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이름, 이스라엘로 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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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이름, 이스라엘로 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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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2.11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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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근목사<이수중앙교회>


야곱은 홀로 남게 된다. 자기 인생의 기둥이었던 어머니 리브가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 20년 동안 동고동락해온 장인 외삼촌 라반과는 원수가 되었다. 어머니 태에서부터 형제의 연을 맺고 태어난 형, 에서가 자기를 죽이겠다고 칼을 빼들고 400명의 용병을 앞세우고 강 건너편에 와 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긁어 모은 재산과 처자들은 이미 형, 에서의 수중으로 들어가 있다. 얼마나 두렵고 답답한 일인가?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자승자박인 것을! 야곱은 이기고 빼앗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인줄만 알았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것은 재앙이었다. 야곱은 홀로 남았는데, 어디선가 낯선 사람이 씨름을 걸어왔다.

그는 야곱을 이기지 못하자 그의 허벅지 관절을 내리쳤다. 허벅지 관절이 어긋났는데도 야곱은 놓지 않았다.

야곱은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않으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고 했다. 천사는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야곱이라고 말하자 천사는 말했다.

“너는 야곱으로 살면 안 된다. 네 인생 망해, 그래도 깨닫지 못하면 너는 죽어! 네가 왜 이렇게 비참하게 되었는지 아느냐? 야곱으로 살았기 때문이다. 다시는 야곱으로 살지 말고, 이스라엘로 살아라.”

야곱은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고 했다. ‘브니엘’은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뜻이다. 이제야 야곱은 하나님의 얼굴을 찾은 것이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누구를 대면하며 사느냐가 복의 관권임을 알아야한다. 야곱은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고, 지성으로 섬기면서도 여전히 육적인 인간의 본성을 버리지 못했다.

하나님의 사자는 육적 본능의 상징인 환도뼈를 깨뜨리고, 새 이름 이스라엘을 준다. 이스라엘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면하며 사는, 새 사람을 뜻했다. 사람을 붙들고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붙들고 사는 영적 새 인간이다. 다른 사람을 넘어뜨리고 빼앗고 승리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 세우고, 실패한 사람을 성공하게 만들고, 죽을 사람을 살려 구원하는 사람이 새사람, 곧 이스라엘이다.

하나님께서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어 주셨듯이, 예수님은 제자들의 이름을 바꾸어 주셨다. 갈릴리 호숫가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는 갈대 인생 시몬에게 예루살렘과 로마의 살인적 광풍에도 흔들리지 않는 반석, 곧 베드로라는 새 이름을 주셨다.

세베대의 아들 요한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라는 새 이름을 주셨다. 갈릴리 호수에서 뱃노래나 부르는 어부 요한에게, 하나님나라 복음을 전파하는 하늘의 우렛소리, 사람들의 영혼을 뒤흔들어 깨우는 번개와 천둥소리, 새 이름을 주신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이름만 바꾸어 주신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이름을 바꾸어주셨다. 새 이름, ‘그리스도인’ ‘하나님의 자녀’ ‘나의 제자’ ‘하늘나라의 상속자’라는 이름을 우리에게 주셨다.

한국교회 교인들이 왜 신뢰와 존경을 잃어버렸는지 아는가? 야곱처럼 살았기 때문이다. 교인들은 질 줄을 모르고, 이기려고만 한다. 은혜를 많이 받았다는 사람들일수록, 직분이 높아질수록, 대교회일수록 욕심이 더 많다. 틀림없는 야곱이다. 왜 그렇게 된 것일까? 교회가 야곱의 축복을 받으라고 설교하고 가르쳤기 때문이다. 교인들은 부자가 되고, 성공하기 위해서, 교회는 성장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 결과 한국교회는 부흥했지만, 맛 잃은 소금이 되어 길에 버려져 짓밟히게 된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에 야곱근성을 못 박아 버리고, 영적인 새 사람, 이스라엘로 거듭나야한다. 그 길이 교인도, 교회도 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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