀와 함께 성경 읽기에 푹 빠진 황현성 장로(71세, 수원성림교회)에게도 요즘 부쩍 늘어난 손녀들의 질문에 쉬이 대답하지 못할 때가 종종 있다. 특히 60년 이상 세대차를 넘나드는 일곱 살배기 혜정이의 야무진 물음은 세월이 담보해준 지혜로도 당해낼 재간이 없다. 그러나 황 장로에게 이런 역경(?)은 되레 힘이 나게 한다. 손녀들이 뭔가 하나씩 배워간다는 살가운 증거이기 때문이다. 난처한 질문은 그래도 상전. 하루가 멀다고 외손녀와 할아버지 사이에 말 못할 긴장감이 감돈다. 황 장로가 외손녀들에게 ‘성경 1독을 시켜야겠다’고 결심한 이후부터 이 같은 충돌은 예견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 수업도 아닌데 왜?

엄마와 아빠가 맞벌이를 하는 탓에 서현(13세)이와 혜정(7세)이는 낮에는 외할아버지 집에 머문다. 자연스럽게 황 장로 내외가 양육을 맡았다. 무엇을 물려줄까 고민하던 황 장로는 신앙을 물려줘야 한다고 생각했고, 성경 1독을 시키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1독을 완수하기 위해 하루도 빠짐없이 두세장씩 일정분량을 소화해야만 했다. 아이들이 저녁마다 할아버지 댁에 들려 성경을 읽고 집으로 돌아갔다. 아이가 학교에 오래 머물러야할 때는 할어버지가 성경을 들고 직접 학교를 찾아 그날 분량을 채운다. 학교 수위 아저씨도 할아버지가 도서관을 찾는 일이 빈번해지자, 성경 읽는 모습을 보면 인사를 건 낼 정도가 됐다. 다른 아이들이 TV보거나, 혹은 공부를 할 때, 서현이와 혜정이는 매일 성경 읽는 습관을 들인 것이다.

빠르고 쉬운 일에 익숙해 끈기와 인내심이 부족한 요즘 아이들에게 성경 1독은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다. 할아버지 역시 노구를 이끌고 계속 학교를 찾는 것이 쉽지 않은 일. 그러나 황 장로의 생각은 이렇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학교 수업에 쫓겨 1독은 꿈도 못 꿉니다. 어린 시절에 성경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신앙생활의 반석을 놓아주고 싶었습니다.”

10살 때 처음 성경읽기를 시작한 서현이는 “학교 수업도 아닌데 왜 읽어야 하느냐”는 투정이 빈번했다. 그럴 때면 황 장로는 망설임 없이 “성경을 읽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다. 따라 해봐.”라고 말한다. 서현이는 쓴 삼을 삼키듯 따라하곤 했다. 그래서 생각해낸 묘안이 허기를 달래주는 일이었다. 떡볶이, 통닭 등 서현이가 즐겨먹는 것을 사주면서 어르고 달랬다. 그렇게 씨름하기를 6개월 18일째. 마태복음부터 시작했던 신약 1독을 마쳤다. 서현이는 소파에서 뒹굴며 좋아했다. 시원하게 웃으며 좋아하는 모습에 황 장로도 흡족했다.

신약을 무사히 마치자 황 장로도 서현이도 조금 욕심을 냈다. 할아버지의 지도로 한자 공인 3급 자격증을 취득했던 서현이. 할아버지와 함께 구약을 국한 혼용 성경으로 읽기로 한 것이다. “천지 창조와 출애굽기, 열가지 재앙, 홍해를 가르는 이야기 등에 매료되고도 하고, 가나안 정복과 여리고성이 무너지는 이야기에서는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어요.” 황 장로는 서현이가 흥미를 붙여가는 모습에 흡족해 했다. 그러나 구약은 결코 초신자나 어린이들에게 읽기 편한 이야기로 구성돼 있지 않다. “사람 이름이 계속 나열되기도 하고, 친인척을 죽이거나 서로 죽고 죽이는 장면도 많았어요. 비슷한 말이 반복된다고 느꼈는지 잠언이나 전도서에서는 읽다가 조는 일도 빈번했습니다. 다행히 시편은 좋아하는 눈치였어요.”

