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특선동화] ‘노란 우산과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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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특선동화] ‘노란 우산과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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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12.18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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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가 끊긴 1년차 부부, 작은 우산속에서 ‘사랑’ 확인

거리에는 빨간색 유니폼을 입은 구세군들이 빨간색 자선냄비를 걸어놓고 이웃을 돕자는 모금운동이 시작된 지 오래되었습니다.

자동차가 다니지 않는 작은 골목길이나 지하철 입구 가까운 곳에서 울려 퍼지는 구세군의 자선냄비 종소리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잠시 멈추게 하고 가벼운 주머니를 뒤져 동전 몇 개라도 냄비 속에 넣고 나면 훨씬 사람들의 마음은 훨씬 가볍고 발걸음도 가벼웠습니다.

“ 당신이 좋아하는 스파게티 요리로 주문할까요?”

 “뜻대로 하세요.”

 “좋아요, 이 집의 스파게티는 유명하니까.”

 오랜만에 두 부부가 나들이를 나와 단 둘이서 저녁을 먹으며 오순도순 정답게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는데 분위기는 무겁기만 했습니다.

‘땡그랑 땡그랑…’ 구세군의 종소리를 들으며 심각하게 고개를 숙인 채 식당에서 나온 젊은 부부의 얼굴이 두 사람 모두 근심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여보, 이 거리에서 당신과 내가 지난 해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저 구세군의 냄비 속에 동전을 넣다가 이마를 부딛힌 게 인연이 되었지요?”

“……”

 남편이 아내와의 아름다웠던 추억을 꺼내어 말을 걸어보았지만 여전히 아내는 아무런 대꾸조차 없었습니다.

“혹시 저한테 불만이 있거나 못 마땅한 것이 있으면 그렇게 입만 다물고 있지 말고 속 시원하게 말씀을 좀 해 보세요!”

“……”
결혼한 지 겨우 일 년밖에 되지 않은 젊은 부부는 요즘 서로 신경이 예민해 진 가운데 대화가 줄어들었고 임신 7개월째에 접어든 아내는 불러오는 배를 보면서 더욱 마음이 아팠습니다.

 “당신께서는 나에게 무슨 말을 하라는 겁니까?”

 아내는 세상만사가 귀찮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퉁명스럽게 대답했습니다.

 “분명히 당신이 나에게 못마땅한 것들이 많은 것 같은데 입을 다물고 있으니 저는 더 답답하고 힘들잖아요! 오죽 했으면 이렇게 당신을 불러내어 우리들의 아름다운 사랑의 결실을 맺게 해 준 추억의 거리를 걷자고 했겠습니까?”

 “좋아요, 그럼 제가 드릴 말씀이 있어요.”

 “그래요, 어서 말씀해 보세요.”

 남편은 감정을 억누른 채 아내의 얼굴빛을 조심스럽게 살폈습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해서 결혼을 했는데 요즈음 나는 당신이 자꾸만 미워지고 있어요. 더 이상 미운 마음이 들기 전에 서로 헤어지는 게 좋겠습니다.”

“……”

 “왜 아무 말이 없어요?”

 이번에는 남편이 아내를 보며 되물었습니다.

폭탄선언과 같은 아내의 말에 당황한 남편은 한참동안 할 말을 잊고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냉정하게 대답을 했습니다.

 “좋아요. 우린 서로 사랑했기 때문에 결혼을 했는데 미워지기 시작했으니 헤어지자는데 제가 뭘 주저하겠어요. 그래요 헤어집시다.”

사실 남편은 오래전부터 대화의 문을 닫고 아내 혼자 고민을 하는 것을 알아차리고 어떻게 해서든지 아내의 마음을 달래주려고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나는 시내 중심가에서 만나자고 불러냈던 것입니다.
다음날 아침 두 부부는 약속이라도 하듯 나란히 가정법원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판사 앞에 섰습니다.

“정말 두 분이 헤어지기 위해서 오신 게 맞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제가 아내와 결혼했던 것은 아내를 누구보다도 사랑했기 때문이고 지금 이혼하려고 하는 것도 여전히 아내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남편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판사는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물었습니다.

