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을 지나치게 강조하거나 미화시켜서는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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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을 지나치게 강조하거나 미화시켜서는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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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4.16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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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수교수<서울신대 신대원장>


우리는 고난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고행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신비주의에 빠지면 안 된다. 우리가 고난을 강조하는 것은 그 고난 속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섭리를 묵상하지 않는 고난은 그저 고난을 뿐이다.

그러나 고난 가운데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게 되면 그것은 의미 있는 고난이 될 수 있다.

개항과 근대화를 위한 진통, 일본 제국주의로 인한 고난, 한국전쟁으로 인한 고통, 북한의 압제받는 백성들의 고난 등 한국사에 나타난 고난 속에는 하나님의 뜻과 역사적인 의의가 담겨 있다. 이것은 개인의 고난이나, 교회의 고난과는 약간 차원이 다르다. 이것은 민족을 하나의 단위로 생각하는 고난이다.

하나님은 개인을 통해서, 교회를 통해서 역사하기도 하시지만 분명하게 성경은 민족을 하나의 단위로 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보여 준다. 이런 의미에서 민족의 고난은 매우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첫째, 서구문명에 맞서 봉건체재를 유지하기 위해서 생겨난 고난이다. 이것은 천주교 박해와 민주국가를 건설하려는 과정에서 나타난 고난이다. 여기에서 조선인들은 봉건체재의 문제점과 근대화의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둘째, 일제의 침략과 여기에 대항한 한국인 사이에서 일어난 고난이다. 105인 사건, 3/1운동, 신사참배로 인한 고난 등이 그것이다. 여기에서 한국인들은 자주독립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깨달았다.

셋째는 소련과 공산주의의 남침으로 인한 고난이다. 한국인들은 공산독재의 문제가 무엇인가를 알게 되었고, 자유를 지키기 위해 대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넷째는 북한의 김일성 부자에 의한 북한 동포들의 고난이다. 이것은 외세에 의한 것도, 이데올로기에 의한 것도 아닌 단지 독재자의 권력을 유지시켜 주기위한 고난이다. 그리고 이 고난은 한반도의 역사 가운데 가장 비참한 고난으로 기억될 것이다.

우리가 민족의 고난을 살펴봄에 있어서 유의해야 할 점은 고난 자체를 미화해서는 안 된다. 고난 가운데는 우리가 잘못해서 얻어진 고난도 있고, 힘이 없어서 받은 고난도 있고, 의를 위해서 항의하다가 받은 고난도 있고, 발전의 과정에서 생겨나는 고난도 있고, 우리가 의롭기 때문에 세상의 미움을 사서 받는 고난도 있고, 우리가 남을 대신해서 받는 고난도 있다.

따라서 고난의 유형에 따라서 회개가 필요하기도 하고, 위로가 필요하기도 하고, 하나님의 깊은 섭리를 기다려야 하는 고난도 있다. 지금 우리 민족의 가장 큰 고난은 북한 동포들의 고난이다. 그리고 그 동포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세력이 빨리 사라지기를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 민족의 고난을 너무 미화할 필요는 없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인류를 대속하기 위한 고난이다. 죄 없으신 분이 죄인으로서 고난을 받았다.

하지만 우리 민족의 고난 가운데 이런 대속적인 고난을 찾기란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앞으로 우리민족이 세계의 평화를 위해서,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대신 고난을 받을 수 있다면 우리 민족은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고난을 모방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우리 민족은 세계의 주요국가가 되고 있다. 이제 우리민족은 북한의 동포를 해방시키기 위해서, 인류 사회에 폭력을 제거하기 위해서 보다 성숙한 고난을 받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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