# 할아버지 나도 할래요

서현이가 구약을 힘겹게 읽어가던 때, 언니가 성경 읽는 모습이 재미있어 보였는지 혜정이가 하겠다고 나섰다. 황 장로는 나이가 어리다보니 버거울 것 같아 어린이용 성경을 한권 사서 선물했다. 서현이가 처음에 힘들게 읽었던 것과 달리 혜정이는 일찍 재미를 붙이는 듯 했다. 시키지 않아도 성경을 들고 “할아버지, 해요”하며 달려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내 흥미를 잃어갔다. “복음서를 마치고 사도행전, 로마서로 갈수록 읽는 것이 힘들었던지, 고개를 떨구는 때가 많았습니다.” 황 장로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서현이만 시킬 때는 그나마 하루에 한번이었다. 그러나 혜정이까지 시작하자, 아파트와 도서관을 순회하는 날이 많아졌다. 녹초가 되는 일이 다반사였다. 황 장로는 10년 전 위암, 안구종양 등 큰 수술을 두 번이나 받았다. 이 때문에 16kg이나 체중이 줄었다. 반면에 서현이의 키는 부쩍 자라 할아버지를 넘어선지 오래였다. 그래도 황 장로의 소신은 변함이 없었다. “힘이 닿는 데까지 아이들에게 신앙의 뿌리를 전해주는 것이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의 절대성, 진리와 오묘함을 발견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수고하기 1년여. 올해 2월17일 혜정이가 신약을 1독했다. 언니보다 26일이나 빨랐다. 또 언니 서현이는 2년 11일 만인 올해 7월17일, 1독을 마쳤다. “말라기까지 다 읽었을 때는 뿌듯함과 성취감을 느꼈어요.” 초등학교 6학년인 서현이는 그사이 부쩍 바빠졌다. 나이가 들면 바빠져서 못 읽게 될 거라는 황 장로의 생각대로였다. 대신 할아버지가 선물한 요약성경해설집을 통해 또 다른 방식의 성경읽기를 계속하고 있다. 동생 혜정이는 1년 14일 만인 지난 9월8일 1독을 마쳤다. 그리고 스스로 2독 째에 접어들었다.

# 성경에서 발견한 비전

“처음에는 끝이 안 보이는 망망대해를 건너는 것 같았습니다. 완숙한 계획으로 시작하지는 못했지만, 외손녀들에게 성경을 읽혀야겠다는 내 결정이 무리한 일은 아니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성경 읽기가 끝은 났지만 아직 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릅니다. 다만 아이들의 신앙여정에서 길잡이가 될 수 있도록 초석을 놔줬을 뿐입니다.”

2년여의 긴 항해를 마친 황 장로는 외손녀들과 함께 성경을 읽은 시간이 무척이나 행복했다고 한다. 아이들도 미천하지만 성경에 대한 지식을 갖게 됐다. “시편이 가장 좋았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방주를 만드는 이야기도 흥미로웠어요.” 노아를 가장 좋아한다는 서현이는 앞으로 미술이나 디자인을 공부하고 싶다고 했다. 혜정이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다가 닭이 꼬끼오하고 울고 난 후 회개한 베드로를 가장 좋아해요”라고 말했다. 성경 읽기가 힘들지 않고 재미있었다고 말하는 혜정이는 커서 예수님처럼 병을 고치는 의사가 되고 싶다고한다. 이를 듣는 할아버지는 흐뭇해했다. 아직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두 아이 모두 성경을 읽으면서 비전을 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황현성 장로는 본지와 인연이 깊다. 창간호부터 지금까지 구독하고 있는 열혈 독자중 하나다. 지난 1993년에는 반년가량 ‘소년과 인민군’이라는 6·25 간증소설을 연재하기도 했다. 황 장로는 평양에서 태어나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이남으로 내려왔다. 군대에서 30년간 복무하고 공군 준위로 은퇴했다. 그는 ‘격랑 그리고 환희’, ‘이북5도 명예군수’ 등 체험을 바탕으로 한 저서를 펴기도 했다.

황 장로는 독자들에게 “돌아오는 새해에는 아이들과 1독을 시작해보라”고 권한다. “일주일에 한번 성경을 들고만 다닐 뿐, 읽는 습관을 들이지 못하는 아이들과 함께 성경을 읽어보세요.” 오늘도 그는 혜정이와 성경 읽기를 시작하기 전에 어깨를 기대며 이렇게 기도한다. “하나님 아버지. 성경을 읽을 때 지혜를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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