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명치료 ‘의미’ 판단 불명확…제도부터 세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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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명치료 ‘의미’ 판단 불명확…제도부터 세워야
  • 정재용
  • 승인 2009.05.27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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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이 허용한 ‘존엄사’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회생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되는 환자의 수명을 인간의 판단으로 단축시켜도 되는 것일까. 대법원이 지난 21일 김모(77세ㆍ여)씨의 가족들이 세브란스병원 운영자인 연세대학교를 상대로 낸 ‘무의미한 연명치료 장치 제거 등 청구소송’에서 인공호흡기 제거를 명한 원심 판결을 확정해 존엄사에 대한 논란이 또 다시 일고 있다.

의료기술이 발달하면서 죽음의 순간을 연장할 수 있게 된 행복한 고민에서 시작된 논란은 고통스러운 생명의 연장보다 자연스럽게 생명을 맞이하게 하려는 노력에 대해 일정부분은 인정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이러한 가운데 생명윤리를 혼란에 빠트리지 않기 위한 신학적 명분과 함께 법적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들이 높다.


# 안락사로 확대해석 위험

무엇보다 ‘존엄사에 대한 판단 기준’에 논란이 집중되고 있다. 사실 존엄사는 이번 재판에서 한 번도 사용된 적이 없는 용어다. 단지 고통스러운 연명보다는 자연스러운 죽음을 원하는 환자를 존중하자는 의미에서 생겨난 신조어인 것이다.

실제로 이번 판결에서도 13명의 대법관 중 4명은 “환자가 죽음에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 없고 치료 중단의 뜻이 있다고도 단정할 수 없다”는 반대 입장을 표명했지만 다른 9명의 다수의 판결에 따른 것이어서 논란의 여지가 더 커지게 됐다.

뿐만 아니라 존엄사라는 용어는 그 사용범위가 확실치 않아 약물 투여 등을 통해 수명을 좌우하는 안락사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거론되고 있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존엄사와 안락사는 개념자체가 전혀 다른 것이고 이번 판결도 식물인간 상태에서 연명치료 효과가 없을 것으로 판단되는 환자에 한정한 만큼 안락사로 확대해석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기독교생명윤리협회 사무처장 조덕재변호사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존엄사라는 모호한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하나님의 법으로는 명쾌하지만 세상법으로 쉽게 판단할 수 없는 것이 생명윤리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 식물인간과 뇌사의 경계

판결에 앞서 지난 18일에는 서울대학교가 암환자에 대해 사전의료지시서를 작성하도록 해 환자 스스로가 논란의 여지가 있을 때 치료방법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자는 방안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 또한 환자의 생각을 대신할 수는 없다는 주장들도 있다.

이상원교수(총신대 신학대학원)는 “인간이 살아가면서 죽고 싶다는 충동을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닌데 그때 마다 그것을 진심으로 받아들인다며 생명윤리의 근간이 흔들리게 될 것”이라며 “암환자도 치료가 진행되는 동안 마음이 바뀔 수도 있는 것인데 그것을 미리 정하거나 다른 누군가가 대신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역설했다.

결국 연세대학교는 이번 판결과 함께 ‘연명치료의 중단 3단계 기준’을 세우며 의사들과 환자 가족들 간의 이해의 폭을 넓혀가야 한다는데 무게를 실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뇌간(숨골)의 손상에 따라 식물인간과 뇌사의 판정이 엇갈리기는 하지만 지금까지 법의 힘을 빌려 죽음을 선택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조재국목사(세브란스 원목실장)는 “이번 판결을 통해 의사들이 환자와 환자 가족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며 “종교 등 의학적인 입장에선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깊은 이해가 필요하게 된 만큼 환자와 가족의 입장에서 이번에 세워진 3단계 기준을 통해 존엄사 결정과정에 대한 기본적인 정리가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모든 생명은 하나님의 주권

일각에서는 죽음이 임박한 환자들에게 ‘무의미한 연명치료’ 대신 고통을 덜어주고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게 하는 호스피스완화의료를 제도화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이는 사전의료지시서와 비슷한 맥락이기는 하나, 환자 본인의 판단에 의한 결정인가 아닌가의 차이가 있다.

이러한 소극적 의미의 존엄사와 관련 ‘현대판 고려장’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들도 높다. 죽음이 임박했다고 판단되는 노인의 자녀들에겐 병원 치료비에 대한 부담이 생명 연장의 가능성을 포기해버릴 수 있는 요건이 되기에 충분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조재국목사는 “정부에서 치료비를 지원해줄 경우에도 연명치료를 포기하려는 사람들이 과연 있을지 의문이다”며 “의학적인 해석에 따라 ‘무의미한 연명치료’가 ‘유의미한 연명치료’가 될 수도 있지만, 종교적ㆍ희망적 잣대로 ‘무의미’가 ‘유의미’가 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이상원교수도 “환자에게 영혼이 머물고 있다고 판단된다면 존엄사 문제는 논할 가치조차 없다”며 “기대수명이 며칠 남아있는가는 판단의 기준이 될 수 없으며, 생명이 단 한 시간이 남아 있어도 인간으로의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생명의 주권은 하나님께 있음을 강조했다.

한편,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은 한국죽음학회와 함께 오는 30일 은명대강당에서 ‘인간의 생명과 존엄사’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존엄사에 대한 사회적 종교적 대안을 세워 가는데 힘쓸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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