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기억하는 2등으로, 착한일 행하는 ‘선’으로 살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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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기억하는 2등으로, 착한일 행하는 ‘선’으로 살고파
  • 정재용
  • 승인 2009.08.19 1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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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 미스코리아 선 박 샤 론 자매
“스스로 미스코리아라고 소개하기도 쑥스럽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제 모습이라서 감사하고 당당해요. 앞으로 저를 드러내기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노력할 거에요.”

2006년 미스코리아 대회에서 선(善)을 차지했던 박샤론 자매(은혜의교회, 박정식목사).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비전을 찾기 위해 우연히 참가한 미인대회를 통해 열방을 향한 선교의 비전을 심어주셨고 선교의 도구로 사용하고 계심을 고백했다.

죽음의 문턱에서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된 아버지, 또 대학에 들어가 새로운 비전을 찾길 간구했던 딸을 향한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에는 너무나 많은 예비하심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제가 미스코리아가 된 건 모두 하나님의 계획이심을 알 수 있었어요. 항상 기도해주시는 분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죠. 하나님께서는 저희 부모님을 많이 사랑하셔서 저를 들어 쓰시는 것 같아요.”

폐결핵으로 죽음의 문턱에서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된 아버지 박정식목사가 딸에게 물려준 유산은 믿음뿐이었다.

“아버지께선 스무 살에 폐결핵이 걸리셔서 죽기 직전에 치유를 받으셨어요. 그래서 지금도 폐가 반밖에 없으신데 새 생명을 얻으시고는 교도소, 홍등가, 판자촌 등이 있던 지금 교회자리에 천막을 치고 목회를 시작하셨어요. 하나님께서 가장 낮은 곳에서 시작하게 하신거죠.”

하나님께서는 미스코리아라는 화려함을 경험하기 이전 아버지를 따라 낮은 곳에서 경험한 삶들을 통해 온전히 낮아질 수 있도록 순종의 삶을 가르치셨다.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오빠까지 식구들이 어려움도 많이 겪었어요. 판자촌에서의 삶은 어린 오빠에게 아버지처럼 사역자의 길을 걷지 않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할 정도로 힘들었었는데 오빠도 결국 모든 것을 내려놓고 전도사로 섬기고 있어요.”

때론 많이 힘들었지만 순종할 때 하나님의 은혜로 채워진 가족들의 간증들. 하지만 대학에 들어간 박샤론 자매에게는 새로운 비전에 대한 갈급함이 있었다.

“저는 키만 컸지 가진 재주가 아무것도 없어요. 그래서 대학에 들어간 뒤론 앞으로 뭘 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죠. 그런 저를 보면서 마치 복권은 사지도 않고 당첨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사람처럼 기도를 하지만 노력하지 않고 도전과 목표가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됐어요.”

결국 박샤론 자매는 새로운 비전을 찾기 위해 무엇이던지 도전을 하려고 학교에 있는 벽보들을 보고 다니기 시작했고 미스코리아와의 인연도 이렇게 시작됐다.

“학교 벽보를 보고 해외봉사활동, 국토대장정 등 수없이 많은 일들에 지원했지만 모두 떨어졌어요. 그런데 하루는 집에 돌아오는 길에 전봇대에 ‘부엌 속 신데렐라를 찾아라!’라는 포스터를 발견했어요. 자세히 보니 복지관에서 주관을 하더라고요. 궁금해서 전화를 해봤더니 미스 인천 선발대회였는데 젊은 여성을 위한 축제라서 드레스, 화장 모두 후원해준다는 거에요.”

보수적인 부모님 밑에서 자라서인지 스스로도 미인대회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었고 사람들 앞에서 평가 받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컸지만 복지관에서 주최하는 축제라는 말에 ‘실패는 있어도 후회는 없다’는 생각으로 대회 참가를 결정했다.

“마침 부모님께서 2주 동안 성지순례를 가셨어요. 부모님께서 여행에서 돌아오셨을 때는 이미 최종 20명 안에 들고 난 다음이었죠. 그래서 부모님께 사실대로 말씀드리고 공짜니까 경험하게 해달라고 허락을 받았어요. 저도 부모님도 크게 기대도 안했고 대회 당일에도 친구 몇 명만 함께 가고 부모님은 오시지도 않으셨어요. 그런데 제가 미스 인천 진에 뽑힌 거에요.”