 “나는 두 분의 말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사람의 태도는 깍듯이 서로를 존중하고 있었고 말 한 마디도 서로 조심하며 신중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 번 이혼하려는 이유를 정확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판사는 최종적으로 남편에게 물었고 남편은 그 이유를 자세하게 설명했습니다.

“예, 제 아내는 무남독녀의 외동딸로 태어나 고생을 모르고 부모님의 사랑 가운데 자랐습니다. 그런데 육남매의 장남인 저에게 시집을 온 날부터 시동생 다섯을 돌보며 어려운 살림하느라 온갖 고생을 다하며 살아왔는데 날이 갈수록 아내의 짐은 무거워져만 갑니다. 저는 그것을 지켜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한 죄책감 때문에 힘이 들고, 그럴 필요 없다며 저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애쓰는 아내 때문에 요즘은 서로 대화가 끊긴 지 오래되었습니다. 이런 상태로는 더 이상 아내를 힘들게 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판사는 이제야 이혼 하려는 이유를 알겠다는 듯 안타까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좋습니다. 그러면 여기 서류에 서로가 합의한다는 도장을 찍으십시오. 물론 두 분의 생각이 서로 같다고 해도 오늘 당장 이혼이 성립되는 것은 아닙니다. 상당기간 서로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드리니 집에 돌아 가셔서 신중하게 생각해 보십시오.”

판사의 당부를 뒤로하고 이혼 서류를 제출한 후 가정법원을 나란히 걸어 나오는 두 부부의 어깨는 축 처진 채 서로의 시선은 땅바닥만을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였습니다. 이들의 서글픈 마음을 대변이라도 해 주듯 까만 먹장구름이 하늘을 뒤덮더니 금세 진눈깨비로 변해서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집에서 나올 때 아내는 손잡이가 짧은 노란 우산을 하나 들고 나왔는데 각기 다른 길로 헤어져야 할 처지에서 아내는 방금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고나온 남편이 눈을 맞도록 놔두고 혼자서만 우산을 쓴 채 갈 수가 없었습니다.

 “이 우산 당신이 쓰고 가세요.”

 아내는 우산을 남편에게 건네주었습니다.

“아니요, 괜찮아요. 당신이 쓰고 가세요. 임산부가 눈을맞으면 안 됩니다.”

 “아니라니까요. 그렇지 않아도 당신 대머리가 될까봐 걱정인데… 요즘 비나 눈은 산성이라서 사람 몸에 맞으면 좋지 않아요.”

아내는 남편에게, 남편은 아내에게 하나밖에 없는 우산을 건네주기 위해 한참동안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좋아요. 그러면 제가 당신을 가까운 버스정류장까지 데려다 줄께요.”

 두 사람은 방금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고 나온 가정법원 현관 계단 앞에서 서로를 위해 우산 하나를 가지고 의견충돌을 하다가 결국 남편이 아내를 가까운 버스정류장까지 데려다 주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습니다.

아내의 노란 우산은 두 사람이 진눈깨비를 피하기에는 너무나 작았습니다. 더구나 바람과 함께 눈과 비가 섞여져 억세게 퍼붓는 진눈깨비에 남편은 자기도 모르게 임신 7개월이 된 아내를 감싸 안아야만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한 우산 속에서 아내와 남편이 딱 붙어서 정답게 걸어본 것도 참으로 오랜만의 일이었습니다.

남편의 눈에 들어 온 아내의 어깨는 너무나 가냘프고 작게만 보였고 자기 때문에 연약해 진 아내를 바라보는 남편의 마음은 그저 미안하고 측은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여보 미안해요. 못난 남편 때문에 고생만 시키고…’

남편의 두 눈에 눈물이 고였습니다.

 어느덧 버스정류장에 도착 했을 때 아내는 또 한 번 고집을 부렸습니다.

 “나는 이곳에서 버스를 타면 되니까 당신은 어서 이 우산을 쓰고 가세요.”

진눈깨비는 어느 새 함박눈으로 변해 하얀 솜사탕처럼 춤을 추며 하늘하늘 내리고 있었습니다.

