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르포] “바다처럼 넓은 당신의 그 품, 이제 안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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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르포] “바다처럼 넓은 당신의 그 품, 이제 안기고 싶습니다”
  • 공종은
  • 승인 2008.12.24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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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의 끝자락, 서해 탄도항에 서다

세상이 외면해 버린 손, 친구들마저 가족마저 놓아버린 내 손, 잡아줄 수 있나요?

 

12월, 미처 준비하지 못한 이들을 위한 1달 동안의 선물

나를 알고 계신 분이 주신 삶, 잘 살아야 하지 않겠나

 

“나의 유리(遊離)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으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이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시편 56편 8절).

 

 

12월. ‘연말인데 머리도 식힐 겸 어디라도 다녀와야 하지 않을까’라는 의무감에 등 떠밀린다. 석양이라도 보면서 ‘감원’, ‘정리해고’라는 글자 앞에서 마음 졸이던 가슴 떨림이나 진정시켜보자며 가볍지 않은 마음을 자동차에 싣는다.

무작정 서해쪽으로 향한다. 이대로 가다보면 이 땅의 끝자락이 저만치 보일 거고, 노을이 지는 시간 즈음이면 한 해의 묵은 감정 시뻘건 가슴에 품고 바다 속으로 떨어지는 해를 볼 수 있으리라.

액셀레이터를 밟는 다리에 힘이 들어간다. 자동차는 반사적으로 헉헉대며 갈 길을 재촉한다. 서해로 가는 발걸음. 모두들 같은 소망을 담았음일까. 서해에 가까워질수록 자동차들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늘어난다. 여기저기 낙조를 볼 수 있는 위치쯤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수평선 위로는 아쉽게도 두텁게 구름이 내려앉았다.

너무 늦은 건 아닐까…. 순간 시뻘건 해가 구름 속으로 숨어버린다. 12월의 모습일까. 강한 여운만 남긴다. “아!”하는 아쉬움의 탄성이 일제히 쏟아진다. 서둘러 차를 세운 곳이 등대가 바라보이는 탄도항. 겨울철이어서인지 해가 금세 떨어진다. 하지만 고맙게도 아직 붉은 기운은 생생하다. 온 대지 뜨겁게 달구던 그 열정 감추고 바다로 바다로 침잠해 들어가야 할 그 청년의 기운이 아직 식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바람이 날카롭게 뺨을 때린다. 구름마저 바람의 뭇매에 흩어지듯 한쪽으로 흩날린다. 석양은 그 두터운 구름 속에서도 연신 그 기운을 뿜어내고 한 사람 두 사람 그 기운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아직 켜지지 않은 등대섬으로 잰걸음을 옮긴다. 등대섬으로 가는 길은 온통 황금빛으로 숨 쉬고, 맨살 드러낸 갯벌 위로 내려앉은 그 기운은 펄떡거리며 끝 모르게 달려간다.



탄도항. 어부들에게도 12월은 어김없다. 하루가 다한 저녁, 배들도 잔잔한 바닷물에 몸을 내어 맡긴다. 바다엔 바람 한 점 없고 그 흔들림조차 조심스럽다. 그 억척스러웠을 뱃사람들의 걸쭉한 입담도 사그러들고, 싱싱한 활어들도 배들의 휴식을 지켜보는 듯 그 움직임을 쉰다.

바람이 불면 눈물 한 방울 떨어진다. 먼 길 되돌아온 바람의 뒷자락에 눈물 한 방울 따라온다. 길이 아닌 길을 길이라 우기면서 한 해를 살아왔다. 내 것이 아닌데도 내 것이라 하고, 내가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으로 짓누르고 밟으면서 올라서려 애썼다.

‘후회’. 왜 늘 한 해의 끝자락에서만 오는지,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에서만 뒤돌아보게 되는지…….

지나간 날들에는 늘 아쉬움이 남는 마음과 빈 손 뿐이다. 결승점만 보고 내달리는 단거리 선수처럼 공격적인 결과 뒤에 남는 그 허전함이 가슴을 무너뜨린다. 남겨진 것 하나 없는데 시찌프스처럼 끊임없이 정상으로만 정상으로만 돌을 굴린다.

 

▲ 이 나라 어디든 사람 사는 내음은 물씬 풍겨난다. 한적한 바닷가에도 작은 예배당에도 12월을 보내는 분주함과 간절함은 변함없다.

순간순간 몰아치는 바람이 섬뜩하다. 고수의 칼날처럼 회한 가득한 마음 한구석을 쉽게 베어버린다. 가슴 활짝 열고 버텨보려 해도 그 칼같은 기운에 자꾸 움츠러든다. 웅장하게 솟아오른 나무들도 바람을 막지 못하는 듯 모두들 한쪽으로 비켜선다. 나무들이 비켜서고, 구름들이 떠밀려 가도 그러나 바람이 가는 길, 그 길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다. 12월에는 바람마저 방향을 잃고 헤매인다.

부둣가. 배들도 쉬어가는 곳. 낯선 시선 허공에 뿌려둔 두 남자가 긴 숨 뿜어낸다. 야윈 어깨를 짖누르는 생활의 무게, 얼마나 무거웠을까.

