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서 만나는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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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만나는 ‘소’
  • 공종은
  • 승인 2009.01.06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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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 화목을 위한 흠없는 제물 … 신앙과 생활에서 함께 호흡

머리 끝 뿔에서 꼬리며 발끝까지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이 모두 주고 가는 동물이 ‘소’라고 한다. 소만큼 우리의 일상과 가깝고 사람을 닮은 동물이 없는 것 같다. 그 깊은 눈을 들여다보노라면 악한 마음을 품을 수 없고, 그 우직함은 사람들의 비열함과 궤사를 부끄럽게 한다.

요사이 농사일이 기계로 대체되면서 소의 힘을 빌어야 하는 부분이 크게 줄어들기는 했지만, 소가 떠맡고 있는 농사일에 대한 비중은 아직도 상당한 부분을 차지한다. 이런 의미에서 소는 하인이나 노비를 뜻하는 ‘생구(生口)’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는데, 소에게 사람대접을 할 만큼 존중했다는 뜻이었다. 인력으로 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을 소가 해냈고, 교통과 운반의 수단으로써 뿐 아니라 재산으로서도 한몫을 톡톡히 감당했기 때문이다.

이른 봄에는 쟁기를 어깨에 걸고 부지런히 논밭을 갈아엎어 논밭을 기름지게 하는가 하면, 그 배설물마자 거름으로 유용하게 사용했다. 일이 없을 땐 한가하게 쉬면 좋으련만 주인을 귀하게 모셔야 하는 책무도 짊어져야 했다. 농번기 때는 쟁기가 어깨에 걸렸지만, 잠시 숨이라도 돌릴 수 있는 농한기가 찾아오면 쟁기 대신 수레가 어깨에 매달렸다. 이 수레에는 짐이 가득 실렸고, 귀한 주인님과 그 식구들이 타고 있었다. 그 어깨에 수레가 걸리면 부지런한 걸음 놀리며 주인님을 모시고 장을 보러 가야 했다.

소는 재산으로도 인식됐다. 농경시절이 아니더라도 지금도 농촌에서는 소가 재산목록에 들어간다. 새끼를 낳을 수 있는 암컷은 가격이 더 비싸다. 암컷이 낳은 새끼는 주인들에게 큰 기쁨을 주었고 재산을 늘리는 기쁨도 안겨주었다.

그렇다면 성경에 등장하는 소는 어떻게 활용됐을까. 성경 속의 소는 주로 ▲물건 운반용 ▲필수적인 식량 ▲희생제사에 사용되는 동물 ▲재산으로서의 형태 ▲장식적 또는 상징적 용도로 사용됐다.

물건 운반용 동물로서의 소는 수레(민 7:3, 삼하 6:6)와 쟁기(신 22:10, 삼상 11:5, 왕상 19:19, 욥 1:14, 잠 14:4, 사 30:24, 암 6:12), 타작용 써레(신 25:4, 고전 9:9)를 끌었다. 또한 소는 안식일에 사람과 함께 쉬어야 했고(출 23:12, 신 5:14), 모든 것의 처음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율법규정에도 소가 포함됐다(출 34:19, 레 27:26).

소는 사람과 친밀한 동물이었지만 인간에게 해를 입힐 경우에는 엄격하게 다스려졌다. 소가 남자나 여자를 받아서 죽이면 그 소는 반드시 돌로 쳐 죽여야 했고 그 고기는 먹지 않아야 했다. 또한 그 소를 단속하지 않아 소가 사람을 받아 죽이게 되면 소와 주인이 함께 죽어야 했고, 만일 소의 주인에게 속죄금(贖罪金)을 요구하면 자신의 아들이나 딸을 생명의 속으로 보상해야 했다. 소가 남종이나 여종을 받게 될 경우에는 소의 주인이 은 삼십 세겔을 그 종의 주인에게 주고 소는 돌로 쳐 죽여야 했다.

반면 소에 대한 보상 규정도 있었다. 사람이 구덩이를 파놓은 뒤 덮지 않아서 소가 빠져 죽었을 경우, 구덩이를 판 사람이 소에 해당하는 값을 지불하고 그 소를 가졌다. 또한 특정인의 소가 다른 사람의 소를 받아 죽였을 때는 살아있는 소를 팔아 그 값을 균등하게 나누었다. 하지만 소의 임자가 소를 단속하지 않아서 사고가 생겼을 경우에는 살아있는 소를 다른 사람에게 주고 죽은 소를 자신이 가져가야 했다(출 21:28~36). 또한 사람이 소를 도적질해 잡거나 팔게 되면 소 한 마리에 소 다섯 마리로 갚아야 했고(출 22:1), 길에서 원수의 잃어버린 소를 만나게 되더라도 반드시 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했다(출 23:4).

성경에서 정결한 동물로 분류된 소는 식량으로도 유용하게 사용됐다(신 14:4). 그러나 그 고기는 히브리 사람들의 식단에서는 흔한 품목이 아니었으며, 단지 왕위 계승이나 잔치 등 특별한 경우에만 소가 도살돼 음식으로 사용됐다(삼상 14:31~34, 왕상 1:19, 잠 15:17, 사 22:13, 마 22:4). 하지만 왕족과 귀족들은 일반인들보다 자주 소고기를 먹기도 했다(왕상 4:23, 느 5:18, 암 6:4).

재산의 형태로도 사용됐는데, 소는 나귀를 한 마리 소유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재산으로 이해됐다(욥 24:3, 출 20:17). 그리고 소떼와 양떼, 염소떼는 부와 사회적 지위의 표시(창 12:16, 32:5, 삼하 12:2, 욥 1:3, 전 2:7)로 사용됐다.

