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연중기획] 희망도 없이 거리에서 먹고자는 비참한 삶 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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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연중기획] 희망도 없이 거리에서 먹고자는 비참한 삶 반복
  • 이현주
  • 승인 2009.03.25 14: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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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주는 한국교회, 낮은 곳을 돌아보자 <2>
▲ 거리의 노숙인 급식의 상당부분은 한국교회가 감당하지만 본질적인 구제와 선교적 접근은 사실상 이뤄지지 않고 있어 체계적인 돌봄이 요청되고 있다

매년 증가하는 거리의 노숙인, 그들도 주님처럼


<상>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노숙인구 대안은 없나


노숙인 선교 및 구제사역 대다수 영세교회들이 자비량으로 도맡아

6개월 새 1000명까지 증가 … 질병 역학 조사 및 위생시설 시급


IMF가 터지고 11년이 지난 지금, 한국사회는 똑같은 경제 위기를 되풀이 하고 있다. 물론 지난 IMF가 국내만의 위기였다면 지금은 세계가 함께 고통받는다는 점에서 다소 차이점은 있다. 하지만 잇따른 해고와 실직, 사업의 실패 등으로 거리로 내몰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어 저소득 빈곤층을 보호하는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수립이 시급한 상황이다.

더 안타까운 것은 빈곤층의 증가와 더불어 노숙인들의 수가 눈에 띠게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거리를 이불 삼아 잠을 청하면서 삶에 대한 의욕마저 완전히 상실한 채 살아가고 있다. 빈곤층의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한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교회의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고난주간을 앞두고 2009 연중기획 - ‘희망을 주는 한국교회, 낮은 곳을 돌아보자’에서는 두 번째로 노숙인 문제에 대해 알아본다.                                                                                          <편집자 주>


# 결실이 어려운 노숙인 선교

10년 전 노숙인 문제가 처음 공론화 됐을 때 거리로 나가 노숙인들에게 손을 내밀었던 대형교회들은 지금 그들 곁에 남아있지 않다. 전체 노숙인시설 중 기독교 시설이 62.8%를 차지하고 있지만 이들 대부분은 영세한 작은 교회들이다. 배고프다며 손을 내미는 거리의 노숙인들을 외면하지 못하고 밥과 국을 들고 나선 지 수년째, 그들의 이야기는 한결같다. IMF이후 노숙인의 수는 단 한번도 눈에 띠게 줄어든 적이 없다는 것이다.

서울역에서 노숙인 무료급식 사역을 펼치고 있는 나눔교회 박종환목사는 “거리로 내몰린 사람들이 다시 새 삶을 시작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고 말했다. 노숙인 당사자들의 의지가 약한 것도 원인이지만 노숙인들이 극빈한 상황을 벗어날 수 있도록 지원하기까지는 상당한 인내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부와 지자체에서 노숙인을 위한 각종 프로그램들을 만들고 자활을 도왔지만 그것도 한시적으로 진행됐을 뿐 장기적인 사업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가시적인 성과가 없는 사업에 장기적인 투자를 하기란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문제는 노숙인을 대하는 교회의 태도도 정부나 지자체와 별반 다를 바 없다는 점이다. 몇몇 교단에서 97년 이후 조직적으로 노숙인을 위한 사역들을 시작했지만 아직까지 연속성을 갖고 운영하는 교단은 소형교단 2곳뿐이다. 나머지는 전부 영세 교회의 몫으로 남아있다. 대형교회 역시 노숙인 선교를 기치로 내세운 적이 있지만 열매 없는 선교에 금세 방향을 전환했다. 그만큼 노숙인을 대하는 것은 쉽지 않다.


# 노숙인구의 증가와 현실

지난 2월 한국교회봉사단이 서울노숙인복지시설협회와 함께 벌인 노숙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2008년 하반기로부터 불과 6개월 만에 노숙인의 수가 915명 가량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이 조사가 주요 거리 노숙지역과 시설 등에 의존했기 때문에 사실상 노숙인구는 더 많은 증가폭을 보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불과 6개월 만에 1000명에 가까운 노숙인구가 증가했다는 것은 잠재적으로 더 많은 노숙인구의 증가가 불가피하다는 해석도 가능케 한다.

