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이 서럽지 않은 '마음 따뜻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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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이 서럽지 않은 '마음 따뜻한 사람들'
  • 승인 2002.0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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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30여 년전 청계천, 동부이촌 등 도심지 판자촌에서 강제 철거된 집단 이주민들이 청소차에 실려 쓰레기처럼 내던져졌다. 그때까지 그 곳은 공동묘지로 쓰이다가 급하게 이장을 하는 바람에 주인 없는 유골들이 이리저리 나뒹굴고 있었다. 집단 이주민들은 그 뼈들과 뒤섞여 눈물 고인 밥을 먹고 천막 안에서 새우잠을 자야 했다. 그래서 이곳을 주민들은 아직도 낙골(洛骨, 현재 '난곡')이라 부르기도 한다.

관악구 신림7동. 경사면 45∼60°. 녹은 눈과 연탄재가 섞여 시커먼 물이 700m 가량의 경사로를 따라 흘러내리고 있었다. 다닥다닥 어깨를 맞댄 10평 남짓의 집들은 마치 추위와 고달픈 환경을 이겨내려는 집주인들의 의지를 대변하는 것 같았다. 유난히 눈에 많이 띄는 가게가 있었다. 고풍(?)스러운 자태를 한껏 뽐내고 있는 신발 백화점과 양복점. 그 앞에서 엷은 미소를 머금은 채 한참을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더욱이 어디선가 은은하게 들려오는 ' 도미솔 도미솔 라라라솔’ 피아노 멜로디 소리가 어우러져 60년대 영화의 한 컷을 훌륭히 그려내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경사진 거리를 따라 50m 가량을 올라갔을까? 오른쪽으로 난 좁다란 골목길 끝에서 한 남자 아이를 발견했다. 그 아이는 다탄 연탄들을 쌓아 놓는 곳에 시커먼 새연탄을 버리고 있었다. 연탄이 물에 젖어 못쓰게 된 것이다. 초등학교 3학년이라고 밝힌 그는 나도 가사를 한몫 거들었다는 생각에서인지 흐뭇한 표정과 함께 연탄집게를 흔들며 집안으로 유유히 들어갔다.
소년이 사라진 곳을 쳐다보다 발견한 것은 집들 담벼락 혹은 대문에 색색깔로 뿌려진 유성라카. 번지수를 표시해 놓은 것이었다. 그렇게 번지수를 따라 몇 집을 지나지 않았을 때 빈집들이 많음을 알 수 있었다. 모두 급하게 이사를 간 흔적이 역력했다. 왜 삶의 터전을 등져야만 했을까? 형편이 나아져 마을을 떠났다고 생각하기에는 떠난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그때 1.5t 용달차량을 다 채우지 못하는 살림과 그 위에 몸을 싣고 이사를 가고 있는 한 주민이 눈에 들어왔다. ‘그냥 짐만 옮기는 거에요. 사진 박지 말아요’ 라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서 왠지 아쉬움과 쓸쓸함을 느낄 수 있었다. 또 곳곳에 유리가 깨진 채 방치된 상가들과 문을 닫거나 이전한 상점들도 쉽게 눈에 뛰었다. 오히려 문을 연 가게 찾기가 더 어려울 정도였다.

그리고 구부정한 허리에 뒷짐을 진 채 보기에도 숨 찬 오르막길을 한발 한발 힘겹게 옮기는 할머니의 모습이 현재 이 지역의 힘겨움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현재 이 지역의 뜨거운 감자는 1997년 8월께 결정된 재개발 문제. 지난해 봄부터 지금까지 800여 가구가 철거당했으며 올 봄부터 본격적으로 철거작업에 돌입한다고 한다.
난곡지역으로 이사오는 사람들은 사업에 실패하거나 갑자기 가정형편이 어려워져 재기를 위해 독한 마음을 품고 입술을 깨물며 이주하는 가정들이 많다. 특히 난곡지역은 ‘복조리’ 모양을 하고 있어 이곳에서 돈을 모아 다시 자신의 집을 사서 나갈 수 있는 희망과 꿈의 장소로 통하고 있다. 세입자주거대책위원회 이은정 부위원장은 “이런 곳이 없어진다는 것은 쓰레기차에 실려 버려진 이들을 다시 한번 거리로 내모는 것이다” 면서 “하루 빨리 이 문제가 불미스러운 일 없이 잘 해결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또 “이곳은 없는 사람들의 천국” 이라며 “자기 가족이 아니더라도 굶고 다니거나 아픈 아이가 있으면 집으로 데려가 먹을 것과 약을 주는, 풍요하진 않지만 따뜻한 곳”이라고 말했다.

