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고마웠어요,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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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고마웠어요, 어머니”
  • 이현주
  • 승인 2009.05.20 15: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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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 - ‘어머니를 돌보며’ 죽음과 인간의 본질 조명
치매 어머니와 함께 한 7년 잔잔한 기록 

녹내장으로 시력을 잃어가는 초로의 딸이 파킨슨병에 걸려 기억을 잃어가는 팔순의 어머니를 돌본다. ‘나’의 존재와 함께 해왔던 어머니, 그 어머니를 잃는다는 것이 초로의 딸에게는 무척 힘든 일이다. 어머니가 없다면 나도 없었을 것이며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도 공간도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사랑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 가정의 달 5월, 미국의 자유기고가이자 평론가인 버지니아 스템 오언스가 남긴 7년의 기록이 책으로 나왔다. 도서출판 부키가 펴낸 ‘어머니를 돌보며’는 파킨슨병에 이어 치매에 걸린 자신의 어머니를 간호하며 겪은 생생한 체험이 담겨져 있다.

세상 살아가는 법을 알려주고 딸에게 지식과 정의를 일깨워 주었던 어머니. 그 어머니가 지적능력을 상실한 채 폐허 속으로 걸어들어 가게 되리라고는 저자조차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모든 불행은 남들에게만 일어난다고 생각했으니까.

저자는 아버지와 함께 파킨슨병 진단 이후 치매판정을 받은 어머니를 1년 반 동안 집에서 돌보았다. 12명의 의사를 찾아다니며 어머니의 고통을 줄여 드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 헤맸고 혼란 속에서도 어떠한 가능성을 찾아내고자 노력했다. 어머니의 변화를 목격한 저자에게 가장 큰 두려움은 지성을 잃어가는 인간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었다.

‘치매’를 ‘지옥’으로 표현한 저자는 치매라는 병에 대해 “한번 들어가면 절대 열리지 않을 문 안으로 거세게 내동댕이쳐지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어머니의 기억과 온전한 정신이 바위에 부딪쳐 산산조각 나는 것을 딸은 그저 맥없이 지켜보아야만 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치매에 걸린 어머니와 딸의 동행을 통해 많은 것을 보여준다. 천국을 믿는 크리스천에게도 죽음은 두려움으로 다가온다는 인간의 나약함과 자아를 잃어버리는 인간의 한없는 초라함을 드러낸다. 또 어린 시절 나를 돌봐주고 키워준 기억 속의 어머니를 떠나보내는 것이 쉽지 않음을 이야기 한다.

치매 어머니를 간병하는 딸조차도 자신마저 폐허의 지옥 속으로 딸려 들어가지 않을까 두려움에 떨며 무기력하게 어머니의 변화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무능함을 한탄한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는 환각을 보았다. “누가 우리 집에 들어왔다”거나 “네 아버지의 쌍둥이 형제가 와 있다”거나 이성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그리고 점차 지력과 감성, 언어와 기억을 잃어간다.

결국 노인요양원에 어머니를 보내고 그 곳에서 간병을 자처하는 딸은 “인간이 이성과 기억, 의지를 모두 잃어 버렸을 때 무엇이 남느냐”는 질문을 던진다. 어머니의 자아가 붕괴되는 것을 지켜본 시간, 저자가 발견한 것은 병에 걸린 어머니의 무의식적인 몸짓은 과거 당신이 가장 소중히 여긴 행동이었고, ‘곁에 있어 달라’는 말을 반복한 것을 통해 인간은 결국 고독한 존재라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미국 ‘퍼블리셔스 위클리’와 ‘크리스채너티 투데이’가 각각 2007, 2008년 올해의 책으로 선정한 ‘어머니를 돌보며’는 단지 간병의 기록을 넘어 인간, 죽음, 영혼, 뇌 등의 문제를 깊이 고찰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1900년보다 85세 이상인 노인의 수가 26배 증가한 2000년대에는 병든 가족과 연로한 부모를 돌봐야 하는 책임도 배가된다. 우리나라 역시 2005년 기준으로 65세 이상 노인 중 치매환자가 8.3%나 된다는 통계는 우리에게도 쉽게 닥칠 수 있는 현실이라는 점을 반증한다.

7년의 투병 끝에 노인요양원에서 임종을 맞이하는 어머니는 죽음을 두려워했다. 어머니가 딸에게 평생을 주입한데로 혼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해주실 것이라는 말을 했지만 어머니는 “너한테서 멀어지고 싶지 않다”는 말로 딸에 대한 사랑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드러냈다.

소설처럼 써내려간 간병 기록의 마지막에 저자 버지니아는 부모를 돌봐야할 상황이 갑자기 다가와도 당황하지 않도록 미리미리 준비하고 마음속에 새겨야할 자세를 정리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가 무너져 가는 것을 지켜본 덕분에 나는 내 몸뿐만 아니라 내 정신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미리 생각해볼 수 있었다. 어머니는 마지막 고통을 통해서도 나를 가르치고 있었다. 내가 거친 항해에 나서기 전에 작은 배를 준비하게 해주었다”고 말이다.

모두들 연로한 부모를 외면하고 돌아서는 시대에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돌보았던 고통스러운 시간을 오히려 행복하고 감사한 추억으로 남긴 한 딸의 고백이 감동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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