당시 조사를 담당했던 서울신대 이봉재교수는 “영세 자영업자들의 사업실패와 비정규직 실직자 중 일부가 노숙자로 전락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노숙인에 대한 관심이 필요한 이유로 “이들이 개인적인 게으름으로 인해 거리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국가적 경제위기가 가져온 영향으로 거리로 쫓겨났다”는 사실을 꼽았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경제상황은 개인적인 노력여하와 관계없이 누구나 노숙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반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노숙인들의 상황은 어떨까. 노숙인구의 95%에 해당하는 절대다수는 경제활동에 참여했던 남자들이다. 연령대는 40~50대가 가장 많다. 전체의 75.9%를 차지한다. 이들이 생활하는 주요 공간은 ‘거리’로 거리에서 잠을 청하는 노숙인이 70%를 넘어섰다. 센터가 마련되어 있기도 하지만 엄격한 규율과 종교에 대한 강요로 인해 차라리 거리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노숙의 기간이다. 당장 무언가에 쫓겨 거리로 나왔다 하더라도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는 비율은 그다지 높지 않다. 거리 노숙 후 1년 만에 쪽방이나 쉼터로 생활공간을 옮기거나 가정으로 돌아가는 경우는 27.4%에 불과하다. 3년 이상된 노숙인이 36.5%, 10년 이상 거리를 전전한 노숙인이 25.7%라는 조사결과는 충격적이다.

거리 노숙인이 식사를 하는 장소는 주로 서울역이 많았다. 서울역과 용산역 인근에서 아침식사를, 청량리에서 점심식사를 하는 등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곳에서 먹고 자는 일을 해결하고 있었다. 지난 조사에서는 거리급식 형태를 안정적인 실내 급식으로 바꾸는 것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기도 했다.


# 자활을 원하지만…

노숙인 시설을 운영하는 목회자들은 그들에게 복음을 통해 삶의 희망을 되찾아 주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하고 있다.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당신에게도 기회가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주고자 한다. 그러나 희망을 주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빚에 몰려 거리로 나온 노숙인들의 경우 자신의 신분을 감추기 때문에 고정적인 일자리를 찾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측면에서 불이익을 당하기 쉽다. 한 지자체가 노숙인에게 일자리를 제공했지만 막노동과 같은 육체노동이 대부분이어서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거리로 돌아오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한 노숙인 시설 운영자는 “처음 거리로 나온 사람들은 곧 가정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욕망을 안고 있지만 실상은 거리를 떠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서울역에서 만난 노숙인 역시 사업에 실패하고 빚에 몰려 가족과 생이별한 채 거리로 쫓겨났지만 돌아가는 일은 결국 헛된 꿈이었다고 고백했다. 주머니 한 켠에 꼬깃꼬깃 가족사진을 품고 있는 그는 외려 이제는 가족들이 지나가다 자기를 알아볼까 두렵다는 말까지 남겼다.

노숙인이 재활에 성공한 사례를 굳이 꼽자면 ‘쪽방 입성’ 정도로 분류할 수 있다. 물론 노숙의 기간이 짧을수록 가정이나 사회로 돌아가는 사례가 많지만 1년이 지나 햇수를 거듭하다보면 재기할 수 있는 확률은 점점 낮아진다. 그래도 이들은 보다 ‘사람다운 대접’을 받고 싶어한다. 노숙인 시설운영자들이 관심을 갖는 부분도 여기에 집중된다.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비참한 삶을 살아가는 노숙인에게도 ‘인간답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 노숙인에게 실질적인 필요는

봉사단의 실태조사에서 노숙인들은 ‘보호시설 설치 및 주거지원’과 ‘자활시설’ 설치를 교회의 과제로 꼽았다. 또 실내급식소 등 무료급식의 확대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이번 조사에서는 가장 중요한 것이 누락됐다. 노숙인들을 위해 노숙인 구호 시설이 하고 싶은 사역들이 어떠한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한 시설 운영자는 “거리의 노숙인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도 중요하지만 그들의 건강상태를 점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들 중에는 결핵과 알코올 중독, 당뇨 등 만성질병으로 고생하는 이웃이 많다는 것이다.

또 급식시설을 위생적으로 운영하는 문제도 있지만 이것은 시설 운영자들의 양심에 맡길 부분이고 차라리 노숙인들이 위생적으로 씻고 세탁할 수 있는 복지공간이 필요하다는 조언도 내놓았다. 쉼터 같은 곳에 위생 시설이 있다할지라도 노숙인들의 특성상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이용하는 것을 원한다며 기존 지원시설에 공간을 확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도 피력했다.

신빈곤층으로 분류되는 노숙 여성과 자녀들에 대한 보호도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여성들의 경우 거리에서 받는 성적 위협이 크기 때문에 반드시 안전한 곳에서 생활해야만 한다. 여성과 모자가족의 노숙인구는 1999년 220명에서 2007년에 542명으로 2.5배 이상 증가했다.

노숙 시설 운영자들은 실태조사를 통해 노숙인들의 삶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파악했다면 이들을 구제하고 보호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안과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고 밝혀 노숙인에 대한 한국교회의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함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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