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주의 벗어나 섬김으로 교회 세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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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주의 벗어나 섬김으로 교회 세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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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3.25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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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태목사<선한교회>


교회에서 장로의 직분이 차지하는 영역은 매우 넓고도 중요하다. 왜냐하면 성경적으로 장로는 구약시대에서 신약시대를 거쳐 지금까지 교회의 역사 가운데 하나님이 세우신 직분임과 동시에 교회의 최고의사결정기관인 당회의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실제 교회에서 장로의 역할과 영향력을 매우 크다고 볼 수 있다.

장로의 직분이 중요한 것만큼 지금까지 장로에 관한 연구와 논의는 여러 가지 대담이나 저술들을 통하여 이루어져왔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장로라는 사실 자체에서 오는 권위를 부인한다. 하지만 교회론의 시각에서 장로는 교회를 위하여 하나님이 만드신 직분이라는 점에서 그 직분 자체가 영적 권위를 갖는다.

또한 장로가 실제 생활에서 장로답다는 사람들의 자발적이고 존경하는 평가에서부터 또한 권위가 생성되는 것이다. 직분에 관한 지나친 실용주의는 후자만을 추구하게 된다. 또한 직분에 관한 포스트모더니즘의 관점은 다음과 같은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

첫째, 권위의 공백은 다른 사이비 권위와 권위주의에 의해 점령당할 수 있다. 권위를 무시하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신권위주의가 권위의 빈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권위가 상실된 상황에서 신권위주의를 모아낼 힘을 상실하게 된다.

이렇게 됨으로써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님이 통치하는 교회의 모습이 잃어가고 인간이 새롭게 권위주의로 교회를 통치할 우려가 있다.

둘째, 권위주의를 청산하는 과정에서 권위까지 잃는 상황이 되어선 곤란하다. 장로의 권위주의가 문제가 되니 장로의 권위 자체를 무너뜨리는 시도를 해선 안 된다. 이런 시도들 중의 하나는 교회가 장로를 세우지 않는 경우이다. 장로는 교회의 한 지체를 이루는 직분이다. 따라서 장로는 교회의 정체성을 입증하는 직분이다.

장로가 있으면 골치가 아프니 장로를 세워서는 안 된다는 실용주의 사고는 복음주의 교회론에 반하는 것이다. 장로를 세우지 않으면 담임목사가 머리되신 예수님을 대신으로 독재를 할 수 있다.

셋째, 권위주의로 권위를 회복하는 방법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권위주의는 또 다른 권위주의를 낳을 뿐이다. 권위주의 방법은 교회가 교회되게 하는 방법이 아니다.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로서 권위로 교회를 다스리시고 주의 성도들은 각 지체로서 직분의 권위를 가지고 함께 협력하여 교회를 세워나간다.

장로의 권위주의를 배격하고 장로의 참 권위를 세우는 일은 교회론의 시각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담임목사와 장로가 교회론에 관한 인식이 없을 때 교회가 교회의 모습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다른 조직의 모습으로 가기 쉽다. 흔히 교회가 교회의 본질을 잃어갈 때 권위주의 문제가 발생한다. 왜냐하면 교회의 본질을 잃게 되면 세상에서 통용되는 힘의 논리가 교회 안으로 자연히 들어오기 때문이다.

힘겨루기가 시작되면 악순환이 되어 그 고리를 끊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힘의 논리로 교회가 움직여질 때 권위주의가 발생하고 목사와 성도의 권위는 교회의 권위와 함께 점차로 사라지는 것이다.

건강한 교회는 인간의 권위주의를 없애고 하나님께서 주신 권위로 영혼들을 섬기는 교회이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한국교회는 장로 리더십과 관련하여 아직도 상존해있는 장로의 권위주의를 제거하면서 동시에 장로의 권위를 세우는 이중적 작업을 수행해야 한다. 특히 포스트모더니즘이 교회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이때에 우리는 그것이 주는 악영향을 경계해야 할 것이며 특별히 포스트모더니즘에 노출되어 있는 다음 세대에 권위 있는 성경적 장로 리더십 모델을 제시해야 한다.

장로 리더십이란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의 권위를 갖고 교회다운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목회자와 장로 및 성도들을 섬기는 영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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