“난, 내가 우리 회사에서 제일 똑똑한 줄 알았어.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 윗사람이 시키는 일, 나한테 할당된 일 꼼꼼하고 깔끔하게 하면 다 되는 줄 알았는데, 윗사람들은 그게 일 잘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더라는 거지….” 

한 남자의 푸념이 길게 이어지며 허공으로 날려 올라간다.

“하~~~~. 정직하게 열심히 일했더니 오히려 안 좋아 하데. 일 안 하는 다른 놈들은 다들 진급하고 잘 있는데 나만 요 모양이더라고….”

“… …”

지난날 남자라는 이름 때문에, 아버지라는 이름 때문에, 남편이라는 이름 때문에 흘리지 못했던 눈물. 그리고 사회의 한 구성원이라는 이름 때문에 내뱉지 못했던 가슴 속 회한.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던 요나의 처절함과 간절함이 이런 것이었을까. 한마디 한마디가 기도되어 살포시 흘러나온다.

“세상이 외면해 버린 내 손. 친구들마저, 가족들마저 놓아버린 내 손. 텅 빈 내 손. 잡아주실 수 있나요? 눈물의 흔적만 남은 내 앙상한 손 잡아주실 수 있나요? 바람처럼 바다처럼 넓은 당신의 그 품, 이제 안기고 싶습니다.”

이 남자에게 12월은 선물일까. 차라리 덤으로 주어진 선물이면 좋겠다. 골인 지점을 몇 미터 앞에 둔, 미처 준비하지 못한, 아직 돌아보지 못한 이들을 위한 1달 동안의 선물. 죽을 듯 앞만 보고 내달린 날들 위로 휴~~~우, 쉼표 하나 찍어본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지라”(역대하 7장 14절).

 

땅을 더 깊이 파고 거름을 주지 못함에 대한 부끄러움에서일까. 남아있는 12월의 끝자락에 애달픈 아쉬움이 엉긴다. 떠나보내야 새로움을 맞을 수 있을텐데, 모래 한 줌 움켜쥐듯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날들을 내려다본다.

왜 떠나보내지 못하는 걸까. 늘 후회뿐이고 아쉬움으로만 채워지는 구멍 뚫린 날들이 오히려 허허로워 마음 가득 감겨오기 때문이리라.

쉽게 버리지 못하는 기억, 쉽게 떠나보내지 못하는 유년의 알싸한 추억처럼 한해의 끝자락에서 보면 유치하고 치기어린 기억도, 숨기고 지우고 싶은 후회의 날들도 다 아름다움으로 채색된다. 이런 기억들이 있기에 위태위태하게도 하루하루를 버텨내나보다.

정직하면 손해 보는 세상, 철밥통의 신화마저 깨진 지금, 희망의 훈풍은 차갑게 얼어붙었지만 마음속에 희망 하나 띄운다. 지난 한 해의 아픔, 어둠 속에 묻히거라. 마음 한구석에서 불쑥불쑥 커져오는 억울함, 잊혀질듯 질기게도 살아오는 배신감, 끝모르게 이어지는 좌절감 모두. 켜켜이 쌓인 어둠 위로 한 해의 아픈 기억들 하나 둘 지워나간다. 그 붉게 빛나던 서해의 낙조 사이 그 어디쯤 전도자의 음성, 고고하게 살아온다.

 

“이전 세대를 기억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가 기억함이 없으리라”(전도서 1장 11절).

 

별 하나 희미하게 살아오듯, 작은 소망 하나 피어오른다. 

하나님이 날 알고 계실까. 지치고 실패하고 배신당하고 온갖 죄스러움으로 뭉쳐진 부끄러운 내 이름, 정말 알고 계실까. 부끄러운 나를 알고 계신 하나님이 주신 한 해의 삶인데 잘 살았어야 하지 않겠나. 그 간절함이 짠하게 다가온다.
 

내보일 것 없고 자랑할 것 없는 한 해의 삶이었는데, 아무도 날 알아주지 않는다는 섭섭함에 원망하고 소리쳤던 날이었고, 왜 나에게만 혹독한 시험이 닥치는지 하늘을 향해 삿대질하며 대들었던 부끄러움인데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는다니…….
 

결국 나에겐 예수가 희망이다. 예수를 한 해의 소망으로 품고 살아왔듯 12월 이 자리에서도 예수가 나의 길이다.

‘내가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이 없다’는 전도자의 말이 아니더라도 ‘하나님이 그 기뻐하시는 자에게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신다’는 소망 간절히 살아난다.
 

12월. 살아온 내 날들, 버릴 수 없는 소중함이어도 묵은 먼지 툭툭 털어버리듯 그렇게 털어버리자. 한 해의 후회스런 삶, 햇살 속에 툭툭 털어버릴 수 있으리라. 낡은 먼지 털어내듯 그렇게…….

 

“내가 받는 고난을 인하여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삽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삽더니 주께서 나의 음성을 들으셨나이다”(요나서 2장 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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