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죽음을 이해할 수 없는 불가능성 인정해야”
상태바
“인간, 죽음을 이해할 수 없는 불가능성 인정해야”
  • 운영자
  • 승인 2009.04.01 17: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일준교수<감신대>


윤리학자 피터 싱어는 우리가 삶과 죽음의 문제에 적용하였던 전통적 윤리원리인 ‘생명의 신성성’ 원리가 도처에서 문제시 되고 있음을 증언한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제 우리의 삶을 정의해주던 경계선이 그 가장자리로부터 무너져 내리고 있다.

네덜란드의 한 연구에 따르면, 급작스럽지 않는 사망의 38%가 의학적 결정들에 의해 이루어지는데, 이 결정들은 예를 들면 생명연장 치료를 중단하거나, 잠재적으로는 생명을 단축시키더라도 당면한 고통을 경감시키는 치료를 시행하거나 안락사와 의사조력 자살 등과 같은 것을 포함한다. 이렇게 놓고 본다면, “우리시대가 당면한 물음은 의사들이 죽음을 돕도록 허락해야 하느냐가 아니라 오히려 언제 그리고 왜 그리고 어떤 상황 하에서 그렇게 해야만 하는가이다”라는 쿠시의 말은 더 실감 있게 와 닿는다.

조나단 글로버는 ‘살 가치가 있는 삶’ 개념을 전통적으로 신성시되어온 생명개념을 대치하는 개념으로 제시한다. 살 가치가 있다는 의식을 갖고 있는 한 신성시되어야 할 삶에 귀속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원리에 따라 ‘살만한 가치가 있는 삶’을 정의할 수 있는 기준은 환자가 삶을 의식하고 있을 수 있는가이다.

이렇게 삶과 죽음의 경계를 정의한다면, 문제가 되는 경우는 바로 혼수상태로 들어간 환자의 경우들일 것이다. ‘더 이상 의식을 회복할 가능성이 없는 혼수상태의 환자를 보존하는 것이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이 바로 우리가 결정해야 할 물음이 될 것이다.

죽음은 보편적인 사건이다. 그 보편적 사건은 진리를 담지하고 있지 않다. 보편이란 진리 사건을 연산만 하기 때문이다. 그 연산식에 주어지는 조건 값들은 각 개별 사건의 상황적 조건들로부터 주어진다. 그렇다면 죽음은 ‘누구의 죽음’이라는 내용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철학적으로 신학적으로 그리고 종교적으로 다루어 가야만 하는 연산식에 관한 것이다.

전통적인 생명존중 윤리는 각 개인의 생명의 존엄성을 강조한데서는 옳았지만, 각 개인의 사건을 보편적 연산식으로 다룬 것은 사태의 혼동을 가중시켰다. 죽음이 너무도 명확한 사건으로 다가오는 시절에 죽음을 성찰하기 위한 연산식은 필요 없었다. 그러나 삶과 죽음의 경계가 갈수록 모호해지는 요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죽음을 생각할 수 있는 생각의 연산식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제 기독교는 기독교적 죽음의 연산식을 생각해야 할 때가 되었다. 필자는 그것이 부활의 연산이라고 생각한다. 부활은 죽음 이전의 삶을 내세에서 영원히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의 세상적 삶으로부터의 완전한 단절을 전제한다. 우리를 죽음의 삶으로 몰아가는 육적 사람의 삶이 단절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죽음을 신학적으로 성찰한다는 것은 바로 이 단절과 틈 그리고 간격을 성찰하는 것이다. 이 단절은 삶으로부터 죽음을 분리하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죽음을 이해할 수 없는 불가능성을 인식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죽음 앞에서 우리의 사유는 단절된다. 그 단절은 죽음에 대한 우리의 생각과 토론이 협의임을 가리켜준다.

생명의 존엄성 원리가 생명 윤리 분야에서 야기한 효과는 정확히 이 협의의 금지였다. 생명 앞에서 타협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불행히도 그 협의를 받아들이고 시작할 때가 되었다. 그것이 굴복이 아니라, 기독교적 복음의 본질로 돌아가 그 단절을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어떠한 신성한 원리에 근거하여 죽음과 삶을 말한다 해도, 이미 모래 위에 금을 긋는 행위이다.

세월이 바뀌고 기술이 발전하고 삶의 질이 달라지면 우리가 오늘 모래 위에 그어 두었던 금은 그 세월의 파도 아래서 지워져 버릴 것이다. 그때 우리는 또 다시 금을 그어야 할 때가 올 것이다. 오늘 새롭게 금을 치듯이 말이다. 이는 곧 우리가 세상에서 살아가는 삶은 모두 이 임시적으로만 유효한 금긋기의 제약 아래 살아감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