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연중기획] 존중받아야 할 인격체 … 삶의 가치를 찾아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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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연중기획] 존중받아야 할 인격체 … 삶의 가치를 찾아주자
  • 이현주
  • 승인 2009.04.01 16: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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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연중기획 // 희망을 주는 한국교회, 낮은 곳을 돌아보자 <2>
▲ 거리급식은 노숙인의 자존감을 떨어드린다는 지적부터 위생적인 문제까지 하루빨리 개선돼야할 긴급 사안으로 지적됐다.

매년 증가하는 거리의 노숙인, 그들도 주님처럼


하>사회가 왜곡하고 교회가 외면한 가장 낮은 이웃


안정적인 주거와 실내급식 등 개선 시급, 인간적인 식탁 보장돼야

애초부터 방치된 사회적 약자…자존감을 세워주는 사역부터 선행


지난해 10월 성공회 다시서기센터에서는 노숙인들과 함께 필리핀을 방문했다. 노숙인들이 땀 흘려 수리한 자전거 400대를 필리핀 빈곤층에게 전달하기 위한 자리였다. 필리핀 방문은 노숙인들에게 사회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버려지고 방치된 우리의 삶이 가치를 가질 수 있다는 ‘변화의 희망’을 주었다. ‘희망’. 노숙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밥도 돈도 아닌 ‘삶에 대한 희망’이다. 노숙인 사역에 참여하는 사람들 모두 그들의 삶이 보다 인간다워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일을 위해서는 사회도 교회도 먼저 보는 눈을 바꾸고 노숙인을 사회구성원으로 우리가 품어야할 이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 기회 얻지 못한 극빈곤층

경제위기 후 노숙인구가 늘어나는 것을 현장 사역자들은 피부로 느낀다. 광야교회 임명희목사는 “최근 들어 처음 노숙을 경험했다는 사람들이 급식소를 찾고 있다며 노숙인이 늘어나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노숙인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사회적 빈곤층으로 낙인찍힌 삶을 살아왔다. 한 단계를 밟고 올라서기조차 어려운 삶이 이미 그들에게 익숙해 있었다.

서울시 노숙인 복지시설협회가 지난 99년 노숙인을 대상으로 심층 면접한 자료에 따르면 노숙인들의 성장 배경이나 삶의 환경 자체가 그다지 좋지 않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 아동학대나 가정폭력을 경험했거나 부모가 알콜 의존도가 높은 경우가 35.5%에 달했고 사실혼 혹은 재혼한 부모에게서 출생한 사례도 18.6%였다.

학력은 중졸이하가 52%로 대학에 재학했거나 졸업한 노숙인은 8%에 불과했다. 최초의 직업활동도 고등학교 졸업하기 전에 이미 60%가 경험을 해본 것으로 나타나 일찍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는 사실을 감지할 수 있었다.

성공회 다시서기센터 임영인신부는 “노숙인의 태반은 애초부터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사회 빈곤층이며 최하층”이라며 “노숙인 사역은 바닥에서 살아온 사람들에게도 기회가 주어져야한다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역단체들이 당장 눈앞에 보이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거리급식에 노숙인 사역의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안타깝다고 임신부는 지적했다.


# 거리급식 독인가 약인가

노숙인들에게 무료급식을 실시하는 단체는 30여 곳이 넘는다. 큰 곳에서는 일주일에 1천 명이 넘는 노숙인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작은 곳도 백명 내외로 노숙인을 섬긴다. 이 가운데 후원체계나 정부 지원을 받는 곳은 몇 곳에 불과하다. 대부분이 영세한 시설이며 자비량 사역을 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실내 급식이 어려워 거리로 나선다.

그러나 무료급식을 보는 견해는 엇갈린다. 일반 대중들에게 노숙인 무료급식은 감동적인 사역으로 보여진다. 위생이나 인권의 문제 이전에 그들의 생존을 위해 거리로 밥차를 몰고 나온 사역자들에 대한 존경심을 먼저 갖게 된다. 하지만 정작 사역자들조차도 무료급식, 거리급식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생각을 드러냈다.

한 무료급식 시설 사역자는 “변변한 거처가 없어 거리로 나가기는 하지만 더러운 거리에 쭈그리고 앉아 한 끼 식사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그러나 실상은 ‘가슴이 아픈 것’을 넘어선다. 지난 2월 실태조사에 응한 노숙인들 조차도 청결과 위생에 있어 불만족스럽다(26.1%)는 응답을 했고 29.2%는 실내급식으로 전환해달라는 요청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임영인신부는 “한 시간을 기다려서 급식을 받은 노숙인들은 불과 3~4분 안에 밥을 털어 넣는다”며 “그들에게 의자에 앉아 식사를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인간적인 식탁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노숙인 급식시설들이 가장 시급히 해야 할 일이 바로 실내 급식소를 만드는 일이다.