“버스에서 내리면 당신은 또 눈을 맞아야하니까 이 우산 가지고 가요.”

“조금 지나면 눈은 멈출테니까 내 걱정 말고 어서 이 우산을 쓰고 가세요.”

 하지만 남편은 아내가 시키는 대로 혼자서 우산을 쓰고 갈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두 부부가 장난감만한 작은 노란우산 하나를 갖고 서로 실랑이를 하는 동안에 버스는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떠나 버렸습니다.

 “눈을 맞으면 안 된다니까!”

 “당신도 눈이나 비를 맞으면 안 돼요.”

 어느 새 아내는 눈에 옷이 젖어 입술이 파래지며 몸을 움츠리고 떨기 시작했습니다.

“갑자기 무슨 눈이 이렇게 퍼붓는 거지? 배도 고프고 눈도 그치지 않으니 우선 가까운 식당에 가서 우동이라도 한 그릇 먹고 헤어집시다.”

 남편은 추위에 떨고 있는 아내를 데리고 버스정류장 건너편에 있는 허술한 식당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아주머니, 우동 두 그릇만 주세요.”

 따뜻한 보리차를 따라다주는 남편의 손등은 언제 보아도 듬직하고 복스럽기만 했습니다.

 “당신 손은 정말 복스럽게 생겼어요.”

 남편의 손등 위로 자기 손을 포개는 아내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고이더니 주르륵 흘러내리고 말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두 사람이 자주 만났던 곳도 중국요리집이었습니다.

“여보 , 우린 이제 헤어지면 이 맛있는 우동을 다시 먹어볼 수 없겠지요?”

 아내는 흐느끼며 작은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아니예요, 우리가 가끔 만나 맛있게 먹었던 이 우동의 맛이 변하지 않았듯이 우리의 사랑도 영원히 변치 않을 거에요.”

 남편은 우동을 먹다말고 갑자기 아내의 손을 잡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는 노란우산을 펼쳐든 채 눈 속을 헤치며 어디론지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여보, 지금 어디를 가시게요?”

 깜짝 놀란 아내는 남편의 돌발적인 행동에 두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물었습니다.

 “가정법원에 가서 이혼서류를 다시 찾아옵시다.”

남편의 힘찬 이 말에 임신 7개월이 된 아내의 무거운 발걸음은 갑자기 천사가 날개를 달고 사뿐사뿐 날아가 듯 가정법원의 현관계단을 바람처럼 가볍게 오르고 있었습니다.

 아내와 함께 진눈개비를 피하며 노란 우산을 받쳐 든 남편의 가슴에서는 눈에 젖은 속옷이 뜨거운 심장의 열기로 인해 모락모락 김을 내뿜으며 말라가고 있었습니다.

“여보, 비록 작은 우산이지만 이 우산으로 바람과 진눈깨비를 둘이 한 몸이 되어 있을 때는 피할 수 있었잖아요.” 아내는 남편의 손을 잡고 뒤 따라가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래요, 바보처럼 서로 떨어지면 더 추운 바람과 눈비를 맞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 우산이 깨닫게 해주었어요.”

아내와 남편이 판사로부터 이혼서류를 돌려받아 가정법원 현관 앞에 있는 쓰레기통에 찢어서 버리고 나오자 짧은 겨울날은 벌써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흥겨운 크리스마스캐럴송과 함께 건너편 산등성이에 우뚝 솟은 교회종탑에서는 크리스마스 트리가 불을 밝히며 반짝반짝 두 부부를 보며 윙크를 해주었습니다.


<필자약력>
 

● 기독교아동문학상 동시입상, 한국시 신인상 시 당선, 월간문학 신인작품상 동화 당선

국제펜클럽한국본부이사 , 한국문인협회 감사, 한국아동문학회부회장 등 역임

한국아동문학작가상, 한국기독교문학상, 한국글사랑문학상, 2008한국아동문학창작상 수상

<현재>한국아동문학회 지도위원, 월간아동문학 발행인, 한국찬송가위원회 전문위원

전남도민일보 사장, 미국솔로몬대학교 예술대학장, 미국남가주국제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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