장식용으로 사용된 모습도 발견된다. 솔로몬성전에 있었던 대량의 물을 저장해 놓았던 부어 만든 ‘바다’는 열두 마리의 청동소의 등에 올려져 있었고(왕상 7:25), 열 개의 청동 놋대야들의 판에는 사자와 소, 그룹들의 형상이 새겨져 있었다(왕상 7:29). 에스겔의 환상 속에도 등장한다. 에스겔이 본 환상 속에서 각 그룹은 네가지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소의 얼굴이었다(겔 1:5~10). 이것은 요한계시록 4:6~11에 영향을 끼쳤고, 여기서는 하늘보좌를 둘러싸고 있는 각 생물들이 각기 단지 하나의 얼굴만 지니고 있는데, 그 중 한 생물의 얼굴이 소의 얼굴이었다.

성경에 등장하는 소는 무엇보다 희생제사의 제물로 이해된다. 소는 유목생활을 했던 이스라엘에게 있어 중요한 제산이었지만, 하나님께 나아가고 하나님의 영광을 칭송하기 위한 소중한 제물로 사용된 점에서 중요하게 인식됐다.

애굽을 탈출해 가나안 땅으로 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소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고 말씀하시고, 하나님의 이름을 기념하는 곳에 강림하여 축복하시겠다는 약속까지 주셨다(출 20:24).

제사용 제물로 드려진 소는 흠없는 수놈만이 제물로 드려졌다. 그러나 ‘피’와 ‘기름’ 외에 나머지 고기부분은 인간이 먹을 수 있었다. 민수기 28장과 29장에 나타난 내용들을 보면 무교병 절기와 수장절 중에 공동체의 우두머리는 공동체를 위해 일곱 마리의 수송아지를 드렸다. 또한 칠칠절에는 여분의 제물로 두 마리의 ‘소송아지’와 한 마리의 수양, 1년 된 흠 없는 어린 수양 일곱 마리 등이 드려졌는데, 수장절에는 13마리의 수송아지가 첫날에 바쳐졌다.

수장절 직후에 있는 아세렛(Asereth) 절기에도 한 마리의 수소가 바쳐쳤고, 정결의 매개수단으로 드려졌다. 제물로 드려진 수송아지는 송아지 하나만 드려지기도 했지만, 고운가루 3/10 에바 등의 곡물제물과 함께 드려지기도 했다.

또한 유월절에는 소송아지 한 마리가 드려졌고, 더 나아가 첫째 달의 첫째 날과 일곱째 달의 첫째 날에는 한 마리의 수소가 성전의 정결을 위해 드려졌는데, 제물로 드린 소의 피를 제단 난간의 네 귀퉁이와 건물의 다른 중요한 부분들에 뿌려졌다.

소는 또한 일반인들이 아닌 제사장이 드리는 제물로 분류됐다. 대체적으로 평민들의 경우 암염소 또는 양, 족장의 경우 수염소를 드렸지만, 제사장들은 희생제물로 수소를 드려야 했다. 그리고 많은 경우에 있어서 희생제사에 드려지는 동물들은 주로 1년 이하의 것들을 드려야 한다는 법칙이 설정돼 있었다(출 12:5, 29:38, 레 9:3, 12:6 등).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들이 흠이 있는 것들이어서는 안됐다. 제물로 드려지는 소들은 흠이 없는 깨끗하고 정결한 것들이어야 했다. 출 28:38, 민 18:19 등에는 “희생제사에 드려지는 제물들이 속세에서 떠난 거룩한 것이어야 한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모든 희생제사와 제사는 신과의 접촉을 수반하는 것들이었던 만큼 희생제사의 본질도 그 거룩의 속성을 흡수하게 되는 수단을 제공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 의식을 오염으로부터 보존하는 것을 확실하게 할 필요가 있었다.

‘속죄제’를 위한 제물로도 사용됐다. 속죄제는 특정한 범죄, 특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지은 죄들에 대한 속죄를 위한 제사였으며, 범죄자들은 제물로 드리는 흠없는 수소나 수염소의 머리 위에 자신들의 두 손을 올려놓음으로써 그들 자신과 제물을 동일시하여 그 제물로 하여금 그들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삼았다. 제사장들은 그 가축을 죽인 후 가축의 피를 제단 성소의 다른 곳에 뿌림으로써 그 피를 통해 죄인을 정결하게 하고 하나님과의 거룩한 유대를 재수립하는 데 사용됐다.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었던 언약궤를 실은 수레를 끌기도 했다. 블레셋에 빼앗겼던 언약궤가 벧세메스로 돌아오는 길에 사용됐던 수레는 젖 나는 소 둘이 끌었고(삼상 6:7~15),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이 완성하지 못한 성전을 완성하기 위해 일천번의 제사를 드렸다(왕상 3:4). 또한 성전을 완공한 후 드린 낙성식에서는 2만2천 마리의 소를 화목제물로 드렸다(왕상 8:63).

반면 우상숭배의 한 방편으로 사용되는 안타까운 모습도 보인다. 애굽의 폭정에서 탈출해 가나안으로 향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시내산 위에서 40일 동안 하나님의 계시를 받는 동안을 참지 못하고 우상을 만들고 섬기는 가증한 죄악을 저지르고 말았다. 여기에 등장하는 우상의 모양이 송아지 모양이었고(출 32:4), 그것을 숭배하며 송아지 우상이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신이라며 희생을 드리는 범죄에 빠지기도 했다(출 32:8).

소는 그 옛날 농경사회에서부터 지금까지 우리와 밀접하게 관계돼 있으며, 그 우직함과 희생제물로서의 향기가 실생활과 신앙생활에서조차 우리와 호흡을 같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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