실내급식소를 구비한 영등포 광야교회 임명희목사도 육의 양식으로 노숙인을 구제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교회가 노숙인들에게 주는 구제비 일명 짤짤이가 자활의지를 떨어뜨리는 것처럼 거리의 어느 곳에서나 세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은 일시적인 구호방편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밥을 주고 돈을 주는 것은 의존하고 싶은 마음을 키워주고 구걸로 연명하게 만드는 부작용이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다만 먹을 것만 주는 것이 아니라 식사와 함께 그들을 변화 시킬 영의 양식이 따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노숙인 선교단체들이 지나치게 전도에 집착하는 것에 대해 상반된 견해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영의 양식은 노숙인들 삶의 변화를 가져온다는 점에서는 일맥상통한다. 그것이 철학적인 접근이건, 일상적인 교육이건 아니면 말씀을 통한 깨달음이건 핵심적인 것은 “나도 존중받는 사회의 한 구성원이며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노숙인 사역자들은 대형교회나 기독교단체의 일시적이고 즉흥적인 거리급식을 반대한다. 신앙도 철학도 연속성도 없는 ‘이벤트’에 불과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 노숙인을 돕는 크고 작은 일들

노숙인 사역에 접근하는 사람들조차 ‘인권과 선교’라는 두 단어로 충돌한다. 일부에서는 하나의 네트웍을 만들어 정부 지원금을 함께 나누고 효율적인 사역을 공유하자고 주장하고 또 다른 쪽에서는 정부가 직접 노숙인을 위한 복지제도를 만들어 정착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교회가 해결할 수 없는 일이니만큼 정부의 사회복지 테두리에 노숙인을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영세한 시설들이 없어져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작은 교회나 선교회가 지난 10년간 섬겨온 노숙인 사역의 열정을 볼 때 없애는 것이 아니라 한 걸음 나아가 보다 체계적인 서비스를 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큰 단체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물질적인 지원을 넘어선다. 노숙인들을 자활의 터전으로 끌고 갈 수 있는 지적이며 궁극적인 영역을 책임져야 한다. 노숙인들이 거리 곳곳에 산발적으로 거주하는 이상 노숙인 문제는 혼자 해결할 수 없는 다양한 영역에서 감당해야할 모두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광야교회 임명희목사는 일단 노숙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시급한 것으로 주거의 안정을 꼽았다. 홀로서기를 할 수 있느냐는 목적을 가지고 보았을 때 주거의 안정이 우선될 경우 다음단계로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쉼터를 운영하고 쪽방을 제공하며 주거환경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광야교회는 안타깝지만 쉼터는 일시적인 시설일 뿐 대안이 될 수 없다며 한 인격체로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주거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이 일을 대형교회와 교단이 맡아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궁극적으로 노숙인을 사회 구성원으로 이끌어 내는 일이 전제돼야 한다. 응급 처방식의 사역에 반대 입장을 밝힌 임영인신부는 다시서기센터를 통해 노숙인들의 자존감을 세워주는 자활을 진행해왔다. 노숙인이 노숙인 간병을 맡고 버려지는 자전거를 수리해 재활용 시장에 파는 것으로 경제적 자립을 얻게 했다. 근사한 경제활동이 아니더라도 의미있는 일을 통해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왔다.

임신부는 “노숙인들을 경쟁적인 노동시장에 몰아넣는 것은 안 되며 그들만을 보호하는 인큐베이터 노동시장에서 자활의 의지를 키워 나가도록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노숙인을 대상으로 인문학강좌를 열어 사회적으로 파장을 불러온 임신부는 “노숙인도 내면의 욕망은 다른 사람과 똑같다”며 다만 성장할 기회 자체가 주어지지 않은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가장 낮은 곳에서 하루의 삶을 연명하고 있는 노숙인. 고난주간 이 땅을 찾아오실 예수님께서는 가장 먼저 노숙인들의 곁으로 가시진 않을까. 정부의 복지대상에서 소외되고 교회에서는 전도의 대상에서 제외된 사회 소외계층 노숙인. 하지만 주님은 먼저 이들의 친구됨을 자청할 것이 분명하다.

노숙인 사역자들은 “그들이 게으르고 술을 즐기며 삶을 막 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을 방법으로 살아갈 뿐”이라고 두둔했다. 그리고 노숙인보다 더 나쁜 것은 그들을 멀리하고 그냥 버려둔 우리의 왜곡된 신앙에 있다고 말했다.

광야교회 임명희목사 역시 “예수님의 생애에는 동시대에 사람 취급 받지 못한 약자와 천한 자들이 늘 곁에 있었다”며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을 돌보고 보듬고자 하는 교회의 모습을 하루빨리 회복해야 할 것”이라며 노숙인 선교에 대한 교회의 ‘진정한’ 관심을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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