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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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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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5.13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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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찬목사<의왕중앙교회>


작은 체구에 아주까리 머리 기름으로 단아하게 빗은 쪽진 머리, 45도 이상 굽은 허리, 녹두 빛 자태고운 옷매무세, 우리 어머니에 대한 지극히 적은 기억의 일부분입니다.

대부분의 아들들이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추억이 다 아름답고 코발트빛의 아련함이지만 우리 어머니는 아픔과 비련이 겹겹의 시루떡처럼 쌓인 기억으로 가득합니다.

해군의 입대를 앞에 둔 청년이 입대 전에 어머니의 발을 씻겨 드리고 싶어졌습니다. 여름 수련회에서 함께 했던 세족식에 대한 감회가 깊었던 모양입니다.

군 입대를 2틀 앞에 둔 여름 날 오후 석양녘에 콩밭에서 종일 짐(풀)을 메고 기진하여 고단함을 한 아름 머리에 이고, 양철 대문을 밀고 어머니가 마당에 들어 서셨습니다.

당신 몸무게만큼이나 무거워 보이는 머리에 이고 온 소쿠리를 토방에 “끙”소리와 함께 내려놓고 소쿠리를 머리에 이느라고 똬리를 만들었던 수건을 풀어, 온 몸에 진드기처럼 달라붙은 먼지와 건부집을 툴툴 털어 내시면서 오늘 처음으로 허리를 펴셨을 것 같은 허리를 신음소리를 내면서 펴셨다가 이내 굽은 허리로 되돌아갑니다. 잠간이었지만 참 오랜 만에 보는 어머니의 바로 선 모습이었습니다.

아들은 어머니를 신문지를 깔고 토방에 걸터앉게 하고는 어머니에게 “발을 씻겨 드리고 싶다”고 말씀드리니 어머니는 한사코 거절하시고 발을 내밀지 않으셨습니다.

어머니의 발에서 흙이 가득 담기고, 달라붙은 흑으로 색도바랜 검정고무신, 흙물이 들어 흰색이 누런 황토색으로 물든 버선을 반 강제로 벗기고는 미리 떠 놓은 세숫대야에 어머니 발을 담갔습니다. 발을 씻기려고 어머니의 발을 어루만지던 아들은 가슴이 메어지고, 핑 도는 눈물 때문에 머리를 떨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의 발바닥은 콘크리트 바닥처럼, 통나무처럼, 딱딱하게 굳었고, 어머니의 종아리는 살이라고는 없는 말라붙은 나무토막의 그것이었습니다. 도저히 사람 발 같지 않고, 여인의 발은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이 작은 체구로, 이 작은 발을 가혹하도록, 학대하듯 하시며 자식을 위해 한 평생을 바치시는 나의 어머니…. 울컥하는 울음을 참느라 이를 악 물어야 했습니다. 울음을 삼키고 삼켰지만 들썩이는 어깨까지 누를 수는 없었습니다. 겨우 발을 씻기고, 수건으로 제대로 다 닦아 드리지도 못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발을 쓸어안고, 아들은 목 놓아 엉엉 울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의 울음에 당황해 하시면서 군에 입대하는 아들의 마음을 아신다는 듯, 머슴의 것처럼 갈퀴손이 되신, 하지만 형언할 수 없이 따뜻한 손으로 토방아래 청년의 어깨를 말없이 앉으시고는 토닥이시며 어머니도 같이 우셨습니다.

어머니는 19살에 시집오셔서 아들 여덟에 딸 넷의 12남매를 낳으셨는데, 그 중에 11번째 아들을 42살에 낳으셨습니다. 오직 자식 가르치는 것을 사명으로 아셨던 어머니는 당신의 아파 병원에 입원하셨어도 당신께서 수술하면 그 병원비 때문에 자식들의 학업을 중단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으로 수술 거부를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장성한 아들들과 당신 남편이 합하여 뼈만 남은 어머니를 수술대에 올려드리고, 하나님께 간절하게, 절박한 심정으로 기도하였고, 8시간의 마라톤 수술과 자궁을 들어내고, 소장1m를 잘나 내는 대수술 끝에 우리 모두를 향하신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어머니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렇잖아도 새벽기도를 거르시는 법이 없으신 어머니였지만 새벽마다 교회의 방석을 적시며 기도하시고, 아들을 위해 며칠씩 걸려 한통의 편지를 쓰셔서 군에 간 아들을 위로해 주셨습니다.

아들은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어머니의 아들로, 부끄럽지 않게, 저- 먼 섬 고도에서 군 생활을 충실히 그리고 의미 있게 보냈습니다. 제대하여 집에 돌아가면 농사지으며 어머니를 모시고 살겠다는 다짐에 다짐을 거듭하면서…

아들이 제대하여 돌아오기 한 달 전에 어머니는 아들을 그리움을 못견뎌내시고, 65세를 일기로 하나님나라에 가셨습니다. 아들은 일렁이는 검푸른 파도를 앞에두고 목 놓아 꺼이꺼이 울었습니다. 가슴에 퍼런 멍을 남긴 당신을 그리워하는 세월, 30년이 훌쩍 넘도록 깊어져만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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