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현장은 구원의 가치 증명하는 ‘축복’의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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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의 현장은 구원의 가치 증명하는 ‘축복’의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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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4.16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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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만수목사<화평교회>


하나님께서 성도 한 개인에게 허락하시는 고난의 의미는 과연 무엇인가? 첫째, 고난이 성도에게 주는 기초적인 의미는 “겸손”이다. 이 겸손은 피조물로서의 인간이 절대 주권자이신 하나님 앞에서 필연적으로 갖게 되는 겸손이다.

고난 속에서 성도는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나의 능력과 이해력을 초월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자유와 대면하게 된다. 이 앞에서 성도는 피조물의 실존, 곧 절대자 앞에서 적신으로 서 있는 한 인간의 한계와 무지를 고백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겸손의 실체인 것이다.

둘째, 고난은 성도로 하여금 ‘십자가의 사랑’을 이해하고 바라보도록 도와준다. 이 사랑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자유로운 사랑, 곧 ‘하나님 맘대로의 사랑’에 기초한다. 우리가 구원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 성경의 메시지이다.

사랑의 대상을 결정하는 것, 사죄 및 구원의 방식을 정하는 것, 구원의 때와 장소, 그리고 구원 이후의 삶과 성화의 모든 과정을 하나님 마음대로 정하셨기 때문에 비로소 우리는 불안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생명을 얻고 하나님과 영원한 사랑의 교제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요컨대, 하나님의 자유는 우리를 심판하고 죽이는 자유가 아니라 우리를 살리는 ‘사랑의 자유’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성도들은 각자의 고난의 현장 가운데서 결국 바라보아야 할 것이 십자가의 사랑인 것이다.

셋째, 고난은 하나님의 자유뿐만 아니라 ‘성도의 자유’가 무엇인지도 보여준다. 타락한 인류는 자유를 ‘죄지을 자유’로 밖에는 이해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랑할 자유’도 주셨음을 선포한다.

이 자유는 극심한 고통 가운데에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을 자유이다.

누가 보아도 주님을 배신할 만한 상황에서 조차도 그 분을 끝까지 배신하지 않을 자유이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는 욥의 고백은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배신하지 않을 자유, 한 걸음 더 나아가 환경을 초월하여 내가 섬기는 하나님을 끝까지 내 마음껏 사랑할 성도의 자유에 기초한다.

이 똑같은 자유가 순교의 현장에서 기꺼이 주님을 위해 목숨을 내어 놓은 순교자들의 가슴 속에 있었고, 또한 오늘날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모든 성도들의 속에도 동일하게 심겨져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모든 고난당하는 성도들이 기억할 것이 있다. ‘성도의 사랑의 자유’는 사실상 새 언약에 대한 예언의 성취라는 사실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새 언약 속에서 신부된 교회는 신랑이신 하나님께 대해 진실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애정을 표현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구원의 진정한 의미는 과연 언제 어디서 성취되는 것일까? 성경과 교회사에서 등장하는 많은 믿음의 선진들은 우리에게 이렇게 교훈할 것이다. 내가 내 생명보다 주님을 더욱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순간에 또한 그 고백을 삶으로 증명하는 순교의 현장에서 내가 얻은 구원의 진정한 의미가 성취되는 것이라고 말이다.

이런 면에서 성도들에게 닥치는 모든 고난과 연단 그리고 작은 순교들은 매우 귀중한 의미를 가진다. 바로 이 고난의 현장이야 말로 성도가 가진 ‘사랑의 자유’를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또한 이를 통해 성도 개개인에게 부여된 자유와 구원의 가치가 스스로 증명될 수 있는 축복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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