공짜니까 즐기자고 시작한 일에 상을 받게 되니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구나’라는 생각뿐이었다.

“하나님께서 상을 주시는구나, 보너스를 주시는 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막상 본선대회에 참가하려고 하니까 너무 막막한 거에요. 미용실 원장님에 대한 편견, 의상비 등 전국대회는 체계화된 틀 안에 이뤄진다는 것이 부담이 됐죠. 인천 진이 되고 난 다음에 성형외과에서도 후원을 해주겠다고 연락이 많이 왔어요. 그런데 그렇게까지 해서 나가야 한다면 차라리 나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국토대장정에 선발됐더라면 미스코리아가 아니라 거기에 갔을 저인데 여기까지 함께 해주신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상을 받던 못받던 있는 모습 그대로 사용하실 것이라고 생각했죠.”

손톱보다 작은 모습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인도하셨다고 고백하는 박샤론 자매. 끝까지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들로 이끄실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본선 대회를 위해 합숙하는 한 달 동안 입을 옷, 화장품, 악세사리, 수영복과 드레스까지 준비할 것들이 너무 많아 고민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주최측에서 미스코리아 50주년이라서 디자이너 앙드레김 선생님께서 드레스를 후원해주고, 공정성을 위해 일상생활에서 입는 옷들까지도 다 동일하게 후원받은 것들로 사용해야 한다는 거에요. 정말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경험을 통해서 주시는 은혜가 너무 크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는 기회가 됐죠.”

에스더를 읽으며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기준으로 기도하고 준비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다고 기도했던 그에게 하나님께서는 큰 상으로 응답해주셨다.

“대회를 겪으면서 하나님을 더 의지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는 했지만 기대는 안했어요. 그런데 상을 받고 나니까 하나님께서 부모님을 사랑하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려서부터 매일 아침 저를 안고 ‘하나님! 이 아이가 제 상급이 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셨던 아버지가 생각나면서 ‘상급’이라는 말이 이해가 되더라고요.”

1등은 못했지만 2등이라는 큰 상을 통해 더 겸손하라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방송 때도 ‘섬김과 나눔을 실천하는 미스코리아’가 되겠다고 말했었는데 3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너무 많은 일들을 겪어서 내 비전이 뭘까 다시 고민하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과 내가 생각하는 모습이 다른 것은 아닐까 많은 생각에 빠졌어요. 우울증에 걸려서 체중이 8kg이나 늘어나기도 했었죠.”

이후 선교에 대한 비전을 발견한 박샤론 자매는 자신이 했던 고백처럼 어려운 사람들을 만나 섬기고 나누는 일을 실천하면서 하나님의 크신 뜻을 조금씩 깨달을 수 있었고 다시 순종하는 하나님의 딸로 돌아갔다.

“오랫동안 섬기는 일에 힘써 오신 목사님들과 동역을 하게 되기도 하고, 캄보디아와 필리핀 등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선교활동도 했어요. 그리고 파라과이에는 미스코리아 상금으로 받은 돈을 모두 보내서 학교를 세우기도 했죠. 제 이름을 드러내는 것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일을 하니까 목표도 분명하고 더 기쁨이 넘쳤어요. 지금도 최대한 많은 봉사활동을 하려고 노력해요. 복지관에서 외국인노동자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기도 하고 제가 제일 기쁘게 섬기고 있는 CBS기독교방송 수호천사 리포터로도 2년째 쓰임 받고 있어요.”

때로는 왜 더 다양한 TV프로그램에도 출연하고 활발하게 활동하지 않느냐는 질문도 받지만 박샤론 자매는 방송은 하나님을 높이기 위한 도구로만 사용되기를 소원한다.

“세상은 1등만 기억하지만 하나님께서는 2등도 기억하세요. 또 저는 ‘선’이라는 글자를 너무 좋아해서 하나님의 선한 사람으로 살기를 소망해요. 그래서 방송으로 유명해지고 선교를 하는 것이 아니라 선교를 하면서 하나님의 일을 위해 방송을 할 수 있도록 가리고 분별할 줄 아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해요.”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미스코리아로 만드시고 사용하시는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박샤론자매.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되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며 오는 11월 방문하게 될 아프리카 말라위에서도 섬김의 자리에 서기 위해 낮아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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