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르포] “말기암환자들에게 구원의 감격을 선물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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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르포] “말기암환자들에게 구원의 감격을 선물하고 싶어요”
  • 이현주
  • 승인 2008.12.18 15: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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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환자 머리감겨주는 사랑의교회 호스피스팀
▲ 사랑의교회 호스피스 14팀. 좌로부터 채영희, 손혜숙, 정은희, 손숙, 이봉자, 최윤정 봉사자

12월 11일 영동 세브란스 7층 암병동에 오랜만에 활기가 넘친다.

“내 머리도 감겨 줄 수 있어요?”

“물론이죠. 이 쪽으로 누우세요.”

사랑의교회 호스피스 14팀이 암환자 머리감기 봉사에 나서는 날. 오늘은 16명이나 신청했다. 5명의 봉사자들은 이동식 세면대를 끌고 병실마다 문을 두드린다.

“아이구 너무 시원해. 수술하고 처음 감는 거에요. 고마워요. 음료수라도 드세요.”

“저희한테 머리를 맡겨주시니 오히려 감사하죠. 환자분이 드시고 하루빨리 쾌유하세요.”

머리를 맡긴 사람과 머리를 감기는 사람이 서로 연신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한다.

14팀을 이끄는 최윤정권사는 올해로 호스피스 사역 16년째를 맞고 있다. 사실 머리감기는 일은 호스피스의 일이 아니다. 말기암 환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확신하며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 호스피스 사역이다. 그런데 병원에서 먼저 머리감기 봉사를 부탁했다. 처음 보는 낯선 환자들에게 다가가기 힘들었던 호스피스팀은 환자들과 접촉점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에 흔쾌히 수락했다. 벌써 4년 째 이 일을 진행하며 환자들과 말문을 트기도 쉬워졌다.

“오래 했는데도 아직도 병실문을 열기가 무서워요. 병원 목사님께서 호스피스가 필요한 환자를 알려 주시는데 죽음을 앞둔 환자들의 마음이 피폐해서 다가가기 쉽지 않거든요.”

엄살이다. 16년째 호스피스를 하고 있다는 최권사는 이 일이 너무 힘들다며 후회한 적도 없고 오히려 강한 믿음으로 많은 이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했다.

“30살 된 위암환자가 있었죠. 건장한 청년이었는데 머리를 감겨주겠다고 다가갔어요. 처음에는 몸을 맡기지 않던 청년이 마음을 열더라구요. 죽음이 오기 직전, 세례를 받고 가족까지 전도하고 하나님의 품으로 갔어요. 힘들어도 이런 보람으로 버티나봐요.”

자원봉사자들을 만나면 일부러 시험하며 괴롭히는 사람들도 많다. 팔자 좋은 아줌마들이 생색이나 내려고 나온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한 50대 간암환자는 대뜸 “나 목욕 시켜줄 수 있어요?”라고 물어왔다. 기독교인은 모두 재수없다는 편견을 가진 환자였다. 최권사는 “물론”이라며 그녀를 샤워실로 인도했다. 그리고 한시간이 넘도록 온 몸에 땀을 쏟으며 정성스레 그녀의 몸을 닦았다. 주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듯이 정성을 다했다. 그후 그녀는 변했다. “나 일부러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얄미워서 골탕먹이려고 했어요. 그런데 아줌마는 다르더라구요.”

‘예수 사랑하심은’ 찬송을 부르자 눈물을 흘렸다. 성경을 선물로 주었고 그렇게 그녀와 친구가 됐다. 황달이 심해 얼마나 살지 몰랐던 그녀는 퇴원 후에도 2년을 더 살았다. 주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기쁜 마음으로 남은 생을 살았다.

물론 끝내 복음을 거부한 환자들도 많다. 돈가방을 움켜쥐고 가족도, 봉사자도 아무도 믿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고 가족의 반대로 호스피스와 만남조차 허락되지 않은 환자도 있었다.

사랑의교회호스피스 14팀은 10년차 손혜숙권사와 5~6년째 호스피스 사역에 동참한 정은희, 이봉자 집사, 그리고 뒤늦게 사역을 시작한 채영희집사, 이제 갓 교육을 끝내고 들어온 손숙집사 이렇게 6명이다. 거짓말처럼 6명의 얼굴은 모두 천사 같았고 봉사에 임하는 사연도 남달랐다. 호스피스 사역 전에도 시립아동병원에서 환우들을 돌봐온 정은희집사는 남편과 사별하면서 더 굳건한 믿음의 확신으로 호스피스 사역에 뛰어들었다.

“99년에 남편이 담도암 선고를 받았는데 7년을 아침금식을 선포하며 남편을 위해 기도했어요. 그런데 5년째 되던 해 남편이 하나님 품으로 떠나갔죠. 이루 말할 수 없는 상실감에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런데 기도 중에 영혼의 삶을 깨달았어요. 하나님이 남편을 죽인 것이 아니라 영원히 살게 하셨다는 거죠. 그것을 다른 암환자들에게도 전하고 싶었어요.”

머리감기는 일이 쉬워보였는데 그게 아니었나보다. 3시간 이상 하고 나면 옷이 땀으로 흥건해진다. 양팔이 부들부들 떨린다. 그래도 봉사자들은 서로 궂은 일을 도맡겠다고 나선다.

2008년 성탄절. 우리는 다시 오실 주님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지금, 당신 앞에 예수님이 나타나신다면 무슨 말을 듣고 싶으냐고 물었다.

“생각만해도 행복해요. 호스피스 사역을 하다보니 죽음이 두렵지 않아요. 오늘 하루를 산다고 생각하죠.” 최윤정권사에게는 매일이 죽음을 준비하는 삶이다. 하나님이 부르시면 언제든 달려가고 싶기 때문이다.

견습생 자격으로 함께 한 손숙집사 역시 동료들을 통해 섬김을 배웠다고 했다. “만남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웠어요. 오늘 불러도 기쁨으로 갈 수 있을 만큼 믿음이 충만합니다.”

채영희집사도 이봉자집사도 정은희집사도 모두 하나님께 듣고 싶은 한 마디 말이 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참으로 수고했다”라며 품에 안아 주시는 것.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착한 그리스도인들은 이웃에게 어떻게 보이는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하나님의 칭찬 한 마디면 세상의 수고가 녹아 내릴테니까. “그런데 아직은 주님이 오시면 안되요. 저는 아직 한 일이 별로 없어요. 칭찬받을 게 없는데…” 채영희집사가 엄살을 부린다.


대림절 어느 날, 하나님은 날개 잃은 여섯 천사를 내려다보고 계신다. 죽음의 고통에 몸부림치는 환우들에게 영원한 삶을 주신 아기 예수 탄생의 소식을 전하는 호스피스 봉사자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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