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의 호흡기 제거 판결, “눈 가리고 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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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의 호흡기 제거 판결, “눈 가리고 아웅”
  • 정재용
  • 승인 2009.05.2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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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생명윤리협 사무총장 조덕재변호사 ‘특별대리인제도’의 모순 지적
▲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는 21일 `존엄사, 어떻게 볼 것인가`를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의식도 없는 할머니가 어떻게 호흡기를 떼어 달라고 요구하는가? 법이 본인이 청구하는듯한 모양새를 갖춰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떼어낸 것이다.”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가 21일 오후 7시 사랑의교회 소망관에서 ‘존엄사, 어떻게 볼 것인가’를 주제로 개최한 세미나에서 조덕재변호사(사무처장)는 존엄사에 대해 생명윤리에 어긋난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세미나에 앞서 대법원이 내린 ‘식물인간 상태로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된 환자의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호흡기를 떼어도 된다’는 판결을 놓고 엇갈린 목소리들이 높아지고 있다.

“하나님의 법과 세상의 법의 차이가 가장 큰 부분이 생명윤리인 것 같다”고 전한 조변호사는 “법원은 가족들이 청구한 것은 모두 기각했으나 특별 대리인 제도를 통해 할머니의 호흡기를 떼어냈다”며 의식도 없는 환자의 의사를 반영했다는 판결의 법률적 모순을 비난했다. 법원이 가족의 청구는 기각했으나 가족에게 특별 대리인 자격을 허용한 것을 지적한 것이다.

이어 “기독교 장로인 이명박 대통령은 존엄사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는 것 같다”며 정부에 대한 실망감을 전하고 “이미 삽입ㆍ장착 된 장치를 떼어내는 것은 사망을 초래하거나 사망시간을 앞당기는 것이므로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또, “이번 판결에서 법원은 존엄사라는 용어는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며 삶과 죽음의 경계라는 모호한 표현에 대해 지적하고 “하나님의 법으로는 명쾌하지만 세상법으로 쉽게 판단할 수 없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존엄사는 안락사와 다른 것인가’라는 주제로 발제에 나선 이상원교수(총신대 신학대학원)는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는 영혼도 살아있고 생물학적 생명이 살아있는 사람이다”며 “기대수명이 며칠 남아있는가는 판단의 기준이 될 수 없으며, 생명이 단 한 시간이 남아 있어도 인간으로의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교수는 “영혼이 그 안에 머물러 있고 생명이 그 안에 있다고 판단된다면 존엄사 문제는 논할 가치조차 없다”고 덧붙였다.

또, “법대에서 법 윤리와 철학을 제대로 교육시키지 않는 것 같다”며 “국가의 입법 정책이 반생명적으로 나가고 있는 이 시점에 법학계 전체의 반성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끝으로 이교수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삶의 충동은 본능으로 주셨지만 죽음의 충동은 본능으로 주시지 않았다”며 “불편하다고해서 손쉽게 편의주의적으로 결론내리는 것은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토론에 나선 박재현교수(경희대학교 의료윤리학)도 “생명윤리학에 관한한 우리나라에는 보수도 진보도 없다”며 “모두가 생명을 경시하고 있으며 생명의 가치를 지켜야만 하는 대법원도 한쪽 방향으로만 가고 있는 것 같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한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총무:권오성) 생명윤리위원회는 지난 19일 서울대병원의 말기암 환자 ‘사전의료지시서’ 허용에 대한 성명을 내고 “한 병원 자체가 결정, 추진할 사항이 아니라 의료계, 법조계, 종교, 시민사회 등 각 분야에서 사회적인 공감대와 합의를 이뤄 법제화 후 시행해야 한다”며 “이번 기회에 엄청난 고통과 죽음의 문제를 비롯하여 생의 의미, 생명의 존엄에 대한 성찰이 곳곳에서 깊이 있게 이뤄지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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