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과 주인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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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과 주인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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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11.12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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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창목사<서초교회>


1905년의 노벨문학상은 ‘쿠오 바디스(Quo Vadis)’라는 작품을 쓴 폴란드의 ‘시엔키에비치(Sienkiewicz)’에게 주어졌다. 우리에게는 ‘쿼바디스’라는 이름의 영화로 잘 알려져 있다.

개선장군으로 로마에 돌아온 로마군 최고의 사령관이 잠시 어느 집에 머무는 동안에 아름다운 여인을 사랑하게 되었다. 로마 군대가 전쟁 때 붙잡아온 어느 나라의 공주인데, 당시 여인은 포로이자 노예의 신분이었다. 여인에 대한 그의 사랑이 육체적인 욕망이었다면, 그는 명령이나 거래의 방식을 사용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는 주인이 되고 여인은 노예가 되면, 그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로마군 사령관이 처음에는 그런 방식으로 자신의 뜻을 이루고자 했다. 그런데 어느 만큼 가다가 그는 더 이상 그런 방법을 쓰려고 하지 않았다. 명령이나 거래의 방법을 포기한 것이다. 그가 왜 그렇게 했는가? 그 여인을 진실로 사랑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제 여인의 마음 깊은 곳으로 들어가야 하는 저 높은 남자는, 저 낮은 곳에 내려서서 여인의 마음이 열리기를 기다려야 했다.

진실한 사랑을 위하여 자신을 낮추어 종이 되어가는 동안에, 로마군 사령관은 기독교인들에게로 가까이 다가가기 시작했다. 사랑의 종이 되어 끌려다니는 동안에, 로마군 사령관은 하늘 보좌를 버리사 이 땅에 종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가까이 인도되어간 것이다. 인간의 사랑일지라도 진실한 사랑은 우리를 종의 자리로 인도해간다.

사도행전 7장의 스데반 집사는 유대 율법주의자들을 향하여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외치면서 순교의 최후를 마쳤다. 스데반은 유대 율법주의자들이 알아듣기 쉽게 모세에 대한 설교를 했다. 스데반은 유대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하나님의 종 모세에 대하여, 새로운 해석을 전한 듯하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모세를 재해석하도록 유도하는 말씀이 사도행전 7장 35절에 나타난다.

젊었을 때 모세는,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가면서 히브리 민족을 위하여 일하려고 했다. 그런데 모세는 히브리 백성들로부터 거절당했다. 왜 거절당했는가? 모세는 히브리 민족을 구하려 했지만, 그는 재판장처럼 형 집행자처럼 일하려고 했다. 그래서 모세는 거절당했다.

그런데 광야 40년 후에 다시 돌아온 모세는 어떻게 그 동일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종으로서 받아들여진 것인가? 모세는 재판장이 아니라, 구원자요 속량자가 되어서 돌아왔기 때문이다. 재판장은 죄인을 율법으로 판단 정죄하고 형을 집행하는 사람이다. 구원자나 속량자는 죄인을 변호하거나 대신 벌금을 내서 죄인을 구원하려는 죄인의 부모와도 같은 사람이다.

목회자가 젊어서는 어두운 현실에 분개하면서 재판장이 되려 하고 때로는 불의한 권세를 향하여 형 집행자가 되고 싶어 한다. 그러나 고난과 절망의 목회 과정을 거치는 동안에, 하나님의 종들은 속량자인 모세, 십자가에 달리신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가까이 다가가게 되는 것이다.

진실한 길을 걷다가 희생된 그 분이 우리 영혼의 진정한 주인이시다. 진실한 종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진정한 주님이 되신 것이다.

진실한 사랑을 이루시려고 스스로 종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시작된 것이 기독교이다. 그를 본받아 스스로 종이 된 제자들로부터 시작된 것이 기독교의 교회이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 종으로 시작한 제자들은 자꾸만 주인의 자리로 올라가고 말았다. 이제 교회 안에서 스스로 종이 되려는 사람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그래서인지 진실한 사랑을 발견하기도 어렵다.

온 세계의 많은 교회들이 다가오는 11월 셋째 주일을 추수감사주일로 지키게 된다. 깊어가는 가을, 결실의 계절, 추수감사주일에 우리가 먼저 거두어야 할 신앙의 열매는 어떤 것일까? 우리의 영혼으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낮은 곳을 바라보게 만드는 진실한 사랑의 열매가 필요하다.

진실한 주님의 사랑이 내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솟아나와 교회와 성도들에게서 소용돌이치는 동안에 어느덧 교회가 새로워지는 그런 미래가,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 한국 교회에 다시한번 거저 주어지기를 바라면서 다가오는 추수감사주일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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