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같은 음악, ‘숨’같은 문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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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같은 음악, ‘숨’같은 문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 표성중
  • 승인 2008.11.04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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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문화의 꽃 피워가는 숨엔터테인먼트 유수훈대표

“좋은 기독교문화는 세상 사람들에게도 기쁨과 즐거움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이들도 감동 받을 수 있는 기독교문화적인 코드를 만드는 일이야 말로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사역입니다.”


가수 안치환, 소리꾼 김용우, 작곡가 류형선, 시인 도종환 등 사회 각 분야의 전문적인 아티스트들과 함께 창의적이고 새로운 문화트렌드를 만들어 가고 있는 숨엔터테인먼트 대표 유수훈성도(45세). 그는 세상 속에 기독교문화의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교회가 적극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음반시장의 열악한 환경속에서 팔리지도 않는 앨범을 내고 활동하는 CCM가수들의 삶을 건 투쟁 아닌 투쟁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조차 마음이 아프다고 말하는 그는 교회가 CCM사역자들을 키우는데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찬양 사역자들이 직업적으로 활동하면서 복음을 증거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어렵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가 걸려있는 그들에게 찬양한다는 것조차 버거운 삶의 무게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조금이나마 여유가 있는 교회는 CCM가수 한 사람에게라도 꾸준하게 뒷바라지해줘서 열심히 활동할 수 있는 분위기만 조성된다면 찬양을 통한 복음의 씨앗들이 이 세상에 널리 퍼질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의 일반 회사들도 문화적인 부분에 많은 투자를 한다며 한국교회의 문화적 현실을 아파하는 그는 찬양 사역자들이야 말로 이 시대를 짊어진 어린 영혼들을 주님의 곁으로 인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고 굳게 믿고 있다.


“요즘 대중가요를 듣다보면 섬뜩할 때가 많습니다. 초등학생들이 따라 부르는 가사를 듣고 있다 보면 정말 해로운 것들도 많거든요. 생각해보면 우리도 어렸을 때부터 음악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자라왔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양질의 음악을 들려줄 책임이 우리들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 숨 엔터테인먼트 유수훈 대표
교회 안 아이들의 수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 마음 아프다는 그는 아이들이 세상의 좋지 않은 문화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환경에서 이들을 위한 좋은노래, 착한노래를 부르는 가수들이 많아져야 아이들의 문화적인 심성이 좋아질 수 있기 때문에 세상의 자본주의 매커니즘에 대항해 교회가 세상의 문화를 바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그는 건전한 사고와 아름다운 심성을 지닌 문화가들과 함께 신앙인이 들으면 가스펠이 되고 일반인들이 들으면 좋은 노래가 될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 있다.

“단순히 기독교음악이라고 정해놓지 않은 음악, 기독교 세계관을 가지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문화를 만드는데 주력하려고 합니다.”


특별히 그는 환경문제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현재 그는 CCM가수인 홍순관씨하고 기독교환경운동연대와 함께 ‘홍순관의 지구살리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지구를 살려야 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진행 중인 ‘착한 노래만들기’ 공연은 앞으로 7년 동안 지속될 예정이다.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지켜나가는 것은 우리 신앙인들의 책임이며 의무입니다. 앞으로 한국교회와 연대하면서 아름다운 지구를 지켜내고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사실 그는 지금의 회사를 경영하기 전 환경문제에 많은 관심을 갖고 활동했던 환경운동가였다.


어릴 때부터 한양교회와 서울동안교회, 높은뜻숭의교회를 다니면서 신앙을 키운 그는 목회자가 되고 싶어서 지난 80년대 초에 연세대학교 신학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학교생활 대부분 신학공부를 하기보다는 환경운동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중학교 때부터 목회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그래서 신학을 공부하게 되었고요. 그런데 조금 건방진 소리 같지만 주변에 좋은 목회자가 될 사람은 많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반대로 환경운동을 할 사람은 없어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삶의 자리’라는 단어를 유독 좋아했던 그는 그래서 진로를 놓고 하나님 앞에 매달리며 기도하고, 많은 고민을 했다. 유학을 갈까도 생각했지만 결국 그는 목회자가 되는 것보다 환경운동가가 자신의 자리인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사실 자연에 깊이 있는 애정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에는 지금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환경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얼마 없었습니다. 아마 86년이었던 것 같아요. 본격적으로 환경운동을 시작했던 때가….”


그가 환경운동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사실 중고등학교 시절에서부터였다. 높은뜻숭의교회를 다니던 중 학생부를 맡았던 전도사님을 유독 존경하고 잘 따랐다. 그러다 그분이 경기도 여주의 다른 교회로 사역지를 옮기게 됐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친누나와 지금의 아내가 된 여자친구와 다른 친구들과 함께 목사님이 된 그를 한 달에 한번 주기적으로 찾아가 특별한 주제 없이 삶을 나누고 성경공부를 했다.


“목사님과 함께 공부할 당시 사모님이 환경 강의를 듣고 환경단체를 만들어서 환경운동을 해야겠다는 말씀을 하시고 본격적으로 환경운동 사역을 시작하셨는데, 지금의 아내는 대학을 졸업하고 그 단체 간사가 됐죠. 결국 저도 그분의 뜻을 따라 대학을 다니면서 환경운동가의 길을 걸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환경운동에 미쳐있던 그에게 하나님은 또 다른 고민을 하게 만드셨다. 그 가운데서 문화사역 분야에 눈을 돌리게 됐다.


“환경운동을 하면서 왠지 모르게 문화사역을 하고 싶다는 강한 열망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환경운동을 하면서 문화계 분야에서 일하는 분들을 하나 둘씩 만나게 되면서 지난 2000년부터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생각했던 문화사역은 그렇게 쉽고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세상의 많은 유혹과 시험 속에서 신앙인의 삶을 지켜나가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 일을 하면서 가장 힘든 것은 접대문화입니다. 접대문화는 이쪽 분야에서 매우 익숙한 일이라 안할 수도 없고 할 수도 없는 갈등에 매번 놓이게 되죠. 하지만 접대문화 속에 빠져들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는 고객들에게 접대를 잘 하지 않은 사람으로 유명하다. 사소한 것 같지만 그에겐 이런 것 하나 지켜나가는 것이 매우 힘들었다. 기독교 계통의 일에만 전념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밖의 일도 할 수 밖에 없는 세상에 발을 담그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이 원하는 것을 하지 않음으로 발생하는 불이익을 잘 견뎌내는 것, 접대만 잘하면 잘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하지 않는 것, 뻔히 그게 지름길임을 아는데도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 일부러라도 돌아가는 일이 있습니다. 하지만 욕심을 버리는 것에 익숙해지니까 괜찮아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계속 이런 각오로 일을 하다보니까 아직까지 대박다운 대박을 못 내고 있죠. 하하하.”


현재 개인생활, 교회생활, 사회생활의 경계선을 지켜나가는 것은 그에게 만만치 않은 일이지만 ‘삶의 자리’라는 단어를 좋아하는 만큼 엄격하게 스스로를 관리하면서 신앙인으로서의 삶을 자리를 지켜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는 자칫 보수화되고 규격이나 틀 안에 옭아매거나 가둬두려는 문화와 음악보다는 살아있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자신의 회사명처럼 숨 같은 음악, 숨 같은 노래, 숨 같은 문화를 창출하겠다는 욕심을 가지고 있다.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하는 시대에 숨을 쉴 수 있도록 해 주는 공연을 하고 싶다”는 그는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그리스도인과 우리의 이웃이나 대중들에게 위로나 감동이 되고 기쁨을 줄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가기를 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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