한편 사랑이 있는 마을을 만드는데 일조하는 곳이 ‘낙골교회(김기돈목사)’다. 낙골교회는 사회선교센터를 만들어 실업자들에게 일자리를, 결식아동에게 밥을, 배우지 못한 어린이들에게는 교육사업을 벌이고 있어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에 앞장서고 있다. 특별히 독거노인들이 많아 이들을 돌보는데도 열심이다. 신명현(83·여)옹은 “지난해 여름 집중호우로 부엌벽이 무너져 어려움을 당했지만 교회와 이웃들의 도움으로 벽돌을 다시 쌓고 시멘트로 반듯하게 미장을 해 너무 기쁘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곳을 처음 찾았을 때 지나쳤던 피아노학원에서 여전히 피아노 소리가 들려왔다. 망설임 없이 문을 열었다. 8평 가량의 학원 안에 이쁘장한 여자 아이가 놀란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선생님은 잠깐 집에 가고 혼자 연습을 하고 있다고.
지수는 올해 7살이다. 그녀의 꿈은 간호사. 이유를 물었지만 고개를 떨구고는 말을 하지 못했다. 이런저런 질문 끝에 간호사의 꿈을 갖게 된 이유를 밝혀냈다. 지수는 떨군 고개를 들고 환하게 웃으며 “엄마, 아빠가 모두 한쪽 팔이 아파요. 간호사가 돼서 두 분의 팔을 고쳐주고 싶어요”. 가슴 한 쪽이 쓰렸고 고인 눈물이 흐를까봐 눈을 깜빡일 수가 없었다.

더 이상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새끼손가락과 엄지손가락을 맞댄 채 꼭 간호사가 될 것을 약속받고 피아노 학원을 빠져 나와 난향초등학교로 향했다. 운동장에는 힘차게 달음박질을 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모두 3학년으로 친구사이였다. 그들의 얼굴에서 그늘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기승이는 “올해는요 지금 있는 컴퓨터 보다 더 좋은 컴퓨터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승근이는 “비행기 타고 제주도 가고 싶어요. 한 번도 못가봤어요” 정철인 아버지의 일을 이어 받을 기세였다. “아빠가 소방관이에요. 저도 훌륭한 소방관이 되어서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살리고 싶어요” 모두가 기대와 소망으로 가득차 있었다. 맑고 순순한 어린이들과 얘기를 나누다 다시 바라본 난곡지역은 처음 이곳을 바라볼 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6평 가량의 편직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남상복(43·여)씨는 직접 짠 옷을 들어보이고는 환하게 웃으며 “재개발로 이사를 가게 되면 공장을 좀 더 넓히고 지금 사용중인 수동기계를 자동으로 교환하고 싶다”며 소박한 꿈을 얘기했다.
파출소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신림7파출소 주정현 경사의 새해 소망을 들어봤다. 현재 철거문제가 심각해 그의 대답도 조심스럽고 간절했다. 주경사는 “올 한해는 아파도 병원에 못가는 사람이 없고, 끼니 굶는 주민이 없었으면 좋겠다”면서 “범죄 없고 소외계층이 밝게 살고 그리고 철거문제가 양자 합의와 양보를 통해 원만히 해결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힘들고 어려운 환경의 난곡지역. 그러나 아직 ‘나도 해낼 수 있다’는 ‘꿈과 희망’을 간직한 그들에게서 2002년 한해를 넉넉하진 않겠지만 훌륭하게 살아낼 수 있음을 확신했다. 꿈을 가진 자는 결코 망하지 않는다.

이승국기자(sklee@uc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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